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옷깃을 여미다

작성자남평(김상립)|작성시간26.06.09|조회수30 목록 댓글 1

                                     다시 옷깃을 여미다                 

                                                           김

 

평생 사군자를 치고 있는 어느 선배의 화실에 들렸다. 40 크기의 화선지를 펼쳐놓고 저수지 속의 겨울 () 거의 완성해가고 있었다. 꽃은 떨어져 흔적도 없고 초록으로 반짝이던 넓고 잎들마저 흑갈색으로 변해 갈가리 찢겨 물위에 흩어져 있다. 연대도 꺾이고 잘라져서 어떤 것은 손가락 길이만큼만 물위로 보인다.선배님, 그림이 많이 변했습니다?”했더니그림이 별건가? 이제 나는 가는 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네. 어디 내가 남의 눈치 군번인가?”하신다. 그런데 선배의 가는 대로의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달관한 어느 인생도 보였고 생자필멸의 법칙을 은유적으로 강조해 놓은 듯도 했다.      

누구나 막판에 가면 잡은 , 누리던 버려두고 심지어는 몸뚱이마저 내려놓지 않는가? 사실 요즘을 장수시대라고는 해도 너무 많은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누워 시간을 천정만 바라보며 지낸다. 선배의 세가 미수(米壽) 들었으니 문병 가서 만난 지인들의 모습을 차마 그대로 그릴 없어 연에 빗대어 그렸던 것은 아닐까? 혹은 죽음을 그림으로 형상화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보자는 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배의 화실을 나오다 문득 그림 선생을 떠올렸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 20여년간 나는 J선생에게서 한국화를 배웠는데, 그는 수업을 하며예술의 세계에서는 천재란 없다. 천재라 불리는 어떤 사람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어떤 분야에서던지 최상의 작품을 만들 있는 신의 수도 없으니 애당초 기대하지 말라.” 했다. 그는 제자들이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진 찍어 그리는 것을 보면 펄쩍 뛴다.“남의 그림을 보고 그리면 은연중에 사람의 붓질을 흉내 내게 되어 자신은 점차 사라진다.”며 절대로 못하게 했다. 심지어는 선생의 가르침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실제 붓질에서는 선생을 지워야만 자신이 산다 라고 강조했다.  

평소 나도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흉내 생각 말고 것을 그리자. 작품을 완성해 놓고 내가 만족하면 그게 좋은 그림 아니겠느냐 나름의 믿음도 있었다.   예술에서는 분야가 다르더라도 배움의 길은 서로 통할 같아, J선생의 충고를 쓰기에 적용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선생이 말한 대로정말 예술에는 신의 수가 없을까 두고 오래 생각 해봤지만 분명한 결론을 수가 없었다. 모든 작가에게 통할 있는신의 없을 몰라도, 개개인에게 맞는 방법은 따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미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 작품이란 서로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다름을 표현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여기니까.    

한편,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니 소비자들의 예술에 대한 요구도 복잡 다양하다. 이런 영향을 받아 그런지 예술계에서도 30년쯤을 주기로 해서 유행이 바뀌는 것을 본다. 당장 한국화 부문에서도 비구상화가 활개를 치지만 나는 시큰둥하다. 수필에서도 제법 난해한 작품들이 나타나고 형상화나 의인화를 포함하여 새로운 문학적 표현 들이 많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나무에 피어나는 꽃이나 잎을 꾸고자, 자칫 뿌리에 소홀할까 걱정스럽다. 솔직히 지금 내 형편으로는 유행을 따르는데 투자할 시간도 부족하고 좋은 결과를 자신도 없어 그냥 평소 가던 대로 간다. 하지만 작품을 발표하고 보니, 글은 순수 수필이라기보다 에세이 류가 주를 이루고 있어 독자들이 호불호로 갈라지는 같다. 평소 수필은 사람의 경험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니, 수필가의 숫자만큼이나 수필이 다양하다 해서 이상할 없다고 여겨 왔는데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제 나는 작품 속에서 주장이 분명하게 있으면서도 가까운 친구가 곁에서 차근차근 세상얘기를 해주는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독자들이 재미가 나서 글을 읽기 보다는, 삶의 얘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다가와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글이 생명의 본질을 깊이 탐구해야 것이다. 비록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나가더라도 인간이 존재하는 누구나 지닐 밖에 없는 원초적 고뇌를 성심껏 다룬다면, 당장은 인기가 없더라도 비교적 오래 남을 있는 작품이 것이라 믿는다. 설령 돌아서면 작품이 잊혀진다 해도 어쩔 없는 일이지만. 나는 머리를 굴려 붓을 놀릴 때가 아니고, 영혼을 불러 함께 가야 나이에 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앞에서 새삼 옷깃을 여민다. 훗날, 내게 왔었던 영혼이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수필을 완성시켜 줄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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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영희 | 작성시간 26.06.14 선생님 예술과 문학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글을 어떠한 마음 가짐으로 써야 하는지도 배웁니다.
    옆에서 조곤조곤 후배들을 위해 얘기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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