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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틈이 말하다

작성자김희자|작성시간12.09.25|조회수79 목록 댓글 0

제4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틈이 말하다

김윤선

 

오른손 장갑의 엄지손가락이 찐득하다. 아무래도 물이 새는 것 같다. 엊그제 샀는데 웬 일이람.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 장갑을 뒤집었다. 양손으로 장갑 주둥이의 양끝을 잡고 공중에서 서너 바퀴 휙 휙 돌리자 이내 공기가 차오른다. 그런데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장갑의 한 귀퉁이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피비빅, 씨익, 작지만 강한 소리, 영락없는 바람 빠지는 소리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늘귀만한 구멍이 있다. 언제 그랬지? 아차, 어제 생선을 다듬었던 기억이 났다. 고놈, 그 새 흔적을 남겨 놓았구나. 굽기 편하게 장만하느라 생선 대가리와 지느러미를 자르는 새 허방을 찔렸다. 난감하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나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획 던져 버렸다.

삶에서 불현듯 끼어드는 틈이 이 뿐일까, 부부 사이의 갈등과 군신간의 불신, 그리고 친구와의 다툼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흔히 만나는 틈이다. 그런데 바늘귀만한 크기일지라도 장갑처럼 수명을 다하게 하는 걸 보면 틈이 갖는 힘을 느끼게 한다. 뿐이랴, 대형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인재니 천재니 하고 따지는 원인들도 대부분 손익의 틈바구니에서 일어난 일이고 보면 틈이 주는 교훈이 오죽할까.

초등학교 교과서에 ‘네덜란드를 구한 어린이’ 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작은 틈에서 새어 나오는 바닷물을 발견한 아이가 처음엔 손가락으로 틈을 막았다가 점점 커지자 주먹으로 막았고, 더욱 커지자 팔뚝으로 막았다는 이야기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결함을 이해한 어린 소년의 행동으로 애국심을 가르치는 내용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틈이 하는 말을 알게 한다. 아이 손가락만큼의 작은 틈이 때로는 팔뚝만큼 커질 수 있다는 가르침, 어떤 단체에서든 분열을 막고자 하는 이유다.

그런데 틈이라고 다 그렇게 찬기만 싣는 건 아닌 모양이다. 오리털 파카나 양털이불처럼 낱낱의 틈새에 공기를 괴어 따뜻함을 품는 것들도 있고, 겹쳐 입는 옷의 틈새로 패션 감각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무릎이나 팔꿈치의 헤진 부위에 예쁜 천을 덧대어서 마치 새 옷을 입는 듯한 기분을 내게 하는 생활의 지혜를 갖게도 하는 걸 보면 틈 또한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가정법원에서는 이혼을 원하는 부부에게 일정기간의 조정을 거치게 하는 것도 어쩜 틈이 주는 몫을 기대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된 산행 중에 갖는 짧은 쉼, 틈의 절정이 아니던가.

어머니께서는 멸치액젓을 담그신 후 어지간히 익을 무렵이면 독 속에 용소를 박아 놓으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안쪽에 맑은 젓국이 괴었다. 단지 안엔 삭은 멸치들이 서로 엉겨 붙어 몸 돌릴 틈도 없는데 용소 속엔 희한하게 맑은 젓국이 괴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닌 멸치 찌꺼기에 약간의 물을 더해 끓이고는 소쿠리에 한지를 깔아놓고 부어 두셨다. 그러면 소쿠리엔 까칠한 가시와 대가리, 기름만 남고 액젓은 시나브로 한지의 틈을 비집고 흘러내렸다. 틈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한지의 틈새를 빠져 나간 순액 속에 무슨 잡티가 있었을까, 채소의 맛과 색깔을 살려낸 건 물론이다.

요즘 나는 부러 틈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글자와 글자가 만드는 틈, 글의 행간을 넓히는 일이다. 드러내고자 하는 뜻을 어찌 몇 개의 글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글자 사이에 숨어 있는 행간이야말로 작품이 갖는 운치를 더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엊그제 칼질을 하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베였다. 살짝 그쳤는가 싶더니 이내 피가 났다. 송송 솟아나는 피가 예사롭지 않았다. 갈라진 틈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살갗은 제 탓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반목이다. 틈은 이때라는 듯 피를 쏟아낸다. 순간, 한기가 들었다. 이럴 때 상처를 줄이는 일은 얼른 틈을 막는 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틈을 누르고 손가락 아랫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그랬더니 솟아나던 피가 가까스로 수그러들었다. 나는 겨우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다음날 보니 살갗에 선명하게 칼집이 생겼다. 여차하면 또 다시 틈이 벌어질 태세다. 단단하게 부어오른 게 내가 잘했느니, 네가 잘했느니, 속내는 여전하다. 이럴 때일수록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될 터, 공연히 역정이라도 내는 날이면 상처 아무는 시간만 한층 길어질 뿐이다. 엉겨 붙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게 화해가 빠른 법, 나는 모른 체 반창고만 갈아 붙였다.

도로나 건물의 외벽에 틈이 생기면 어느 새 흙먼지와 이끼가 끼고 때 아닌 생명들이 자라곤 한다. 그런 생명들이 오죽 질길까, 틈은 더욱 벌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인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부부싸움도 화해의 시간을 미루는 동안 틈새에 끼어든 또 다른 감정의 응어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더욱 틈을 벌여 놓지 않던가.

며칠이 지나면서 설핏 덧나는가 싶더니 시나브로 작은 흉터만 남았다. 누군가의 노래처럼 꽃이 핀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로가 꼭 보듬고 있다. 꽤나 서로 내치더니,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때부터인가 통증이 사라지던 기억이 났다. 아하, 용서와 화해를 나눈 뒷자리,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대함이 없고서는 결코 메울 수 없는 틈, 낮아진 삶의 자세, 부부싸움은 하더라도 잠은 한 이부자리에서 자야 한다는 옛말이 허튼소리가 아닌 성싶었다.

새 장갑을 꺼냈다. 양쪽을 잡고 서너 바퀴 휙 휙 돌려본다. 장갑 속에 갇힌 공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럼, 새 것인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쥐고 있던 장갑 한쪽을 놓았다. 순간, 피시식, 장갑 속에 갇혔던 바람이 훅 하니 얼굴을 덮친다. 아이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틈이 말했다.

“틈을 주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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