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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라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2.05.23|조회수144 목록 댓글 3

 

힘을 빼라/박헬레나

 

 

낯 선 장소에 가려면 마음부터 긴장한다. 마음을 따라 몸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생소한 분위기에서 느끼는 일종의 자기 방어본능이라고 할까. 어디가 출발점인지 모르는 그것은 낯가림이 심한 사람을 더더욱 경직 시킨다.

건강에 빨간불이 번뜩거리자 운동을 해야 한다며 온 집안이 난리다. 주위의 권유에 떠밀려 집 근처에 있는 주민 센터를 찾았다. 탁구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건강을 위해 운동 한 가지는 해야겠다며 전부터 벼르고 있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너무 늦은 시작,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나는 언제나 습관적인 지각생이다. 결혼이 그랬고 글쓰기공부가 그랬다. 모든 것이 그런 식이다.

라켓을 잡는 일부터 쉽지 않다. 굳을 대로 굳은 몸과 나사 풀린 마음이 따로따로 논다. 까투리 알만한 공 하나도 마음먹은 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손목에 약간만 더 힘을 주어도 테이블 너머로 공이 날아가 버리고 조금만 힘을 줄이면 네트를 넘어가지 못한다. 공 주우러 다니는 일에 시간과 힘을 다 빼앗긴다.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시작한 일을 중도에 포기한다는 사실은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을 않는다.

"박헬레나! 손목에 힘 빼라."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던 한 남자회원이 일갈(一喝)한다. 그의 다그침에는 안타까움과 염려도 섞여 있다. 그는 구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초보자에게 조언도 하고 공도 주워주며 농담을 잘 하는 분위기메이커다. '아차!' 그때야 내 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가 내 필명을 기억하는 건 신문에 연재한 칼럼 때문인지 내가 워낙 꺼벙이처럼 어리뜩해 보여서 눈에 띠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삶의 과정에서 어깨에 힘 빼는 일이 참 어려운 공부다. 기쁜 일이 있거나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몸 안에 저절로 힘이 생기고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넘쳐 나온다. 지난 날 그로해서 이마 찌푸릴 일도 더러 겪었으나 이제 그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할 세월이 되었다. 그것은 역으로 나 스스로가 힘을 통제할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힘 빼기 논리는 탁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번번이 주의를 들어도 아직도 손목에 힘이 들어가 공이 제자리로 가지 않는다. 팔에는 힘을 빼고 어깨로 밀려는데 굳은 손목이 먼저 나간다.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나는 여기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탁구를 모르고 사람을 모른다. 이곳 분위기도 낯설다. 왕초보인 주제에 결석은 밥 먹듯 한다. 이곳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은 공을 잘 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정작 몸에 힘이 잔뜩 든 사람은 나다.

똑딱똑딱 공 부딪는 소리가 경쾌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초고속 공을 능란하게 받아넘기는 사람들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신기하다.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가깝다. 시작한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손목 힘빼기 공부에 매달려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비단 손목뿐이겠는가. 나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온 몸의 힘, 그것은 목과 어깨와 허리를 들락거리며 때와 장소에 따라 자동으로 날을 세운다. 허리를 꺾고 몸을 낮추는 일이 도(道)로 나아가는 길이려니 힘을 뺀다는 것이 쉽기만 하겠는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팔의 근육을 느슨하게 풀어본다.

봄 햇살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잠자던 생명이 깨어나는 소리로 봄이 오는 길목은 늘 부산하다. 힘이 약동한다. 구장 안의 열기도 그에 못지않게 뜨겁고 분주하다. 주거니 받거니 난타를 하는 사람, 치고 빠지며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 공 튀는 소리에 섞여 까르르 웃음소리도 터져 나온다. 땀방울이 튀고 에너지가 넘친다. 나의 탁구는 아직도 초보단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공이 테이블 위에 떨어져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할 수준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명백한 징표다. 힘은 움직임의 원천이다. 그 에너지를 적시에, 적소로 공급하는 일이 지금 내게 부여된 숙제다. 적절한 견제와 고른 분배, 힘을 다스리는 원리다. 비단 탁구에서 뿐이랴. 힘을 빼고 몸을 낮추어 마음을 바닥에 놓는 일, 적당한 장소에서 알맞은 처신을 하는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절명의 과제다. 항상 유념하여 지니고 가야할 덕목이건만 잠시 방심하면 손목이 굳어지듯 마음이 곧추선다.

마음 다잡고 팔의 힘을 빼고 허리를 돌려 어깨로 공을 밀어본다. 의외로 공이 제자리에 놓인다. 기본에 충실해야 사물이 제자리를 찾아 앉는다는 진리, 공식이란 것이 공연히 생겨있는 법이 아니란 깨침이 가슴을 열고 들어온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우리 사는 세상 도처에 지혜가 숨어있고 스승이 널려있다. 손목 힘 제로상태, 지금 내가 정복해야 할 산이다.

"힘을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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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2.05.23 으음! 힘이 문제로군요.
  • 답댓글 작성자김희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5.24 그러게요, 힘이 문제라고 하는군요.
    글을 잘 쓰는 분들은 이런 글로도 좋은 수필을 그려내는군요.

    에포 10 수업이 다음 주부터 시작됩니다.
    열정적인 10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박선생님도 생각해봅니다. ^^
  • 답댓글 작성자박동조 | 작성시간 12.05.26 저는 10기 수업은 계획에 없습니다.
    아들 결혼 문제 때문에 바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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