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발표작품

당신은 누구신가요

작성자서소희|작성시간23.12.27|조회수48 목록 댓글 4

당신은 누구신가요

 

 

 

  이번에는 보랏빛의 리시안셔스군요. 어제 꽃병이 사라졌기에 걱정을 했답니다. 혹시 이제부터는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꽃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오늘 꽃병이 다시 나타났네요. , 짧은 감탄사가 튀어 나오더군요.

  처음 꽃을 봤던 때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향기가 났어요. 누가 있나 싶어 뒤를 돌아봤지요. 아무도 없었어요. 방향제가 아닐까 싶어 천정벽도 봤답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었어요. 자연스레 시선이 밑으로 흘렀지요.

  모퉁이 구석자리, 하얀 꽃병에 꽃이 꽂혀 있었어요. 설마 저 작은 묶음의 꽃에서? 허리를 깊이 숙이며 코를 가까이 가져가 봤어요. , 그 꽃의 향기더군요. 그 순간 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라는 만화 노래가사를 흥얼거렸답니다.

  꽃향기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들더군요. 아마 나를 비롯해 이곳을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을 겁니다. 인공적이지 않는 향기는 그런 마법을 지녔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당신은 이렇게 꽃을 놓아두는 것 아니겠어요.

  꽃묶음은 크지는 않았어요. 묶음이라기보다 두서너 개의 가지였지요. 있는 듯, 없는 듯, 이곳이 원래부터 자신의 자리라는 듯 자연스레 놓였더군요. 아마 꽃꽂이를 잘하는 분이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그 모양새가 깔끔했고 주위 벽과 잘 어울렸으니까요.

  무엇보다 꽃은 우리가 쉽게 보는 꽃이 아니었답니다. 라일락, 목련, 백일홍, 이질풀, 장구나물, 쑥부쟁이, 개망초······, 나는 이런 꽃을 보며 살아왔어요. 당신이 놓아두는 것은 이런 꽃이 아니에요. 라넌큘러스, 마트리카리아, 델피늄, 루피너스 등등 이름도 어려워요. 내가 아는 꽃이 영희, 경자, 정숙이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면 당신이 놓아두는 꽃은 엘리자베스, 케이트, 멜리사처럼 혀가 꼬이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꽃 이름을 어떻게 아냐구요? 컴퓨터를 뒤져보거나 꽃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답니다.

  언제부터 꽃이 놓여있었을까요. 내가 처음 봤던 것이 시작이었을까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몇 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보았던 작은 화분이 생각났어요. 맞아요. 화분이 놓인 곳은 엘리베이터 앞이 아니라 입구 현관문 밖이었어요. 세 개의 주먹만 한 화분에 작은 꽃들이 피어있었지요. 그때는 무심히 흘려 봤답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작은 화분이 사라지고 엘리베이터 앞 구석에 꽃병이 놓였던 것이겠죠. 꽃은 시들기 전에 바뀌더군요. 한 달 혹은 두어 달, 길어봤자 서너 달 그렇게 놓여있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러다 말겠거니 여겼답니다.

  벌써 사 년입니다.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부터 보아왔으니 말입니다. 어찌 이렇게 한결 같은 마음으로 꽃을 놓아두는가요. 때로는 귀찮기도 할 텐데, 가끔은 당신 곁에만 두고 혼자서 즐겨도 충분할 텐데요. 무엇보다 꽃값이 아까울 법도 한데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덕스런 마음이 있어요. 나부터도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하다보면 게을러지고 귀찮아지기 마련이니까요. 누군가를 위해서 한 번쯤, 혹은 두서너 달 꽃을 놓아 둘 수는 있겠지요. 그 마음이 사 년 동안 변하지 않기는 쉽지 않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현관입구에 꽃을 놓아두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 사소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보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그 마음은 용기와 부지런함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옛 성인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묘심妙心 혹은 지심至心, 심심深心이라고 표현했답니다. 그 묘하고 깊은 마음을 닮아보고 싶습니다.

  나는 꽃을 쉽게 사지 못한답니다. 요즘 꽃값이 만만치 않아요. 아니 예전부터 꽃값은 내게 만만치 않았어요. 그렇다고 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무척 좋아하지요. 누가 꽃을 싫어할 수 있을까요. 단지 꽃값이 싸지 않아서 쉽게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될 뿐입니다.

  그 누군가가 가끔 꼭 당신을 위해 꽃을 사라삶에서 그 정도 사치는 괜찮다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특별한 날은 나를 위해 꽃을 살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꽃을 보며 행복해 할 겁니다. 당신이 그 누군가가 아닐까요. 당신은 나에게 매일 꽃을 보여주니까요. 당신 때문이 나의 매일은 특별한 날이 됩니다. 또한 당신이 놓아 둔 꽃으로 행복합니다.

  삶이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져요. 사람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근래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기이한 현상도 생겼답니다. 특히나 아파트라는 구조는 옆집 사람 얼굴보기가 쉽지 않아요.

  이웃과 단절된 아파트에서 당신의 작은 꽃묶음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어요. 몇 개의 꽃송이로 공간은 충분히 밝아지고 아름다워지지요. 그리고 이웃이면서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꽃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는 것을 느낀답니다.

  집으로 가기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마음이 따스해진답니다. 나도 당신처럼 타인에게 따듯함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 무엇보다 당신이 궁금해집니다. 궁금하지만 당신을 찾아보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알 수 없을 때 더 많은 상상을 하게 하게 만드니까요.

  그냥 선한 영향력을 가진 묘심으로 기억할게요. 그래요. ‘묘심이라는 이름이 딱 좋겠네요. 서로를 모른 채 이 정도의 거리에서 당신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네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꿈꾸는별 | 작성시간 24.01.08 여전히 마음을 차분하게 보듬는글 감탄합니다
    향기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군요
    그래서 세상은 충분히 유쾌하게 살 가치가 있지요
    추운날씨 건강유의 하시고요^^*
  • 답댓글 작성자서소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10 별님 오랜만에 안부 여쭙니다. 안녕하신가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런게 향기나는 분이 많아 졌으면 좋겠어요.^^
  • 작성자자윤김태선 | 작성시간 24.01.29 아름다운 맘씨네요
    그렇게 살면 참 좋으련만
  • 답댓글 작성자서소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05 아름다움을 아시는 자윤님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