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미란 작가

오늘의 수필 원고

작성자이미란|작성시간26.06.16|조회수78 목록 댓글 0

1. 사그랑 주머니

 

 

시골집 안방 문을 여니 향냄새가 코를 확 덮쳐온다. 엄마가 엉덩이 걸음으로 방 가운데까지 옮겨와 해쓱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간병인 도움으로 머리를 감고, 채 마르지 않는 머리카락을 빗질하여 시골 아저씨 포마드 바른 머리처럼 딱 붙여 놓았다. 흐트러진 자신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 걱정시킬까 봐 오매불망 걱정이다.

 

저기 호박 가져가거라. 분이 많은 것이 참 좋다.”

 

해마다 농사지은 호박 중 가장 태가 나는 것을 내 몫으로 남긴다. 엄마가 주는 알토랑 같은 호박, 알밤, 모과, 대봉감, 탱자 등을 우리 집 응접실 귀퉁이에 장식해 놓는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 내내 가을의 풍요로움을 즐긴다.

봄이 산 너머에서 냄새를 풍겨오면 봄맞이 대청소한다. 이때 가을의 잔재를 정리하다 보면 호박에는 번번이 속는다. 윗부분은 멀쩡한데 밑은 감쪽같이 살살 상해 들어와 못쓰게 되어있다. 호박은 골병이 들면 쉽게 상한다. 추수할 때나 옮겨올 때 크고 무거우니까 알게 모르게 부딪쳐 골병이 드는 모양이다. 보이지도 않는 껍질 밑에 사정을 어찌 알리오. ‘조금만 더 있다가미련을 부리다가 당하는 매년 연례행사다.

멀쩡한 호박이 속은 손쓸 수 없게 상해 있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인물 좋아 선택된 귀한 것을 해마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보면 죄송스럽다. 속은 다 상하고 겉모양만 남아 있는 물건을 사그랑주머니라고 한다는데 상한 늙은 호박은 영락없는 사그랑주머니다.

상한 늙은 호박을 보면 엄마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호박은 멀쩡한 겉과 달리 속이 몽땅 상해 있다. 엄마 역시 삭정이처럼 사그라진 모습이라도 겉은 아쉬운 대로 봐줄 만하나 내장은 모두 유효기간을 넘긴 상태가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늙은 호박이나, 엄마나, 속이 골병들어 몽땅 상한 모양이다.

엄마는 다리를 쓰지 못한다. 방 안에서 용변을 처리하다 보니 고약한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유별나게 냄새에 민감한 딸을 위해 향을 피워 냄새를 쫓으려고 용을 쓴다. 몸은 사그라질 대로 사그라진 상태인데도 자기보다는 식구들을 생각한다. 다리를 못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가족 사랑 때문이다.

농사일을 많이 하여 약간씩 문제를 일으키던 다리가 아버지 49재 때 절을 심하게 많이 한 후부터 무릎 관절에 물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못쓰게 되었다. 엄마 평생을 몸과 마음을 그렇게 고생시킨 분의 극락왕생이 본인의 다리보다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 치료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이 차츰차츰 악화하더니 드디어 다리를 완전히 못 쓰게 되어 방 안에서 용변까지 처리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한평생 엄마의 어깨에 걸머진 무거운 짐으로 사셨다. 종손이란 족쇄 때문에 어렵게 일본까지 가서 하던 학업을 졸업 직전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강제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 묶어두려고 시킨 결혼이니 집안일에 애착이 갈 까닭이 없었다. 시작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아버지 눈은 항상 가정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는 사랑받으며 귀하게 자란 부잣집 막내딸이었다. 가문끼리 맺어진 인연 따라 아무것도 모르고 힘들고 어려운 종갓집 종부로 옮겨 타게 되었다. 힘들게 사는 막내딸은 외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외할머니 걱정에 친정엄마한테조차 하소연 한 마디 못 하고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힘든 현실을 혼자 꾸역꾸역 삼키고 살았다.

더구나 아버지는 노후에 뇌졸중으로 16년을 앓으셨다. 까다롭고 자존심 강한 아버지는 엄마를 제외한 어떤 누구에게도 흐트러진 당신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몇 차례 재발하여 병원에 장기 입원하였다. 힘든 병원 수발은 물론 모든 시중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엄마 손에만 의지하였다.

엄마는 항상 본인보다는 가족을 먼저 염두에 두고 자기 몸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가장의 소홀한 부분까지 보충하며 가정을 세우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한평생 용감하고 억척스럽게 종부와 엄마 역할을 했다.

