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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경북 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작-노근/서소희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1.01.24|조회수62 목록 댓글 3

 

<2010 경북 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

 

노근/서소희

 

 햇살이 따갑다. 법당 앞마당에는 연등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허공 가득히 만개한 꽃들은 밤의 점촉을 기다리며 하느작거린다. 몇몇의 사람이 꽃에 매달려 있다. 어디 사는 아무개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것이 된 꽃잎에 소망을 지펴 올리는 모양이다.

 조롱거리는 오방색의 물결을 따라 나의 시선이 내달린다. 눈앞에 천인단애가 가로막는다. 커다란 돌산의 머리 꼭대기는 나무로 무성하고 깎아지른 벼랑 가운데에는 컴컴한 작은 원형이 보인다. 오전이면 빛이 굴 안으로 들어가고, 점심 무렵이면 빛이 비껴나서 내부는 어둠에 잠긴다고 한다. 그곳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경주의 석굴암보다 시대는 앞서지만 발견된 시기가 늦어 '제2석굴암'이라고 불린다. 먼저 암벽 밑 참배객을 위한 터에서 절을 올린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자리는 하오의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인해 그야말로 찜질방이다. 석실의 입구로 가는 길은 몇 해전부터 철문으로 닫아 놓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마침 세존 탄생일을 축하하며 그 문이 열려 있다. '이게 웬 인연인가' 하는 마음으로 무량수불을 뵙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난간이 있기에 우리는 돌로 조각된 등정각자(等正覺子)를 친견할 수 있다. 그 고마움이 뭉클한 전류가 되어 가슴속을 찌르며 지나간다.

 기암절벽의 자연 동굴에 아미타불과 좌우 보처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계신다. 가운데 좌정한 여래는 웃음기 없는 엄숙한 얼굴에 두 손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고즈넉이 세속을 응시하시는 듯하다. 석가모니께서 악귀의 유혹을 물리친 증인으로 지신(地神)을 불러 당신의 깨달음을 증명했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수인이 한반도에서 쓰인 예는 이곳이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을 한다. 주불의 손끝이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소원을 빌며 복을 받기 위해 묻혀 놓은 흔적들이 또 다른 색깔이 되었나 보다. 고요히 삼매에 들었던 무상사는 생일잔치라는 명목을 얻어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당신을 알현하기 희망하는 중생들이 애처로울 것이다.

 낭떠러지 한가운데 위치한 척박한 동굴에서 석공은 어떤 마음으로 천인사(天人師)를 조성했을까. 지금에야 시절이 좋아 무엇이든지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아주 어려운 공사였을 것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곳이 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 사방팔방에서 기도를 드리러 많은 사람들이 걸음 하리라는 사실을 분명 불사자(佛事者)는 알지 못했을 터이다.

 내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수직의 돌벽에 가로로 뻗은 녹색의 솔가지 하나가 눈동자에 들어온다. 노근(露根)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소나무이다. 뿌리를 좁은 바위 속으로 겨우 비집어 넣고 당당히 서 있다. 그 모습이 범상치 않다. 비바람에 묻어 날아온 흙들이 얕은 틈 사이사이에 잡혀서 자그마한 더미가 되어 나무를 보호하는가 보다, 곡예사 같은 모습으로 바위에 의탁해 자신의 몸을 키워 온 소나무는 그 품새가 흔들리는 풍파에도 끄떡없다.

 악착같은 삶의 애정과 억척같은 나무의 인고가 오롯이 전해져 온다. 여름날의 타는 듯한 뙤약볕과 겨울날의 매서운 추위를 그 궁핍한 상황에 맡기며 견디어 온 모양이다. 뚜렷한 사계절의 기후는 어린 초목을 더욱더 더듬어 버티고 설 자리를 확보하였다. 부족한 영양분으로 조금은 비틀거리며 꿋꿋하게 자신을 성장시켰나 보다.

 드디어 소나무는 확연한 푸름을 찾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연륜과 경험이 쌓여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발산하고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흙을 이끼와 함께 공유하며 그 신록이 한층 더 선연하다.

 무릇 뿌리만 흙 속에 단단히 파묻혀 있어야 하는 것이 이치일 터이다. 주위의 자리가 평탄하고 흙들이 두꺼우면 뿌리는 지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설사 비바람과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도 그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감추고 잇는 부분은 더 깊게 더 넓게 땅속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노근은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특히나 단단한 벼랑에 위치한 생목은 뿌리의 모양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하늘이 내리는 빗물과 기온의 변화로 생긴 이슬에 목마름을 해결하여야만 하는 처지다. 커다란 돌덩이가 뿜어내는 습기를 고마워하며 자존의 설 자리를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만 한다. 거기다가 본래의 빛깔도 잊어버리는 법이 없어야 마땅하다.

 넓은 대지에 근본을 세우지 못하고 단단한 바위 위에 명줄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소나무는 그 엣날 설산에서 수행하시던 싯다르타의 화신이양 생각되어 심장 깊은 곳에서 아릿함이 일렁인다. 석가모니와 절벽의 나무는 목숨을 내놓은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빛깔을 지켜내었다.

 나는 어떠한가, 어쩌면 부족하지도 않는 조건에서 호강에 받힌 푸념을 하며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세속의 허영을 속물이라 비웃으면서도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있는가 하면, 뭇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행동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사랑을 외치면서도 정작 싫은 사람이 있으면 침을 튀기며 험담하는 장면도 보인다.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색깔을 바꾸는 모습이 부끄럽다. 아마도 항마촉지인과 노근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켜낸 삶의 진리를 일깨워 주기 위하여 나에게 나투신 천공의 설법일 것 같다.

 

  바위에 섰는 솔이 늠연한 것이 반가운지고

  풍상은 겪어도 시드는 일 전혀 없다

  어찌타 봄빛을 가지고 고칠 줄 모르나니

 

옛 시인의 노래 속 한 구절처럼 삶 속에 펼쳐지는 풍랑을 고요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바위에 선 솔에게서 배우고 싶다. 어떠한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정신을 항마촉지인의 숨은 뜻처럼 지켜 가고 싶다. 하늘에다 '기필코 나의 빛깔을 되찾으리라' 새김질해 본다. 그리하여 원래의 감추어진 내면이 더 찬란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등 뒤로 순례객들이 늘어난다. 사람들의 그림자로 인해 부처님의 상호도 먹빛이 내린다. 나는 천 년의 미소를 남겨 두고 계단을 내려온다. 솔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칼을 날린다. 훈훈한 바람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마군, 즉 악마들을 항복받는 손 모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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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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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애선 | 작성시간 11.01.24 비바람에 묻어 날아온 흙들이 얕은 틈 사이사이에 잡혀서 자그마한 더미가 되어서... 깊은 눈에 놀랐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이근숙 | 작성시간 11.01.24 아름다운 글 옮겨주신 선생님, 잘 읽고 물러갑니다.
  • 작성자김수정 | 작성시간 11.01.25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제 글쓰기의 부족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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