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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柹雪

작성자안규수|작성시간26.06.18|조회수16 목록 댓글 0

시설 柹雪

                       맹난자

 

 

농가에서 보내온 작은 곶감 상자를 열였다.

반건시 된 곶감들이 먼 길 오느라 몸져 누었다.

 

그놈들을 꺼내 손끝으로 매만져 쟁반에 앉혔다.

작은 산봉우리들이 연봉連峰을 이룬 듯하다.

 

시간이 흐르자 검은 곶감 표피에 흰 가루가 묻어났다.

온몸의 세포들이 당분으로 피워낸 눈꽃, 시설柹雪,

 

무슨 소식인가.

영혼의 비상飛翔, 새로운 존재의 환원이 아닌가

 

그때 ‘수필은 시설 같아야 한다’는

윤오영 선생의 말씀이 떠올랐다.

 

수필, 그것은 업장소멸 뒤의 해탈 같은 것.

 

얼마 전 수골실收骨室에서 남편의 유해를

받아 안았을 때, 그것 역시 시설 같았다.

 

 

< 이 글을 읽고 >

                                  

 

<수필오디세이 여름호>에 게제된 맹난자 선생의 시수필 〈시설柹雪〉을 처음 마주했을 때, 부끄럽게도 나의 시선은 ‘감나무에 내린 눈’이라는 사전적 의미나 겨울 풍경이 주는 서정성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 수필계의 거목인 선생이 곶감 표면에 하얗게 피어난 분말을 통해 그저 ‘인생의 황혼기가 주는 성숙함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담하게 노래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탓이다. 그러나 글을 거듭 읽어 내려갈수록 문장 속에 숨겨진 거대한 사유의 깊이가 전율처럼 다가왔다.

작가는 검은 곶감 표피에 묻어나는 흰 가루를 ‘온몸의 세포들이 당분으로 피워낸 눈꽃’이라 명명하며, 이를 “영혼의 비상, 새로운 존재의 환원”이라고 선언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비로소 아둔한 시선을 거두고 작가의 참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시설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떫은 감이 바람과 햇살 속에서 긴 시간의 인고를 거치며 자신을 완전히 삭혀내고 마침내 도달한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과거 윤오영 선생이 말씀하셨다는 “수필은 시설 같아야 한다”는 문장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온갖 삶의 굴곡과 번뇌를 다 거치고 난 뒤, 마침내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도달한 해탈의 경지야말로 수필이 지향해야 할 본질이라는 뜻이리라. 작가는 곶감이라는 작고 소박한 사물에서 문학의 정수를 길어 올리고 있다.

이 수필의 진정한 백미는 마지막 단 두 줄에 있다. 얼마 전 수골실에서 남편의 유해를 받아 안았을 때, 그것 역시 ‘시설’ 같았다고 고백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남편의 유골을 차가운 재나 절망적인 죽음의 흔적으로 보지 않았다. 평생의 삶을 불꽃처럼 살다 간 한 영혼이 마침내 육신을 벗어던지고 가장 순결한 모습으로 피워낸 ‘인생의 완성된 눈꽃’으로 바라본 것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비극을 영혼의 비상과 승화로 승낙하는 이 눈부신 비유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뒤흔든다.

평생을 문학의 힘으로 살아오신 맹난자 선생의 고결한 정신세계와 글솜씨가 고스란히 응축된 명작이 아닌가 싶다. 유한한 시간의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나의 삶 또한 언젠가 저 시설처럼 모든 업을 멸하고 하얗고 순수한 존재로 환원될 수 있을까. 작품에 투영된 영혼의 정화 과정이 마치 거울처럼 내 인생과 겹쳐져,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하고 뜨거운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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