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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빨랫줄과 바지랑대-모임득

작성자덕혜-김민주|작성시간13.01.14|조회수49 목록 댓글 0

신춘문예 당선작 작품성 비교

 

 

(수필과비평 2006년 5~6월호 등단작품.  2009년도  푸른솔문학  명작품선집 수록)

 

빨랫줄과 바지랑대/모 임 득

 

모처럼 마당가에 번진 햇살위에 구름을 내 걸고 싶다.

며칠째 내리는 비에 쌓여가는 시름만큼이나 빈 빨랫줄에서는 물방울만 오종종 매달리다 떨어지곤 했다.

서둘러 일상의 고단함을 빨래와 같이 탁탁 털어 줄에 넌다. 쌍둥이가 벗어놓은 옷들이 어찌나 많은지 세탁기로 휘휘 돌려 너는 일도 힘에 부친다. 하루 종일 쓸고 닦으며 치우다보면 지치고 짜증나는 날들이라서 얼굴은 펴질 때가 없다.

마당의 길이만큼 걸쳐진 빨랫줄이 주어진 삶이라면 바지랑대가 놓인 중간 지점만큼 온 인생이다. 숨 가쁘게 분주한 일상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면 바지랑대 높이에서 바라보는 곳도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거리며 살아온 듯싶다. 이십대 후반부터 외줄 타기하듯 발끝에 온몸을 지탱한 채 자식을 갖기 위한 일념으로 살았다. 하얀 기저귀가 널리기를 갈망하며 병원을 드나드는 횟수만큼 근심만이 널렸었다. 불혹이 가까워서야 쌍둥이를 낳았을 때 하루 세 번 세탁기를 돌리면서도 행복에 겨워하며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조금 힘들다고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 손길 닿을 빨래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빨래에는 내 행복의 원천인 가족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새벽같이 나가서 어둑해서야 들어오는 남편의 양말은 나보다도 남편의 일상을 더 알고 있을 터이다. 변비 때문에 놀림 당했을 아들아이 팬티를 볼에 대 보니 냄새보다는 속살에 어울려 함께했을 체취가 전해져 온다. 치마는 한사코 마다하며 머슴애들하고만 노는 딸아이의 바지까지 널어놓고 보니 하늘이 참 곱다.

쪽으로 물들이면 저렇듯 고운 빛이 나올까. 내친김에 수돗가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 옷만큼은 손으로 비벼 빨고 있다. 울퉁불퉁 집에서 만든 비누로 비비다보면 피어나는 거품처럼 속이 후련하다. 한번 두 번 헹굼 질하는 단순한 움직임 속에 시름은 사라져 버린다. 커다란 자배기에 물을 받아 헹군 옷들은 짜지 않고 축 걸쳐 넌다.

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큼 파이는 마당의 흙. 무게도 느껴지지 못할 만큼 작은 존재인 물방울이 낙하하는 속도만큼 흙 마당은 자리를 비켜준다. 작더라도 큰 힘을 쓸 수 있고 맞서기보다는 돌아가는 이치이리라.

처마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돌담 옆에 있는 모과나무까지 걸쳐진 줄이 힘에 겨운지 축 늘어진다. 바지랑대를 중간에 세워 무게를 덜어주니 한결 보기가 좋다. 장대 하나가 버티기에는 벅찰 텐데도 아무런 불평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피곤에 지쳐 처진 남편의 어깨위에도 바지랑대를 받쳐주면 한결 가벼워질까. 전 재산을 투자한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사십이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남편의 마음이 가벼워진다면 기꺼이 바지랑대가 되어 주고 싶다.

옷가지를 가득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이 남편의 모습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늘어진 줄 같았다. 인연이 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태아들로 침통해 있을 때 남편은 바지랑대가 되고 따뜻한 햇살이 되어 힘을 보태 주었다.

빨랫줄과 바지랑대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인생살이이지 싶다.

무거워진 줄에 온 식구가 걸려있다. 혼자 두 팔 벌리고 힘겨움을 참고 있을 남편의 빨랫줄에 이제부터는 내가 바지랑대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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