세 분의 작은아버지와 고모에 연이은 우리 네 남매를 모두 최고 학부까지 마치게 하고 우리 집에 부잣집이란 명패를 달았다. 자식들 뒷바라지와 종갓집 대소사를 치르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섬섬옥수였던 손가락 하나가 우리들의 손가락의 두 개 굵기가 되어있었다. 엄마의 삶 전부가 자식과 가정이 전부였다.

예전에는 엄마가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어떻게 살고 어떤 대접을 받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는 나이가 되고 보니 비로소 엄마 사는 모습이 오롯이 눈에 박혀 들어와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엄마는 여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과 누리고 싶은 것들을 가슴 깊숙이 묻어 두고 살아왔다. 그런 엄마의 세월이 안타깝고 애달프고 짠하다.

더욱 속이 아리는 아픔은 팽개쳐진 엄마 몸이 반란을 시작한 것이다. 항문 부근의 생긴 피부암 수술로 항문 조임근이 상하여 변 조절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대변 줄을 밖으로 빼내어 배꼽 부근에 대변 주머니를 달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또한, 뇌졸중과 위산 역류 등 신체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다스리기 위해 약을 매일매일 식사량에 버금가는 양을 복용하고 있다.

늙은 호박이나, 엄마나, 그렇게 골병이 들었으니, 속이 모두 상해버린 사그랑주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몸으로도 좋고 잘된 것은 모두 자식들에게 주고 싶어 하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 일색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괜스레 화가 난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여 가족들의 밑그림을 그리고 가정의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한평생 이끌어 왔다. 신이 계신다면 힘든 굴레에서 벗어나 지금쯤은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도 해본다.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엄마와 다정스럽게 손잡고, 마주 보며 이야기도 못 하겠다. 이런 나의 행동에도 당신은 오히려 가슴 아파하시리라.

철없던 시절에는 북데기 같은 머리를 하고 눈만 뜨면 밭과 들에 엎드려 일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여성스럽게 꾸며진 모습으로 지내면 아버지도 가정에 충실하실 것 같고, 우리 엄마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다.

늦은 후회지만, 북데기 머리든, 봉두난발 머리든 상관없다. 원하는 곳에 두 다리로 걸어가서 두 팔 걷어붙이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엄마 모습이 보고 싶다. 외모가 멀쩡하니 저렇게 속으로 곪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본인이 관리하지 않는 것을 나라도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저런 최악의 상태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사그랑주머니 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친다.

 

 

 

 

 

 

* 사그랑 주머니 : 죄다 삭은 주머니라는 뜻으로 속은 다 삭고 겉모양만 남은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밀물은 든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다. 지난 일 년을 힘들게 견뎌왔다. 경제가 곤두박질하여 매출이 밑바닥을 쓸고 있다. 이제나저제나 하는 가느다란 기대로 일 년을 십 년처럼 보냈다. 매출의 누운 막대그림표는 척추가 고장 났는지 일어날 줄을 모르고 있다. 힘들다고 벗어 던질 짐도 아니니 그저 힘들게 견디고 있을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벼락 같은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터널의 끝인가 하고 달려와 보니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터널 입구를 막고 있다. 가뜩이나 지쳐있는데 회사 내에 송사까지 생겼다.

영업부 직원이 정년퇴직 후 촉탁직으로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아내 이름으로 회사를 만들어 자기 사업을 하였다. 자기가 영업하던 우리 거래처에 본인이 우리 기계를 만들어 우리 회사 상표를 도용하여 우리 제품인 양 판매하였다. 더구나 창고에 있던 부품까지 빼내어 팔아 챙겼다.

우리 기계는 마음대로 만들어 팔면 법에 저촉되는 특허 등록이 되어있는 기계다. 코로나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회사를 더욱 어렵게 하였고 믿음과 신뢰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셈이다. 그는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입사하여 30년이라는 긴 청춘의 세월을 동고동락한 특별한 직원이었다. 유난히 믿음을 주었기에 애정을 가졌던 직원이었다.

가슴에 새하얀 바람이 인다. 어쩌면 좋을까. 사과하길 기다린 시간이 일 년을 넘기고 있었다.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괘씸한 마음에 법대로 처리하려고 한다. 발생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상태가 벌어진 상황이다.

