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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작품

노우老友들과 함께 찾는 경희궁

작성자표운|작성시간26.06.05|조회수101 목록 댓글 0

노우老友들과 함께 찾는 경희궁

                                                                        -표 민 웅-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이다. 들녘에는 연초록 모가 바람 따라 물결치고, 산과 들은 짙어가는 녹음 속에 생명의 숨결이 가득하다. 하얀 아카시아꽃 향기는 길가에 은은히 번지고, 눈부신 햇살 아래 피어난 장미와 수국은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마저 환하게 밝힌다. 바라보기만 해도 지친 우리 마음에 새로운 희망과 따뜻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계절이다

사진#1,서울고등학교 아래 운동장주변의 벚꽃철 모습 seoulcity.co.kr

  1953년과 1956년 봄, 서울과 부산에서 만난 우리들은 경희의 옛 궁터에서 꿈을 키워 왔다. 봄에는 벚꽃과 개나리꽃 속에서, 여름에는 달콤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풍기는 녹음 짙은 산속에서, 가을에는 불타는 단풍을 즐겼다. 졸업 후 67년의 세월이 흘러 초여름의 경희궁터를 찾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사진#1)

 

  조선 후기 실학의 거목 정약용은 『수종사 유람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다시 오면 하나의 즐거움이고,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현달하여 찾아오면 또 다른 즐거움이며, 홀로 외롭게 지나가던 곳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오면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우리가 학창 시절 청운의 꿈을 함께 키웠던 옛 교정, 경희궁을 졸업 67주년에 다시 찾게 된 것은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경희궁을 떠난 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며 바쁜 세월을 살아왔다. 그 여정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보람과 기쁨을 발견하며 인생을 가꾸어 왔다.

 

  특히 졸업 40주년이던 1999년부터는 5년마다 추억여행을 이어왔다.

  1999년에는 충청과 백제 문화권을 찾아 추사고택, 해미읍성, 채석강, 내소사, 정림사지, 낙화암, 공산성 등을 둘러보며 찬란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겼다.

  2004년 졸업 45주년에는 월출산, 왕인박사유적지, 담양의 송강 정철 유적지, 윤 선도의 녹우당, 대흥사, 다산초당 등을 찾아 호남의 역사와 인물을 만났다.

  2009년 50주년에는 HD현대중공업을 견학한 뒤, 석굴암, 문무대왕릉, 양동마을, 도산서원, 하회마을, 탄금대, 청풍문화재단지, 옥순봉 등을 찾으며 신라와 조선의 정신문화와 만났다.

  2014년 55주년에는 남해안과 다도해를 따라 부산, 거제, 통영, 한산도, 남해, 목포를 순례하며 아름다운 바다 풍광과 충무공의 발자취를 되새겼다.

  2019년 졸업 60주년에는 밴쿠버, 빅토리아와 캐나다 로키산맥을 찾았고, 같은 해 가을에는 강원도의 명승지를 찾아 설악산, 오대산, 추암 촛대바위, 죽서루, 경포호 등을 둘러보며 자연과 문학, 그리고 역사 속 인물들의 숨결을 느꼈다.

 

                                     

사진#2: 벤쿠버 Stanley Park에서, 뒷 배경 Lions Gate와 Grouse Mountain>

  2024년 가을, 졸업 65주년에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경복궁을 찾아 우리 역사와 전통의 숨결을 느끼며 지난 추억여행의 여정을 뜻깊게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지난 5월에는 노후의 힘든 상태에도 불구하고 만만회 주관으로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영월에 도전하였으며, 이제 우리는 다시금 젊은 날의 꿈과 우정이 깃든 모교 교정 경희궁을 찾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추억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우정을 더욱 깊게 다져온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는 곳마다 향토의 정취와 따뜻한 인심을 느끼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새롭게 하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이제 졸업 67주년을 맞아 망백(望百)을 소망하는 노우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애틋한 정을 품고, 그러나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옛 교정 경희궁을 찾는다.

비록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아  당일 일정으로 함께하게 되었지만, 그 의미만은 어느 때보다 깊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져 온 우정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새로운 생명력으로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학창 시절이 설렘의 계절이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리움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석양을 맞은 인생길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함께한 우정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오는 6월 9일, 노우들은 옛 교정 경희궁에서 다시 만난다. 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나누며, 지나온 세월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나날을 축복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우정과 추억의 여정 다시 찾는 옛 교정 경희궁

‘역사의목격자’ -고목나무를 만나다

 

  인왕산의 정기를 타고, 창창한 수풀속의 경희궁터에서 우리는 6년간 진리를 탐구하였다. 우리를 오늘날까지 지탱해 준 자부심이다. 서운瑞雲이 감도는 곳에서 공부를 했으니 우리는 축복받은 인간이 아닌가?

