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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김장생 문학상 수상작

작성자홍억선|작성시간13.06.27|조회수292 목록 댓글 17

2013 김장생 문학상 수상작 

 

미로(迷路)

 

환희 같은 은빛햇살이 찰랑거렸다. 서늘한 바람을 한가하게 가르며 날아다니는 철새들의 정경은 그림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흙길에서 나무를 만나고 늪을 만나고 갈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도 눈짓을 나누었다. 숲처럼 으슥한 곳에서는 웅덩이도 만났다.

거울처럼 말간 웅덩이 속에는 나무들이 거꾸로 서 있었다. 웅덩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무수한 갈래로 이리저리 얽힌 빈 가지들이 미로 같았다. 잠시 동화책 속에 앉아있는 착각이 들었다.

늪을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쯤 걸린다고 했으니 산책을 마칠 쯤에는 해가 질 무렵이다. 남편과 나는 우포늪의 적나라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늪을 감싸 안은 길에는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 종종거리는 아이들을 앞세운 가족도 더러 보였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여울 속으로 퍼져나갔다.

이 늪의 조각배가 있는 장면을 화면으로 본 적이 있다. 두 시간은 족히 걸었으나 어인 일인지 조각배가 보이지 않았다. 색다른 운치가 느껴지던 그 곳이 왜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 바퀴를 다 돌아야한다는 일념으로 나아갔다.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무서울 텐데 그가 곁에 있는 낯선 적요는 오히려 아늑하기 그지없다. 별도 달도 어디로 숨어버리고 두 사람의 발자국소리만이 정적을 깨웠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휴대폰을 등불삼아 살금살금 걸었다.

세 갈래 길모퉁이에 걸린 방향팻말을 발견하자 눈이 번쩍 뜨였다. 허나 아는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어 문맹자나 다름없었다. 이제 늪을 돌아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차가 있는 주차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오리무중이다.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이 길이 제발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를 빌었다. 징검돌을 밟으며 개울을 건넜다. 구비 진 늪을 몇 차례 지나고 예닐곱 채의 집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으나 사람이라곤 구경할 수가 없다. 야트막한 산을 넘다가 오던 길을 뒤돌아보니 어두움이 깔린 늪이 거기 있었다. 해가 환하게 비추는 낮에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겠지만, 달빛도 불빛도 없는 밤에는 그저 넓고 깊은 늪일 뿐이었다.

배터리가 한 눈금밖에 없는 휴대폰을 꺼 두었다. 희끄무레한 하늘빛에 의지하며 앞만 보고 걸어 왔는데 어찌 된 일일까. 아까 건넌 개울을 또 만나고 말았다. 왠지 가야할 목적지와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간 여기서 밤을 지새워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꿈틀거렸다.

마음을 다잡은 우리는 발을 맞추며 전진했다. 또 다른 작은 마을을 지나 시멘트로 단장한 길이 나오고서야 떡하니 조각배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이 늪이 엄청나게 넓은 곳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토록 기다렸던 조각배를 휴대폰으로 비춤과 동시에 충전하라는 경고등이 떴다.

밤은 자꾸만 깊어지는데 으슬으슬 춥고 다리도 아팠다. 더 이상 우리 힘으로 주차장을 찾는다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이 늪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구조요청을 하더라도 일단은 도로에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추슬렀다. 저 멀리 가로등 비스무리 한 것이 보여 그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니 이차선 도로가 나왔다. 버스 정류장임을 알리는 불빛이 늪의 안내판을 비추고 서 있었다. 운행 시간을 넘긴 정류장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일은 이렇게 해서 벌어지는구나, 살다가 이런 일도 겪을 수 있구나 싶었다. 겨울이 저만치인데 시골의 늦가을 밤공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시린 볼을 손으로 비벼도 온 몸에 한기가 몰려왔다. 간혹 자동차가 달려오기에 손을 들고 신호를 보냈으나 그냥 쌩쌩 지나쳐버렸다. 흉악한 사건이 빈번한 요즘에 어느 누구인들 야밤 이 한갓진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차를 세워줄 수 있으랴.

