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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공부

자아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작업

작성자혜운 김규인|작성시간26.06.09|조회수23 목록 댓글 0

자아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작업

 

 

                                                                                                              오 정 자

 

내가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다른 문학 장르보다 수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허구가 아닌 사실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시적인 표현도 할 수 있고, 소설처럼 구수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부끄러운 자신의 속마음까지 보여 주며 자아성찰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진솔하게 표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결혼식장에서 180년 된 미국교회를 섬기고 있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인 목사님을 만났다. 나와 같은 성바지인 아는 분이 우리와 같은 관향이라면서 그를 소개해 주어 이국땅에서 반가운 혈통의 정을 느끼며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인 한인 이민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설득력 있는 사고를 펼치며 열변을 토했다. 철학박사이면서 신학을 전공한 목사님은 미국교회 목회를 하다보니 모국어로 된 책은 거의 읽지 않는데 법정 스님이 쓴 수필은 읽는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글은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비워 인생 경지의 깨달음에서 나온 글로 소란스럽지 않아 마음에 와 닿는다는 것이었다. ‘깨달음’과 ‘소란스럽다’라는 두 단어가 내 가슴에 와 박혔다. 은은하면서 깨달음이 있는 글, 바로 그런 글이야말로 인간의 영혼까지 맑게 해 주는 좋은 수필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자기 수양을 쌓는 구도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늘 생각이 깨어 있으면서 마음을 갈고 닦아야 깊은 산속의 샘물처럼 맑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수필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 중에서 글감을 찾는다. 그것이 독창적이고 참신한 소재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소재이거나 이미 누군가가 쓴 소재일지라도 내가 체험한 경우엔 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써 보려고 몸부림치며 그 소재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상념 속에 잠기다보면 불현듯 영감이 떠올라 곧장 컴퓨터의 글자판을 두들기며 단숨에 써내려가 쉽게 글 한 편을 완성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엔 일상에서 발견하고 겪은 느낌이나 생각들을 감흥이 사라지지 않도록 간단히 메모해 둔다.

그런 다음 바로 글을 쓰지 않고 감정이나 생각을 묵혀 둔다. 즉 사고(思考)가 충분히 익었다 싶으면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소재를 선택하고 ‘무엇을 쓸 것인가’의 주제를 설정한 다음 제목을 붙이고, 서두는 가급적이면 느낀 바를 묘사한 것으로 첫 문장을 시작한다. 그리곤 선택한 재료들을 배합하여 서술해 나가며 초안을 잡는다. 결미는 주제를 두드러지게 하기도 하고, 때론 여운이 남는 글로 마무리를 하려고 고심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참고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같은 단어라도 되도록이면 문학적인 향기가 나는 적합한 어휘를 골라 쓰려고 사전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이십여 년 넘게 이국땅에서 살다보니 어떤 단어는 영어표현에 더 익숙해 한국식 감정표현이 안 될 때가 더러 있어 애를 먹기도 한다. 이렇듯 어휘력이 부족하고 문장도 뛰어나지 못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주옥같은 글을 읽으면 도전이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주눅이 들어 붓을 놓고 싶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내 안에 술렁이는 언어들의 시위로 다시금 글쓰기에 매달리는 나를 발견한다.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수필이란 생각이 든다. ‘미치지 않으면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의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듯이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초고가 완성되면 일단 덮어 둔다. 그리곤 며칠 후에 꺼내어 읽어보고 문맥은 유연하게 흐르는지, 맞춤법은 정확한지를 살피면서 불필요한 내용이나 수식어는 삭제하고, 보다 적합한 단어와 좋은 표현으로 보충해 넣으며 신물이 날 정도로 수없이 고치고 다듬어 비로소 탈고를 하게 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퇴고이다. 퇴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퇴고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인 동아리 선배의 조언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미주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선배는 기뻐하며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문서선교지에 실을 원고를 청탁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원고료까지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용감하기만 했던 나는 단숨에 화려한 문장의 글을 써 단 한 번 읽어보고는 곧바로 원고를 보냈다. 선배는 내게 “따스한 마음과 문학적 소질이 있는 정자 후배의 앞날에 서광이 보인다는 걸 난 알고 있어"라는 칭찬의 말로 시작해 퇴고는 훌륭한 작가들도 수없이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문호인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100번이 넘게 퇴고했다고 하면서 “퇴고는 글 쓰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넌지시 일침을 놓아주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선배가 예전에 국문과에서 수학할 때 박목월 교수님께 시 한 편을 보였더니 ‘을, 를’ 등의 조사만 빼고 모든 미사여구는 빨간 펜으로 찍찍 그어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랐다는 얘길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때 그 선배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난 아직도 퇴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용감하게 글을 발표했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할 따름이다. 그 후론 마감날짜가 정해지지 않으면 영영 글을 내게서 떠나보내지 못할 정도로 붙들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은 마감일을 하루 이틀 넘기고서야 부끄러운 마음으로 겨우 보내곤 한다.

흔히 글을 쓴다는 것은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고통스런 작업'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뇌하며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작가의식을 가지고 치열하게 써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심오한 철학을 지닌 중수필은 쓰지 못하더라도 잡문이 아닌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수필을 쓰려면 예리한 관찰력과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나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면서 생명이 있는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수필다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주제의 형상화, 소재의 의미화도 중요하겠으나, 뭐니 뭐니 해도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은은한 감동과 공감을 안겨 주는 울림이 있는 글, 단 한 편이라도 마음을 맑게 하면서 깨달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출처

https://cafe.daum.net/jsoopil/eue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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