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 4월호 월평
<주제 의식의 구체화와 의미화>
수필은 사람으로부터 태어나는 것들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면서 완성된다. 수필이 자기 성찰의 글이라고 해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만 그려내면 알맹이가 없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삶을 녹여내는 글이다. 일상의 경험을 단순한 기억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삶의 의미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곧 수필의 본령일 것이다.
이달의 수필 스무 편을 읽는 일은 서로 다른 삶의 결을 따라 천천히 걷는 시간과도 같았다. 작품마다 자신의 체험과 기억,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발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머무는 깊이와 방향은 제각각 달랐다. 어떤 글은 감정의 온도를 섬세하게 붙들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었고, 어떤 글은 체험만 늘어놓아 다소 지루하기도 했다. 체험과 경험을 풀어내더라도 사색이 모자란 글은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이달의 수필 중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박소윤의 「내력」이다. 이 작품은 산사에서 본 분재의 풍경을 시작으로, 사회 초년기의 자의식과 직장인의 생존 논리를 ‘외력과 내력’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한 사유형 수필이다. 작가가 자신을 ‘얕은 분재 화분에 심긴 나무’로 의미화하면서 단순한 감상이 사유로 전환되고, 삶의 조건을 구조적 문제로 끌어올리는 힘이 발현된다.
이 글의 강점은 단순한 체험을 사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의미화’에 있다. 외력과 내력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구체적 이미지와 추상적 성찰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단편적 경험을 일반적 사유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나는 얕은 분재 화분에 심긴 분재였다. 흙도 얼마 없는 곳에 옮겨 심어져서 그곳에서 일어나야 했다. 매일 새벽부터 점심까지 강의하고 집에 가서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서 저녁 강의를 시작으로 밤이 되어 마치는 일이 내 안의 토양 분이 점점 말렸다. 뿌리는 점점 더 겉으로 드러나서 언제 흙이 마를지 모르는 불안 상태에 접어들었다. 사회에서 적응하고 싶은 나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시간 관리로 나는 점점 마른 흙 속의 분재처럼 말라갔다. 그때 나는 외력과 내력의 싸움을 보았다.
쉽기만 해선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터에서 월급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 결과에서 나온다. 내력은 물체 내부에서 외력에 저항하는 반작용으로 생겨난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외력보다 내력을 크게 설계하듯이 분재에서도 도기보다 중요한 건 분재로 심은 나무의 내력이다.
- 박소윤 「내력」 중에서-
이 두 문단은 이 작품의 주제 문장이자 구조적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나 체험의 보고를 넘어, 산사에서의 경험을 자기 삶과 연결해 의미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러한 사유가 작품에 깊이를 더해 독자의 공감을 이끈다. 또한, 외력과 내력의 개념을 끌어와 화자의 삶과 연결한 것도 이 수필의 사유적 밀도를 높였다.
다만 이 주제 문단이 지닌 힘에 비해, 다소 설명적인 문장이 보이는 것은 아쉬웠다. 이미 충분히 의미화된 핵심 문단이 이후 다시 반복적인 설명으로 긴장이 완화되는 면이 있다. 만약 ‘내력’의 개념을 덜 설명하고 더 암시하는 방식으로 밀고 나갔다면, 독자들의 공감도가 더 커졌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력」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개인의 고단함을 구조적 사유로 끌어올리려는 태도에서 미덕을 지닌다. 분재라는 자연물에 자기를 투사하되 과장하지 않고, 서사를 통해 의미와 주제를 선명히 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로 주목할 작품은 하석배의 「산비탈 길」이다. 이 글은 제대 후 복학한 청년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산비탈을 오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벚꽃이 만발한 풍경과 바람의 감각, 터널을 빠져나오며 맞이하는 시골 풍경의 시각적 묘사는 단순한 회상이나 기행문이 아니라, 기억과 현실, 개인과 가족사의 교차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넋을 놓고 걸어 올라갔다. 머리 위로 하얀 꽃비가 흩날리고, 봄바람이 얼굴을 스쳐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혼란스러운 심경에 하늘이 샛노래 보였다.
집을 찾아가니 앞문이 빠끔히 열려 있었다. 부엌에서 뭔가를 하는 어머님이 보였다. 집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불쑥 나타난 아들을 본 어머니의 표정에 반가움과 민망함이 함께 어렸다. 사정이 사정인지라, 먼 길 온 자식을 웃으며 맞지 못하는 어머니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잠시 원망스러웠다.
-하석배 「산비탈 길」 중에서-
두 문단에서는 감각적 풍경과 내면의 혼란이 교차하며 정서적 긴장을 이끈다. 하얀 꽃비와 봄바람이라는 화사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한 채 ‘하늘이 샛노래 보였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눈앞의 화려한 풍경과 마음속 혼란이 섬세하게 겹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시선이 가족에게로 옮겨간다. 앞문이 열려 있고, 부엌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아들을 맞는 모습은 구체적이면서도 절제된 묘사로 제시된다. 반가움과 민망함이 교차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가족이 처한 상황의 곤란함을 함축한다. 이 대목은 단순한 귀향의 장면을 넘어, 가족의 삶과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계기로 확장된다.
「산비탈 길」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감정과 풍경을 통해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산비탈 길을 터덜터덜 오르는 화자의 몸짓과 철로 밑 굴다리와 동냥하는 남자, 허연 머리의 노인 등 현실의 구체적 풍경과 화자의 내적 동요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체감하게 만든다. 특히, 집의 갑작스러운 이사와 부모의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는 장면은 일상적 사건을 서사적 긴장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가족사의 불안과 책임감, 깨달음이라는 정서적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이 작품은 산비탈 길을 오르는 고단한 걸음 속에서 삶의 무게와 그 너머의 미미한 온기를 함께 길어 올리며, 독자에게도 오래 남는 사유의 울림을 건넨다.
박종희 essay022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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