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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은상 수상작-세한도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3.09.27|조회수156 목록 댓글 6

 

제4회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은상 수상작

 

 

                       세한도/김경순

 

 

 



소수서원 앞에는 하늘을 찌를 듯 우직하게 솟은 적송이 있다. 금강송처럼 우람한 자태에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하는 육각 모양의 거친 껍질은 죽어도 죽지 않는 옛 문인의 표상일까. 학자수라 불리는 나무들은 천 년을 살고도 못 다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선비처럼 서 있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유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소수서원을 찾은 날은 청신한 오월이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가 이어진 초입은 마치 선비들의 올곧은 기개처럼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했다. 한껏 무르익은 태양은 기세 좋게 적송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짙은 솔향기를 사방으로 흩날렸다. 하늘 높이 뻗어 있는 장대한 나무들을 올려다보노라니 마치 세한도가 살아 움직이듯 어지러웠다.
최초의 세한도는 소수서원의 소나무를 그린 이재 권돈인의 그림이다. 그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어서 더욱 신비롭다. 유배의 땅에서 맞는 모진 추위마저도 사랑한 그는 언제라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를 닮고자 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를 보고 자신도 그러하리라 다짐을 하며 한 점 한 점 먹물을 묻혔을 것이었다.
그는 각별한 심정이 묻어 있는 세한도를 제주도에서 유배 살이 중이던 절친한 벗 김정희에게로 보냈다. 스스로를 다스리며 고난을 이겨내려 그렸던 그림, 그것을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 없는 추사에게 보낸 것을 보면 겨울나무보다 더한 강직함이 그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추사가 겪고 있을 유배의 서러움을 나누며 혹독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던 이재의 우정을 가늠하자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세한도의 원조는 친구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그렇게 세월을 건너왔다.
‘백로야 놀라지 마라. 네 잡을 내 아니다. 성상이 날 버리시니 갈 데 없어 왔단다. 이제는 공명(功名)을 버리고 너와 벗해 살리라’
영의정에 오른 권돈인이 유배지에서 썼던 한 수의 시를 보면 암울한 시절의 속내를 삭히려 고독마저 즐기고자 했던 마음이 전해진다. 그는 철종의 증조인 진종의 조천례(조遷禮)에 관한 주장으로 인해 파직 당했다. 그 후 순흥으로 유배되면서 소수서원과 인연을 맺었는데 마침 서원 앞의 소나무를 보고 영감을 받아 세한도를 그리게 된 것이었다.
세한도를 받아 본 추사는 그림 위에 답장 형식의 발문을 적어 다시 이재에게로 띄웠으니 두 사람 사이의 돈독한 우정이 더욱 빛을 발했다. 같으나 다른 모습으로 소수서원과 제주도를 오고 간 이재의 세한도는 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오늘날 그 누구의 세한도보다 주목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김정희 역시 자신만의 세한도를 그리게 되었으니 진정한 벗이란 무릇 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힘이 있고도 남았다. 저들의 끈끈한 정이랄지 의리를 통해 예나 지금이나 멋스럽기 그지없는 사나이들의 우정을 엿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사람들은 김정희의 세한도를 더 많이 알고 있지만 기실은 권돈인의 그림에 비하면 그것은 고졸한 느낌을 피하지 못한다. 남자다운 기질과 성품을 가진 권돈인은 소수서원의 소나무를 그대로 닮았다. 소수서원의 나무들이 우렁차고 기품이 넘친다면 제주도의 소나무는 김정희의 부드럽고 유약한 성품마냥 싸늘하고 가냘파서 외로운 느낌을 안고 있다. 유배 살이야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뭍과 섬이라는 특징이 사람이나 나무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한다. 누구의 그림이 더 유명한들 어떠랴. 다만 세한도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리.
그의 넋이 아직도 서원을 서성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노라니 왠지 모를 인연 줄에 슬그머니 닿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도 시 한 자락 혹은 그림 한 점 남길 것만 같은 기운에 오래도록 적송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부방에 앉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아스라이 풍기는 서책의 향기에 취하고 또 취했다. 발에 닿는 기운마다 청백이요, 살갗에 부딪히는 바람 한 점에도 유구한 숨결 전해지니 과연 이 땅의 후손인 것이 가슴 저릿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선비들의 발자취에 내 발자국을 가만히 얹어보는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여행의 묘미는 충분했다. 평생 우정을 나눈 두 사람 사이에 신뢰의 상징이 된 최초의 세한도는 지금까지도 소중한 자료로 남아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 먼 옛날의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도 좋으리라.
서원을 다 돌고 밖으로 나오자 낙동강의 시작을 알리는 푸른 물결이 나그네의 마음을 휘감았다. 강은 오랜 세월 말없는 역사가 되어 빛바랜 이야기로 흐르고 있었다. 짙은 녹색의 일렁임을 따라 걷노라니 어느새 선비들의 낭만의 장이었던 취한대가 떡하니 나타났다. 낡고 닳아서 더욱 정 깊은 나무 정자에 걸터앉아서 바라보는 서원에는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어쩌면 이재는 여기에 앉아서 강 건너 보이는 하얗게 눈 덮인 겨울 소나무를 그리지 않았을까. 그의 야망과 집념은 강물 속에 깊이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를 닮아 여전히 그 맥이 흐르는 듯 보였다.
선비의 절개처럼 곧게 서서 서원을 호위하고 있는 소나무가 오늘따라 더욱 짙푸르다. 시대는 다르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우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 가슴 뿌듯해진다. 동방 성리학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는 소수서원에서 만난 소나무는 권돈인의 세한도처럼 언제까지나 믿음과 의리의 본보기로 남을 것이다. 머무는 듯 스쳐가는 바람은 그 바람이 아니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또한 예전의 그 강은 아니련만 나는 오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영혼과 함께 호흡하는 감상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어느 선비의 화신일까. 언제 나타났는지 백로 한 마리가 야무진 날갯짓으로 강물 위를 박차 오르고 있다. 그 모습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천 년을 하루같이 꿈꾸는 늘 푸른 나무가 힘껏 하늘을 우러른다. <끝>

 

 

*출처:대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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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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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경순 | 작성시간 13.09.28 네, 감사해요 애선으로 다시 돌아온 애선언니~~^^
  • 작성자서소희 | 작성시간 13.09.30 경순 셈이 또 하나의 세한도를 그렸네요.
    가슴에 남을 소나무...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경순 | 작성시간 13.09.30 문화답사의 글은 처음이라 무척 어려웠습니다.
    교수님과 에세이포럼 문우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입니다.^^
  •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3.09.30 경순샘이 그동안 많이 갈고 닦으셨군요.
    좋은 글 쓰신 경순샘께 박수를 보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경순 | 작성시간 13.09.30 울산에서 부지런히 올라오셔서 함께 공부하던 생각이 나네요.
    동조샘을 보고 많이 배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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