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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민들레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3.01.03|조회수129 목록 댓글 0

[2013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민들레 / 송종태

 

 

등황빛 초롱이 불을 밝혔나. 배꽃 흐드러진 과수원 고랑으로, 청량한 바람이 대야에 담아 놓은 치자 물빛을 순식간 풀어놓는다. 하얀 하늘과 노란 바다가 손을 맞쥘 때면 갓 깨난 연노랑 형광 나비가 하르르 날아오른다. 민들레는 아무래도 홀로 핀 모습보다는 어우러진 꽃차례를 서로 움 쥐고 얼굴 비벼대는 앙증스런 모습이 장관이다.

 

농막 바람벽 아래 민들레 한 송이가 노랑나비처럼 조심스레 앉아있다. 마치 산모롱이 외딴집 사립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촌로처럼, 애처롭고 적막하다.

 

몇 해 전, 인적이 드문 철로 옆길을 걸었다. 철로 분기선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광장으로 등황빛 물결이 휘감듯 흐르고 있었다. 너무 뜻밖의 모습에 당황했다. 민들레가 철로 밑 자갈밭을 점령하고 길게 늘어진 철길을 따라 화원처럼 군영을 이루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황홀하다는 생각보다는 두려움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무슨 연유로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한(恨) 깃든 꽃대를 곧추세운 채, 날 선 기세로 저토록 총포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지, 발밑을 파고들어 금방이라도 온몸으로 노랑 물감을 풀어놓을 것만 같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여린 새싹이 저리도 무지막지한 힘을 지녔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봄에 피어나는 초화(草花)는 그저 안쓰럽고 귀엽고 곰살맞은 모습에 행여 다칠세라 발걸음마저 조심스레 떼는데 민들레의 기세는 예상 밖이었다. 잔뜩 긴장된 마음이 평심을 찾고 나서야 민들레가 귀화 식물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토종식물이 양반집 규수라면 귀화식물은 여염집 아낙이다. 생존력이 강하고 흥부네 가족처럼 많은 식솔을 거느리며 살아가는 특성이 있다. 그 연유는 타향에서 낯선 환경을 견뎌내며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귀소본능의 발로가 아닐는지. 객지에서 한평생을 살아가는 내 처지와 엇비슷한 민들레가 왠지 측은하여 연민마저 살포시 고개를 든다.

 

새 직장에서다. 중국과 동남아 각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철길에 섬뜩하게 핀 민들레 형상이 스쳐 갈 때다. 시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을 보았다. 섬돌아래 기대어 고즈넉하게 피어난 민들레처럼 한적한 농촌의 쓸쓸함이 묻어나듯, 어디선가 봄직한 모습이다. 굽은 허리와 왜소한 체구가 졸들어 보이지만, 해맑은 미소 속으로 비치는 주름진 얼굴은 지난한 세월이 담겨 있다. 안경 너머로 커다란 눈은 서그러워 보이나, 앞니가 빠진 탓인지 제 나이보다 대여섯은 위로 보이는 오십 대 중반의 수더분한 사내다.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객지에서 옛 친구를 조우하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친근하게 당기는 서근서근한 성격 때문인지 곧 친숙해갔다.

 

한중수교를 맺은 이후 돈벌이를 찾아 고국으로 나왔다는 그는 한국 생활이 지쳐 보이고 고독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게 정신적 의지를 많이 하는 듯 출퇴근 시에는 꼭 들러 가곤 했다. 그런 그가 늦어지면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고, 몇 날을 못 보면 감치도록 야젓한 그가 불연 듯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 친구는 귀화 수습 중이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불안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여생을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닌 듯싶다. 귀화에 관한 소견을 피력하기가 조심스럽고, 신중히 고심하여 내린 결정인지 걱정이 앞선다. 반세기를 지내온 긴 세월인데 인연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이 삶을 시작함은 결코 용단 내리기가 쉽지는 않았으리라. 미련 없는 여정일지라도 풋풋한 정은 남아있을 터, 과거를 묻어버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 문화와 타협하며 산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했다.

 

생장점이 멈춘 늦가을 뜰에 한 송이 민들레가 설핏하게 피어있다. 엄동설한을 앞두고 뉘엿한 햇뉘를 쪼이며 슬픈 몸짓으로 왜 그리도 시리게 웃고 있는지. 그 자태가 흡사, 흑룡강 성 조선족 마을을 떠나온 그 친구를 보듯 가슴으로 시린 바람이 불어온다.

 

일제 강점기, 그들은 고국을 등에 메고 드넓은 초원과 강이 흐르는 곳에 민들레처럼 뿌리를 내렸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서로 의지하면서 귀화인이 되었을 게다. 그들은 한국이 고국이면서도 이방인이 되어 다시 귀화인으로 살기 위해 일터를 잡고 한글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친숙해지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귀화인을 고운 눈으로 보지를 않는 듯하다. 조선족 동포를 방랑벽 있는 길손쯤으로 치부하고는 한다. 민들레 경우도 그렇다. 무슨 연유인지 사람들은 민들레를 화초라 부르지 않는다. 노랑 저고리를 곱게 입고 자태를 뽐낼라치면 천한 주제에 건방지게 안방 규수나 된 양 앉아 있느냐며 핀잔하기 일쑤다. 그뿐이 아니다. 화단을 가꾸는 정원사는 웬 잡초가 끼어드느냐며 뽑아내어 내동댕이치고 만다. 타국에서 야생초로 살아온 은근과 끈기로 버려진 황폐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한(恨)을 쏟아내듯 총포를 활짝 벌린 채 속절없는 헛웃음으로 살아가는 민들레가 곧 그들이다. 따지고 보면 고향을 등지고 객지 타향에서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이방인이 아니던가.

