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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문 / 이석구 - 2018년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수필부문 대상

작성자엄옥례|작성시간18.10.25|조회수131 목록 댓글 1

웃는 문 / 이석구

단절의 틈바구니 안에는 소통이 존재한다. 아무리 높은 담이 둘러쳐져 있더라도 열린 문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문이 열린다. 돌쩌귀에 불이 나듯 드나드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행랑채 지붕을 어깨 삼아 계급장이라도 단 듯, 힘을 잔뜩 준 솟을대문이 반듯하게 서 있다. 하늘과 교신이라도 하는지 도드라진 지붕을 이고 굳게 닫은 문은 옹벽이라도 된 듯 근엄하다. 새벽 댓바람부터 복을 들이기 위해 제일 먼저 행랑아범이 대문을 열어젖히고 싸리나무 자국이 매섭게 나도록 흙 마당을 쓸어댔을 것이다.

  청송 송소고택(중요 민속 문화재 제250호)은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에 지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팔작지붕의 큰 사랑채가 우뚝하니 들문을 펼치며 앉아 있고, 작은 사랑채 뜰을 지나면 ㅁ자 모양으로 안채가 안온하게 자리 잡았다. 솟을대문에 홍살을 설치했고, 안채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이 부유하고 화려한 조선 시대 양반가의 모습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이리 오너라,' 체면치레로 소리 지를 일 없이 들어선 마당에는 사랑 마당의 내외담을 돌아 안채의 문이 살짝 열려 있다. 양쪽에 빈지로 벽을 두른 평대문이 얌전하다. 대문 가장자리로 문얼굴이 훤하다. 문머리는 느긋하게 아래를 굽어보고 문지방은 아래로 휘어져 살포시 웃고 있는 모양 같다. 그 문을 밀면 아마도 웃는 소리가 '끼익'하고 났을지도 모른다. 혹여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해도 괜찮다. 그것은 문지방이 초승달처럼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짓는 것일 테니까. 안마당 깊숙이 꽃담으로 이어지는 작은 샛문은 사랑채 툇마루와 통한다. 사랑에서 안으로 드나들 때 은밀하게 다니기 위한 비밀의 문이 정답다. 남녀가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정을 쌓고 소통하는 길을 쪽문 하나로 길을 열어두었으니 아무리 무심함으로 포장해도 주인마님 마음은 안방마님으로 향한다.

  별당에 달린 중문은 부드러워지면 오히려 낭패다. 돌쩌귀를 뻑뻑하게 만져 놓는다. 문설주와 문짝의 암짝, 수짝 쇠붙이조차도 틈 없이 조아서 언제든 '삐이걱' 소리 내어 웃도록 했다. 구중궁궐 같은 별당 아씨가 지내는 곳을 아무나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문이 소리 내어 웃으면 어미 아비 신경이 별채로 기울었으리라. 안방 문을 열어젖힌다. 연다는 것은 밖을 향해 민다는 뜻이다. 방 안에 고여 있던 나쁜 기운은 문이 밀릴 때 밖으로 딸려 나간다. 유독 방에 달린 문만은 안에서는 밀문이고, 밖에서는 당길문이 된 까닭이다. 안방 여닫이문 안 벽 속으로 들어가는 미닫이문은 두껍닫이 문이다. 솟을대문은 집 안쪽에서 당겨 연다. 천지의 좋은 기운과 함께 바깥의 복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리라. 이른 아침 눈뜨면 지체 없이 이 문 저 문을 소통하기 바쁘다. 식구들의 건강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도구로 닫힘과 열림을 업으로 삼는 대문이 제격이 아닐 수 없다.

  길의 시작과 끝에 닿으면 문을 만난다. 어느 집의 대문이라도 출발이자 도착을 상징하며 생의 흔적이 되었다. 경계에 선 흔들리는 누군가는 세파를 향해 과감히 뚫고 나섰으며, 겁먹은 사람의 용기를 다시 한번 다잡는 자리에 문이 있었다. 망설이는 경계에서 한 발자국 내딛기에는 문이 안성맞춤이었다. 안으로 들어찬 시선을 바깥세상으로 옮겨야 나와 우리의 세계를 완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문이 닫히면 답답하고 궁금해진다. 살짝 열린 대문으로 보일 듯 말 듯 하는 여유야말로 비밀스럽지만, 대충 알아차리고 나면 더는 특별난 것도 없고 호기심도 사라지는 법이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에게는 비로소 편안하고 너그러워지는 일상이 자리 잡을 게다. 입과 마음을 닫듯이 굳게 담긴 문 앞에서는 막막해진다. 정호승 시인은 열면 창문이 되지만 닫으면 벽이라고 하지 않던가. 단절이 부르는 괴리는 서로를 불신하게 한다. 오고 가는 흐름이 끊긴 공간은 보이지 않는 철벽을 쌓고 있을지도 모른다. 담장이 높고 문이 철옹성 같을수록 넘으려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낮은 울타리와 자유로운 문은 애써 열려고 하지 않아도 되니 억지가 자리 잡기 어려워 보인다.

  고택과는 다르게 도시의 아파트 현관에 달린 출입문은 밖으로 미는 여닫이문이다. 초인종이 울리면 문이 밖으로 밀려나와 바깥에 서 있던 사람이 뒤로 주춤 물러선다. 후퇴를 해야 전진을 할 수 있는 문이다. 웃지 못하는 철문이 함구하고 있다면 누구나 쉽게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게다. 아무리 좋은 원기도 문이 밀릴 때 거부당하고 나서야 간신히 남은 에너지를 집 안으로 들이밀 것 같다. 옛날과 지금의 문이 당기고 미는 방식이 달라진 까닭이 무엇일까. 예전의 문들이 열기 위한 문이었다면, 지금의 문은 닫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유가 아닐까. 웃는 문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문이 벼락같이 화를 내는 것을 기억한다. 식구 중에 누구라도 귀가하지 않으면 밤바람이 온 집안을 훑고 다녀도 대문을 닫지 못했다. 삐죽이 열린 문으로 늦게라도 들어온다면 다행이리라. 증조할아버지의 사랑채의 기침소리와 함께 노여움이 묻은 방문이 벽을 튕기며 불호령을 친다. 문고리도 무서워 덜덜 떤다. 문이 곧 살고 있는 이들의 정신이기도 하다.

  문을 여는 걸쇠는 내부에 달려 있다. 마음을 열어젖히는 손잡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문을 보고 비로소 알아차린다. 닫힌 문을 여는 순간 고립에서 벗어난다. 햇살과 눈 마주치고, 바람이 쓰다듬어 주고, 날아가는 새들이 아는 척하고, 꼬리 흔드는 강아지가 반겨준다. 열매가 열리는 것과 마음이 열리는 일은 오랜 인고가 필요해서 같은 낱말을 쓰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곘다.

  송소고택의 삶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빙긋이 웃는 문지방이 안채와 사랑마당 사이에 드러누워 있다. 생활의 외곽을 구분 짓고 있지만 문턱도 없는 솟을대문이 마을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웃는다. 사람을 반기는 문은 그 집 주인의 얼굴 모양과 닮았다.

  문처럼 열고 닫기를 자유롭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과 짐승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활짝 문을 열어 맞이하고, 근심과 미움과 경쟁과 배제가 몰려들면 철컥 문을 닫아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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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곡 박대홍 작성시간 20.06.04 글쓰기에 도움을 주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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