 

  2026년 졸업 67주년이나 되었다. 전통의 만만회에서는 오는 6월 9일(화)에 모교였던 경희궁을 찾기로 하였다.

 

  2014년 9월 25일 55주년 행사를 마치고 LA로 돌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쓴 주영세 목사의 글이 생각난다.

  「...우리들의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자, <보금자리>인 옛 교정 경희궁터를 방문하였을 때, 아직도 그 궁터에서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우리의 어린 정령精靈들이 어느 구석에서 불현듯 튀어 나올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보이는 궁은 보이지 않고, 그 옛날, 본관과 특별 교실, 그리고 강당과 체육관, 음악실과 이발관, 도서실, 드넓은 아랫 운동장과 눈싸움을 하였던 윗 운동장, 점심 먹던 방공호 위와 낮 잠자던 뒷동산과 수풀들과 함께,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모습이 아련거려 눈시울을 붉게 하였다...」

 

  조선 후기의 이궁離宮인 경희궁은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다. 완공이 된 1623년과 1624년에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이 일어나 창덕궁과 창경궁이 연이어 전소되자 창덕궁이 중건될 때까지 경희궁은 임시 정궁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王氣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광해군은 인조를 견제하기 위해 몰수하였는데 인조의 반정으로 광해군은 폐군廢君이 되는 신세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많은 왕들이 경희궁을 이궁으로 애용했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숙종은 왕세자 경종에게 정사를 맡기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고, 특히 사도세자가 죽은 창경궁을 피해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정조 즉위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1946년부터 1980년까지 인왕의 정기를 받으며 왕기가 서린 이 궁터에서 우리와 선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하였다.(사진#3)

                   

  사진#3.   1970년대 서울고 전경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운동장에는 해방후 1945년부터 1946년까지 미육군 항공부대가 주둔하였으며 숭정문이 있던 학교 본관과 운동장은 1953년까지 한국전쟁 기간에 영국군이 병영으로 사용하였다.

 

* 경희궁의 복원

 

  1978년 서울고등학교는 서초동으로 이전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서울시는 학교 부지를 현대건설에 매각하였고 현대 그룹은 이곳에 사옥을 조성하려 했었다. 그러나 1980년에 경희궁지는 사적 271호로 지정되어 공원 녹지 확보 차원에서 이를 서울시가 재매입했다.

 

  서울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正殿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시는 최근 경희궁 일대가 서울광장 10배 규모의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종합적인 구성안을 마련하였다. 궁의 정문인 흥화문과 승정문 사이의 공간부터 정비하고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궁 전체 모습을 바꾼다고 한다. 올해부터 경희궁 내부에 역사정원 착공, 한양 도성과 정동 사거리에 돈의문 복원, 돈의문 박물관마을 녹지화를 조성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경희궁지와 주변 국립기상박물관, 서울시민대학, 서울시 교육청과 돈의문 박물관마을등 4곳 일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하면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탄생하게 된다.

 

 

 

*경희궁의 노거수老巨樹

 

흥화문에서 올라가다 보면 왼쪽 비탈 위에 유독 시선을 끄는 커다란 고목이 서 있다. 밑동 가운데가 휑하니 뚤려 괴상한 몸체를 지닌 느티나무 고목이다.(사진#4)

                                       

                                                                                (사진#4)경희궁 노거수

높이 19m, 둘레 3.8m로 수령이 약 380년에 이르니 우리가 처음 보았을 때는 300여 년이 된 노거수다. 이 나무는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일생을 경희궁과 함께 하며 대원군의 경희궁 해체, 일제의 만행으로 부서지고 훼손되는 순간들, 1945년대와 6,25시절 외인부대들을 모두 하릴없이 지켜보았을 산증인이리라. 아마도 그 아픔으로 구멍이 뻥 뚫렸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고목 나무 바로 옆에는 음악실이 있었다. 항상 벤드반의 아름다운 연주와 합창반의 노래를 들으며 이 노거수는 풍상을 견뎠으리라.

                                     

사진#5, 흥화문에서 숭정전으로 가는길의 단풍

노거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영욕의 역사를 담은 경희궁을 걷는다.

흥화문(구 학교 정문)에서 숭정전으로 가는 길(사진#5)을, 잔디밭과 정원 일대를 가로지르는 녹음 짙은 산책로를 걷는다, 하얀 겨울이 오면 우리는 다만 사라질 뿐이다. 새로운 인생길을 맞이하기 위해서...(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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