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문학, 예술이란 무엇인가? 유인실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기에 앞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여전히 연구되고 있고, 앞으로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다만 지금까지 연구되어온 인간의 존재론적 특징을 범박하게 살펴보면, 인간 존재는 근원적으로 자아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요, 방황하는 존재요,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부터 생명공학, 첨단 소재 등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진보적으로 급격하게 바꾸어 놓는다 할지라도 현대인들은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방황하고 있다. ‘존재’란 실재성(reality)을 가리키는 근원적인 개념이다. 존재는 인식되는 실재성에 따라서 보편적 존재(인간)와 절대적 존재(신)로 구별된다. ‘실존’은 ‘본질’과 다르다. 즉 ‘실존’은 개별자가 그 자체로 ‘존재함’을 뜻한다면 ‘본질’은 개별자의 일반적인 본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실존이지만,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권위, 명예, 부, 자아성취, 인정 욕구 등 모든 외적인 경험을 없앤 다음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오롯한 상태에 놓일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그래서 실존을 경험하는 주체는 ‘세계 속의 자아’로 표현될 수 있다. ‘자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즉 자아의 존재론적 성찰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의 내면 성찰과 현실적인 삶의 깨달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언명한 바 있다. 이 말은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사유 작용이 인간의 존재 이유임을 함축한다. 즉 인간은 관습과 도식에 의해 의존하는 사유의 틀을 벗어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사색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범주화하면서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의 절대성을 무너뜨렸다. 이후 절대적 가치가 상대적 가치로 변환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생성된 상대적 가치가 주체 인식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이해는 주체(자아)와 객체(타자)와 상호 관계 속에서 성찰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고독한 인간의 내면’과 ‘삶의 태도’를 성찰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탐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치열한 존재 탐구를 통해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을 확인하고, 자아의 존재 가치를 정립하며,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의를 형상화 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오늘날 문학의 사회적 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인간과 문학 사이의 균열은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실존하는 현실은 새로운 기술들로 인해 그동안의 삶의 방식들을 뒤흔들어 불평등이 심화되고 인간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인간은 자아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지속함으로써 참다운 인간을 지향하고자 한다. 현실을 정직하고 냉철하게 인식하고, 삶의 본질을 은폐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현실과 대결하면서 이상적인 자아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진정한 자아의 모습, 존재와 본질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을 제시하는 그 열쇠를 문학이 쥐고 있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짧은 질문에 대한 수많은 글들이 있어 왔지만 그 글들 중 어떤 것도 문학에 대해 완벽한 설명을 제시한 것은 없었다. 이러한 설명의 어려움은 ‘문학’이라는 대상 자체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문학 자체가 여러 복합적인 영역이 겹친 대상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를 매개로 하여 표현하는 예술”이다. 즉 문학은 ‘삶’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문학이라는 질문 속에는 문학의 상위 개념인 ‘예술’과 문학이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종차적 요소인 ‘언어’와 문학의 하위개념인 시, 소설, 수필 등 개별 장르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이 중첩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을 형상화하는 예술’이라는 정의로부터 ‘예술(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미학(예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꽃은 왜 아름다운가? 미학의 문제는 이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것은 자연적 존재와 인공적 존재로 나눌 수 있다. 꽃, 나뭇잎, 저녁놀 등은 자연미 영역에 속하며 일차적 감각에 호소한다. 이에 비해 문학, 음악, 회화 등은 예술미 영역으로 감각과 정신에 호소한다. 이들은 모두 인간에게 쾌감을 준다. 또한 이들 대상의 아름다움은 실생활의 실용적 목적과 유리되어 있다. 즉 우리가 어떤 대상을 통해 미적 쾌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에 주의력을 기울일 때, 그 목적이 대상의 외부에 있지 않고 대상을 보는 그 자체에 있는 경우, 이 시 감상, 음악 감상, 그림 감상을 할 때 느끼는 즐거움과 쾌감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미학의 또 다른 관점은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은 그 대상의 내용적 측면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인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이 아름답다고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작품사진에서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에서 삶의 연륜이 그대로 느껴질 때 그 주름은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노인의 얼굴 주름이 아름답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은 그 대상의 내용적 측면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예컨대 문학이 아무리 삶의 모습을 가장 핍진하게 드러내는 장르라 할지라도 이상을 상실한 어두운 현실을 암울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추악한 현실의 단순한 복제가 진실하지 않은 것은 그 정태적 형상이 삶의 본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진실하게 그리려면 현실의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한편 그 형상 속에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한 열망을 담아야 비로소 문학, 나아가 예술이 되는 것이다.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치장하는 것 역시 아름다울 수 없다. 모든 예술작품은 인식론적론 측면(현실의 인식)과 가치 지향적 측면(이상적 가치의 지향)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즉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이란 현실과 이상의 긴밀한 연관성, 혹은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은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인식이 가치 지향적 자기인식의 형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예술의 하위 범주 가운데 문학은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예술들은 모두 감각적 재료들을 매체로 사용하여 우리의 감각기관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에 비해 문학은 언어라는 기호의 해독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우리의 감각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감각적 직접성은 불충분하지만, 대신에 ‘사상의 직접적 표현’이 가능하다. 사상의 표현이 자유롭다는 것은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풍부한 재현 및 표현의 영역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언어 매체를 사용하는 문학의 가장 큰 장점은 시공간적 제약성이 없어 인간과 세계의 모든 대상과 영역을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https://cafe.daum.net/jsoopil/eue0/294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