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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한 창작도 창작인가? - 수필가 정임표

작성자정임표|작성시간26.06.18|조회수30 목록 댓글 0

AI를 활용한 창작도 창작인가?

- 수필가 정임표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논술 과제를 작성하는 일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있는가 봅니다. 이런 조심스러운 의문제기가 작가들의 커뮤니티 공간에 흘러나온 이상,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수필을 비롯한 문학예술 작품의 창작 영역까지 AI를 도입해도 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확대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대학에서 오픈북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야 하며, 이 또한 엄연한 창작의 영역입니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에 지친 나머지 책을 베고 자면 그 속의 모든 내용이 머릿속으로 싹 들어와 다음 날 만점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놀랍게도 이 상상은 절반쯤 과학적 사실에 가깝다고 합니다. 영어 공부에 몰두하다 보면, 꿈속에서 외국인과 전혀 막힘없이 유창하게 대화하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비록 깨고 나면 다시 제자리일지라도, 이는 영어책의 문장이 물리적으로 나의 뇌에 이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뇌 속의 시냅스에서 엄청난 '기억의 배달과 공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합니다. 우리가 깨어서 열심히 공부할 때 뇌는 밀려드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때 들어온 지식들은 앞서 올린 글 <기술이 돈을 쓸어 담는다 (5)/뉴런과 인공지능(AI)>에서 말씀드렸듯, 시냅스와 시냅스 사이의 아주 가느다란 '임시 오솔길' 상태로 겨우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진짜 기적은 우리가 책을 덮고 '잠을 잘 때' 일어납니다. 밤이 되면 뇌 속의 기억 사령탑인 '해마(Hippocampus)'가 낮에 임시로 저장해 둔 공부 내용들을 꺼내어 안전한 장기 기억 저장소인 '대뇌피질'로 부지런히 옮깁니다. 낮에 열심히 반복했던 중요한 지식의 선로를 밤새 왕복 8차선 고속도로로 넓히고 단단하게 다지는 '경화(Consolidation)' 작업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낮에 심어놓은 희미한 씨앗들이 밤사이에 단단한 '기억 고속도로'로 뿌리를 내리는 셈입니다. 밤을 새워 공부하면 다음 날 오히려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유도 바로 이 '밤샘 공사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스페이스X 신주 공모로 전 세계의 돈을 빨아들인 일론 머스크는 바로 이 점에 착안했습니다. 그는 뉴럴링크(Neuralink) 계획을 세우고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지식을 즉시 다운로드하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그리고 휴먼 로봇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입니다. 머지않아 이런 시대가 오면 "누가 더 많이 외우고 있는가?"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합니다. 모든 정보가 평준화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물을 대하는 인간 개개인의 '문제의식과 성찰', 그리고 해를 찾아가는 정보의 응용 능력, 즉 '연산 로직 구성 능력'과 '창조적 아이디어'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논술 시험을 많이 치르는 모양인데, 주어진 문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가(정답 찾기)가 과거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이게 왜 문제이지? 왜? 이 방법 밖에 없지? 더 멋지고 아름다운 해결 방법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본질을 꿰뚫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문제 정의하기)은 미래의 패러다임입니다. 논술 답안을 작성할 때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적당히 자기 생각을 집어넣어 새롭게 하는 일"이 쉬워 보여도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짜깁기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항시 새롭게 하려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와 혁신적인 마인드가 있어야만 가능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대학 강의를 맡았을 때, 학생들에게 오픈북으로 시험을 치라 했더니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고 항의를 해온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건 교수를 우습게 아는 항의입니다. 학생을 교수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A+을 준 답안지와 그 학생의 답안지를 주고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지식을 완전히 소화시켜 제 논리로 토해낸 답안과, 그저 책만 보고 베낀 답안은 논리 구성과 창의성 면에서 대번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많은 학생이 기존 교육 시스템에 길들여져 '공부=암기량'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오픈북이나 AI 활용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끼는 건, 그들이 여전히 '지식의 소유'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류의 미래는 벽돌을 많이 모은 사람이 아니라, 그 벽돌로 얼마나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는가 하는 '응용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수학의 연산 로직처럼 '해를 찾아가는 논리성'을 보는 것이 출제자와 채점자의 진짜 실력인데, 여전히 많은 교육 현장이 무식하게 정답만 매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뼈아픈 현실입니다. 도구(AI, 칩, 책)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방향타는 결국 인간의 뇌, 즉 남다른 문제의식과 집요한 관찰을 통한 성찰에서 나옵니다. 기술 진보의 시대일수록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적 사고가 더 중요해지는 법입니다.

 

새로운 신세계가 코 앞에 와 있는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대장간에서도 해머질은 기계에 맡기고, 칼의 형을 잡고 빛을 내는 날카로운 마무리 작업은 사람이 합니다. 기계를 썼다고 해서 그것을 창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칼을 사용하다가 믹서를 사용해서 재료를 갈았다고 해서 요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 맛은 결국 요리사의 손끝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AI 시대의 창작 역시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글은 화학 조미료를 탄 것이라 미식가의 혀는 대번에 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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