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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우산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2.04.10|조회수46 목록 댓글 2

비닐우산
                                            -정진권


                
언제 어디서 샀는지는 알수 없지만 , 우리집에도 헌 우산이 서너개나 된다. 아마도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서 내가 사들고 온 것일 게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나 쓸 수 있을까? 그래도 버리긴 아깝다.

비닐 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눈만 흘겨도 금방 부러져 나갈듯한 살하며, 당장이라도 팔랑거리며 살을 떠날듯한 비닐 덮개 하며, 한 군데도 탄탄한데가 없다. 그러나 그런대로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덕(德)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주 몰라라 할 수만 없는 우산이기도 하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비를 만났을 때, 가난한 주머니로 손쉽게 사 쓸수 있는 우산은 이것 밖에 없다.  물건에 비해서 값이 싼지 비싼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어쨋든 일금 100원으로 비를 안맞을수 있다면, 이는 틀림없이 비닐우산의 덕이 아니겠는가?

값이 이렇기 때문에 어디다 놓고 와도 섭섭치 않은 것이 또한 이 비닐우산이다. 가령 우리가 퇴근길에 들은 대폿집에다 베우산을 놓고 왔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대부분 버스를 돌려타고 그리로 뛰어갈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오래 손때묻은 정이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100원짜리라면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가의 베우산을 받고 나온 날은 어디다 그 우산을 놓고 올까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하루 종일 썩인 머리로 대포 한 잔 하는 자리에서까지 우산 간수 때문에 걱정을 할수는 없지 않은가? 버리고 와도 께름칙할게 없는 비닐우산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비닐 우산을 받고 위를 처다보면, 우산위에 떨어져 흐르는 물방울이 보인다. 그리고 밧방울이 떨어지면서 내는 청량한 음향도 들을 만한 것이다. 투명한 비닐 덮개 위로 흐르는 물방울의 그 청량함, 묘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빗소리의 그 상쾌함, 단돈 100원으로 사기에는 너무 미안한 예술이다.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비닐 우산이 홀딱 뒤집혀 지기도 한다. 그것을 바로 잡는 한동안, 비록 옷은 비에 젖는다 하여도 즐거운 짜증을 체험할 수 있고, 또 행인들에게 가벼우나마 한때의 밝은 미소를 선사할 수 있어서 좋다. 그 날이 그 날인듯, 개미 쳇바퀴 돌듯하는 우리의 무미한 생활속에, 그것은 반박자짜리 쉼표처럼 싱그러운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좀 오래된 일화 하나가 생각난다.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다 보니, 부슬부슬 창밖에 비가 내린다. 나는 캐비넷뒤에 두었던 헌비닐우산을 펴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살이 한 개 부러져 있었다. 비가 갑자기 세차졌다. 머리는 어떻게 가렸지만 , 옷은 젖다시피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책가방을 든 어린소녀였다. 젖은 이마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나하나의 머리도 가리기 어려운 곳을 예고도 없이 뛰어든 그 귀여운 침범자는 다만 미소로써 양해를 구할뿐 말이 없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소까지 함께 걸었다. 옷은 젖지만 그래도 우산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마침내 소녀의 버스가 왔다. 미소와 목례를 함께 보내고 그는 떠났다. 이상한 공허감이 비닐우산 속에 남아있었다. 그것도 100원으로 살수 있는 체험일 것이다.


나도 곧 버스를 탔다. 차가 M정류소에 설때였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정류소에는 우산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딸들, 오빠나 누이를 기다리는 오누이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들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용하게 그를 맞으러 나온 우산을 찾아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때 창밖으로 한 젊은 여인을 보았다.  남편을 기다리는 신혼의 여인이었을까? 버스는 또 떠났다. 그녀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몇번이나 버스를 그냥 보냈을까? 말없이 떠나는 버스를 조금은 섭섭하게 바라볼 그녀의 고운 눈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버스에선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꼭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용하게 알아보고는 그녀는 비닐우산 속으로 성큼 뛰어들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원망의 눈길과 미안해 하는 은근한 미소, 찬비에 두 온몸이 다 젖는대도 그 사랑은 식지 않을 것이다.


비닐우산은 참 볼품없는 우산이다. 한 군데도 탄탄한 데가 없다. 그러나 버리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효용성이 있으므로 하여 두고두고 보고싶은 우산이다.


그리고 값싼 인생을 살며,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듯한 부실한 사람, 그런 몸으로나마 아이들의 머라위에 내리는 찬비를 가려주려고 버둥대는 삶, 비닐 우산은 어쩌면 나와 비슷한 데가 적지 않을 것 같아서, 때때로 혼자 받고 비오는 길을 쓸쓸히 걷는 우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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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엄옥례 | 작성시간 12.04.10 아름답고도 교훈이 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2.04.10 수필의 소재가 궁하다는 소리는 핑계라고 꾸짓는 것 같습니다.
    하찮은 비닐우산에서 이런 예쁜 글을 뽑아낼 수 있는 작가에게 박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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