순간 저 멀리서 트럭 한 대가 좌우로 불빛을 비춰가며 천천히 오고 있었다.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도망을 치듯 트럭은 더 외진 옆길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들은 한밤에 짐승들을 잡는 밀렵꾼들이라고 그가 일러주었다. 이러다가 폰의 배터리가 동이 난다면 아무런 대책이 없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콜택시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119에 도움을 구했다. 누르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결해 주리라 철석같이 믿었건만 연결이 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귓속에서 윙 소리와 함께 머릿속까지 아득해졌다. 온몸이 마구 떨렸다. 휴대폰은 죽어간다고 깜빡깜빡 야단인데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매한가지였다. 애가 바짝 탔다.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제법 떨어진 도시의 119로 통화를 시도, 연결에 연결을 거듭한 끝에 겨우 택시를 보내달라는 도움을 청할 수가 있었다.

꽁꽁 언 눈과 코와 입은 내 것이 아닌 냥 분리되려 갖은 용을 써댔다. 잔뜩 옹그린 자세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딱딱 어금니를 마주치며 자극을 주었다. 일 분이 여삼추 같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저기 구세주 같은 택시의 불빛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택시기사는 늪을 다 돌아보려면 종일 걸어도 모자란다며 자상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름길로 달렸는데도 주차장 까지는 삼십 분이나 걸렸다. 조금만 더 미련하게 버텼다면 밤새도록 늪에 서 달달 떨었을 것이다.

갈대가 서걱거리는 밤에 늪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내용을 대충 읽고선 길을 나섰다. 그 결과가 얼마나 대략난감한 일인가를 제대로 경험한 날이었다. 평소에 초행길은 안내지도를 유심히 살피는데 그것마저도 깜빡 했던 것이다. 마치 나무를 거꾸로 비추던 웅덩이에 홀렸다가 빠져나온 것만 같았다.

누가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록 미로(迷路) 속을 헤맨 건 몇 시간이었으나 사람살이가 돌아다보였다. 살아온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그이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수십 년이니 숱한 사연이야 말해 무엇 하리. 탄탄대로의 화창한 길도 더러 있었으나 까마득하고 어둑한 미로가 더 많았다. 기나긴 생의 여정에서 되돌아가야 하는 어귀에선 둘러서 가고, 방향을 잃었을 땐 둘이 한 마음이 되어 한 걸음씩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 마구 달리던 때 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고 더 많은 것을 이뤄 낼 수 있었다.

세상의 일이란 단번에 얻어지는 기쁨보다 옹차게 매달렸음에도 얻지 못하고 깊은 좌절감을 맛보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재깍재깍 시간이 흘러가듯 모든 것은 지나간다. 궁지에 몰리는 지독한 고통도 세월이 지나면 별스럽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꽃이 흔들리면서 피는 것처럼 사람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운데 여물어진다. 어렵사리 이루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 간에 애틋한 속심이 생기고 더 돈독해지는 것이다. 언제나 길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끝없이 자전하는 우주처럼 우리들의 삶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매순간이 미로여행이다.

 

 

 

제9회 김장생문학상 심사평

 

올해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대상 부분인 기성작가 그룹에서 좋은 작품집이 많이 들어와 기뻤다. 그만큼 김장생문학상이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잣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인 문제나 상금의 액수를 떠나 이렇게 주최 측에서 성실히 노력하고 홍보하고 본래의 뜻을 유지, 발전시키다 보면 폭넓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심사자로서도 매우 보람있게 생각한다. 그저, 이런 때 얼핏 떠오르는 말은 또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말이다. 계룡시가 좋아지고 사계 선생의 이름을 모신 상이 좋아지니 건너다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충분히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느낌이 그것이다.

 

1. 대상부문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다양했다. 그 작품집 이름을 적으면 이렇다. 『털실뭉치』(김규학) 아침 6시 45분』(최해돈),『사랑이라는 재촉들』(유종인),『간장』(하상만).

모두가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적인 발상이나 집중력이 충분히 보장된 작품이었다. 개성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에 동시 작가가 대상을 받았으므로 이 점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시의 성숙도나 감동에 관한 면모들을 중점적으로 살핀 결과, 『사랑이라는 재촉들』과『간장』을 최종심에 올라왔다.