 

말수 없는 그는 속내를 보이는 법이 없다. 힘들어도 아파도 혼자서 삭이고 홀로 풀어가는 것 같다. 오랜 세월을 자립하며 견뎌온 습성이지 않나 싶다. 교대시간보다 30분은 먼저 출근하여 주변 정리 정돈을 하고, 퇴근 또한 남들보다 항상 뒤늦게 한다. 그는 일머리를 도스를 줄을 알고 있었다.

 

며칠 후 샤워장에서 그를 만났다. 항상 구석에서 몸을 씻던 그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물에 젖은 왜소한 체구에 비해 유난히 큰 눈은 그렁하게 눈물이 맺혀있었다. 몸이 불편한가 싶어 가리고 있는 손을 바라보니 군데군데 붉게 상처가 나 있었다. 제품이 무너져 내려 다쳤다면서 옆구리 통증을 호소한다. 작업반장에게 보고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꾸가 없다. 직장을 잃을까 걱정이 앞서 숨기고 있는 듯했다. 겁먹고 있는 그에게, 보고하고 치료를 받도록 권유하였다. 그제야 고개를 끄떡이며 눈물을 애써 감추려는 모습을 훔쳐보던 나는, 불에 덴 듯 눈시울이 달아오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둑길이나 빈들에 하얗게 띠를 두르듯 피어나는 망초는 이미 토종 식물처럼 우리 곁에 자리하고 태고의 설움을 토해 놓듯 달빛 따라 개울물처럼 흐른다. 귀한 화초 취급은 못 받지만, 봄 들녘을 수놓은 민들레 역시 약초로 뭍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오래다. 어린이 동요 속으로, 한약방 탕제로, 늙수그레한 아낙네 봄나물 바구니로, 연인의 카메라 필름 속으로 용해되어갔다. 문득 그에게, 민들레처럼 사랑받고 인정받는 귀화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민들레 가득 담은 꽃바구니를 선물하고 싶다.

 

다행히 그 친구는 귀화 열망이 강렬했다. 한글 습작 수준은 내국인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귀화 시험에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는 애국가를 부르지 못한다고 한다. 가사를 모르는 게 아니고 노래를 전혀 부르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쉰다. 노래가 좋아 한국노래를 많이 듣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내지를 줄을 몰랐다. 받아드리기는 하지만 내뱉지를 못하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리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와락 손을 잡았다. 그도 나도, 참아내던 응어리진 설움을 터트렸다.

 

세상살이를 어찌 순응만 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내지르지 못하고 가슴으로 삭이고 안으로 접으며 긴 세월을 견뎌온 타성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었다. 웃을 줄은 알지만 화낼 줄을 몰랐다. 들을 수는 있지만 인지한 사실을 전할 줄을 몰랐고, 입이 있어도 입은 받아 삼키는 역할 뿐이다. 터질 듯 벅찬 가슴을 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표현하는 행위를 포기하고 살아왔다는 방증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남기 방편일 테고, 조국 없는 민족의 설움이 그를 함구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알에서 올챙이로 변이되고 올챙이는 개구리로 변이되는 것이 성장이다. 그런데 그는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변이되는 과정에 우는 방법을 외부적 충격으로 잃어버린 것이 아닐지 싶다. 그런 그를 보면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중학을 졸업하고 미지의 세계인 서울로 올라와 시행착오로 몸부림친 40년이 아니던가. 낯선 골목 담벼락에 기대어 가로등 불빛 바라보며 터벅이며 걸어온 나날들. 목마른 갈증으로 길손처럼, 때론 집시로 이곳저곳 기웃대며 흘러 흘러서 다시 머문 땅. 고향이 지척인데 돌아가기엔 세월이 그은 철조망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사위어간 육신과 망울진 기억들이 타인의 회고록처럼 낯설기만 하다. 한 줄금 비를 맞으며 무지개 뜬 하늘을 고대하던 이루지 못한 꿈은 뉘엿한 저녁노을 품으로 서서히 잠기고 있다.

 

오늘 아침은 된서리가 서설처럼 내렸다. 풀잎 바스러진 마른 들판에 철 잃은 민들레가 속절없이 피어나 꽃대를 웅크리고 바르르 떨고 있다. 꽃차례는 제 살던 고향이 그리운 건지 방울방울 눈물을 머금고 있다.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 걸까, 시린 꽃잎은 총포를 반쯤 벌린 채 하늘을 향해 토해 낼 듯 애절하다.

 

세상은 이방인이 만들어 가는 민들레 영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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