고뇌 끝에 결국은『간장』 쪽으로 낙점을 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다. 주제나 소재는 묵은 것이고 뿌리 깊은 것이로되 그 표현은 충분히 새롭고 드라마틱하면서 임팩트가 강하다. 이는 앞으로의 시가 가져야할 장점으로서 가장 큰 장점이다. 독자들과의 문을 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가의 작품을 칭찬해주고 상을 주게 되어 매우 기쁘다. 배전의 노력이 있어 더욱 좋은 시로 우리 민족의 정서의 강물에 헌신 봉사하시기 바란다.

 

2. 본상부문

 

지난해에 비하여 본상 부문은 좀 저조한 감이 없지 않다. 규정상 운문에 2명, 산문에 1명 상을 주게 되어있다. 그러나 대상까지 합해서 볼 때 본상부문의 규정을 좀 수정해 산문 2명, 시 1명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주최자의 의도와 형편이 또 다

을 수 있으므로 운문 2명, 산문 1명 이렇게 뽑아 여기에 기록하고자 한다.

우선 운문 부문 종심에 오른 작가와 작품은 이렇다. 박민례의「밥」, 심상숙의「명중」, 강경순의「밥주걱」, 송승환의「풀빛서정」(시조), 김혜경의「짝꿍」. 이 가운데 가장 실하고 감동이 있기로는 역시 앞에 있는 두 작품 「밥」과 「명중」이다. 각각 개성을 지고 있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시의 꼴로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앞의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정되어 있고 따뜻하며 시적 형상화 또한 믿음직하다.

다음으로 산문 부문의 글은 이번에 동화 형식의 글이 많았고 본격 수필이 좀 적었다. 아쉬운 마음이다. 그런 가운데 정미경의 「미로」는 매우 박진감 넘치며 사실에 깊이 파고든 파워풀한 작품이다. 삶에 대한 자성 또한 만만치 않다. 그리고 권영애의 「매듭」도 아름다운 글이다. 현실과 추억을 버무린 곰삭은 작품 내용이 매우 향기롭다. 그리고 산문 24의 「마음으로 나눈 대화」도 충분히 귀여운 글이었으며 동화 형식을 빌어서 쓴 「대신 할배」도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역시 선자는 먼저 거론한 「미로」를 선두의 자리에 놓고자 한다.

 

나태주(시인, 공주문화원장)

 

 

본상 산문부문 수상소감문

찔레꽃향이 흐드러진 오월의 마지막 날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향기로운 빛이 내게로 쏟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걸핏하면 가슴속으로 찾아들던 외로움이 문학의 길로 접어든 어느 날부터 발길을 뚝 끊어버렸습니다. 아니 이쪽에서 그 녀석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졌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수필은 세상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으로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귀에 들립니다. 상상의 나라로 하루 종일 끌고 다니는가하면 설렘 속에 빠트려선 쓰러져 잠들게도 합니다. 그러다 다음날 아침이면 오월의 신록처럼 말가니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계절로 가름하자면 가을을 닮은 이즈음에 수필과 벗이 된 것은 큰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내가 하고픈 것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달뜬 심정은 하늘을 봅니다. 곁에 계신다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토닥여 주실 엄마의 곱디고운 눈망울이 그립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아내에게 늘 따사로운 눈빛을 주는 남편과 사랑하는 지민 지현 승재에게 엄마 품에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가족의 사랑과 도움이 없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을 겁니다.

어눌한 제 글에 마음을 열어주시고 잔뜩 힘을 실어주시는 심사위원님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수필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용기와 세심한 배려로 가르침을 주시는 글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수상자 정재순(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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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서소희 | 작성시간 13.07.01 정애선 선생님ㅇ이제사 글을 읽어보네요. 에포를 끝내고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서리...
    다시 한번 더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많이 쓰세요^^
  • 작성자정애선 | 작성시간 13.07.02 모든님들, 많이 고맙습니다.
  • 작성자정경해 | 작성시간 13.07.04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 작성자권혜민 | 작성시간 13.07.07 애선님~ 축하해요. 아주 오랜만에 들렀다가 좋은 소식에 축하의 말 전하고 갑니다.
    문운이 활짝 열리셨나 봅니다.
    축하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정재순 | 작성시간 13.07.08 선배님 고맙습니다. 진짜 너무 오래 못 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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