, 다른 송사가 보태어 진행 중이다. 우리 공장에서는 철판을 자른 다음 둥글게 말고, 붙여서 형상을 만드는 라인의 기계들을 만들고 있다. 그중 일부인 용접 파트의 기계를 우리가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공장에 이래저래 가르쳐 만들게 하여 납품받아 사용했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자기가 발명했다고 발명 특허를 받아 우리가 만들어 판 기계가 특허법을 위반했다며 오히려 우리를 고소한 것이었다. 이일은 우선 10년 전부터 만들어 온 기계를 작년 11월에 발명 특허 내어준 특허청의 잘못이 크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송사 문제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된서리가 내려 허연 머리에 척추협착증으로 끙끙거리며 밤잠을 설치는 늙수그레한 남편의 모습이 안타깝다. 코로나로 충분히 시련을 거치고 있지 않았는가. 이 상황은 넘어져 우는 아이 뒤통수를 때리며 발길질하는 상황이다.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일생을 좌우한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글귀가 복잡한 머리를 깨운다. 그는 사무실 한가운데에 낡은 그림을 평생 걸어 두었다. 쓸쓸한 백사장에 배 한 척과 낡아 빠진 노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 하단에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반드시 밀물의 때가 와서 이 배를 다시 넓은 바다에 띄울 수 있다는 희망의 그림이었다.

오늘은 썰물이 무자비하게 쓸어 와서 황량한 모양을 만들었지만 낙심하지 말자. 현재가 암흑이라고 포기하지 말라. 밤이 깊으면 곧 동이 틀 것이니, 희망을 놓지 마라. 반드시 밀물 때는 다시 올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유행하는 말이 있다. ‘WHY ME,’ ‘WHY NOT YOU.’ ‘왜 하필 납니까?’라고 물으니, 신이 너는 왜 안 되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저 모래사장에 떠밀려온 낡은 배처럼 힘든 상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억울해하며 앉아서 한숨이나 쉬면서 신세타령은 그만하자.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낡아서 허물어진 배와 노를 알뜰하게 수리해 놓아야 한다. 곧 밀물이 들어올 것이다. (9.4)

 

 

3. 거멀못

 

두리함지박이 쩍 하고 금이나 갈라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흠뻑 정이 든 것이라 가슴이 쓰리고 아깝기도 하고, 간수를 잘못한 것 같아 물려주신 어른분들께 죄송스럽기도 하였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거멀못으로 수선을 잘하면 흔적은 있지만, 임시방편으로 아쉬운 대로 쓸 만하게 고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거멀못이란 나무 그릇, 나막신 따위가 벌어져 있거나, 벌어질 염려가 있는 곳에 더는 벌어지지 않게 양쪽에 걸쳐서 박는 못이나 꺾쇠를 이러는 말이다.

골동품 전문가를 찾아가 거멀못으로 수리하여 거실에 다시 앉혔다. 갈라졌던 두리함지박이 약간의 틈은 있지만, 그런대로 입을 잘 맞추었다. 물을 담는다든지 제삿밥을 비비는 등에는 쓸 수 없지만 마른 재료를 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거멀못으로 수리된 두리함지박을 보고 있으니 두 쪽으로 갈라진 우리나라의 요즈음 모양새가 머리를 스친다. 땅이 남북으로 갈라졌는지도 강산이 변하는 세월의 묶음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오랜 세월의 강이 흘렀다.

남북은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서로 상처를 내면서 어러렁거렸다. 육이오 내전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였고, 그 아름답던 강토는 피폐해졌다. 총성은 전 국토를 뒤흔들었고 그 아름답던 산야를 곰보딱지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까지 전국 구석구석 땅속에 묻혀 있는 폭탄과 총알이 나와 피해를 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아늑한 깊은 산속에서 행복한 보금자리를 틀고 있던 백두산 호랑이 같은 귀한 야생 동물의 멸종까지도 초래했다.

단군을 한 조상으로 하여 피를 나눈 배달민족이지만, 남보다 훨씬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적대국이라 외치는 철천지원수요, 사생결단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휴전선 부근에는 지뢰로 도배하여 제거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를지 상상도 못 한다.

요즈음 북에서 핵무기를 가지고 덤비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강대국들이 어린아이 달래듯 이리저리 구슬리고 있다. 힘 있는 미국이 거멀못이 되어 남북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고 야단이다. 자국 이익 우선주의 외교에서 미국이 과연 어떤 식의 역할을 할 것인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

멀쩡하던 이 강토를 일본군 무장해제란 허울 좋은 간판을 내걸어 열강들이 편의대로 삼팔선이란 줄을 그어 미국과 소련이 남북으로 상륙하였다. 주인인 우리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허리를 댕강 잘라 놓았다. 속내는 그들의 욕심 채우는 땅따먹기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는 요즈음 다시 또 통일을 운운하고 있으니 그 속셈이 훤하게 보이는 작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위치가 더 이상하다. 함지박이 남북으로 쪼개어졌는지 미국과 북으로 쪼개졌는지 모르겠다. 북미 회담이란 말이 밤낮으로 매스컴에 나오고 있다. 한국이란 우리 자리는 만들어 줄 생각도 없고, 참석하는 것을 주장도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엄마 치맛자락 뒤에 숨어 뒷전에서 구경이나 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키는 심부름이나 하는 어린아이 모양새.

그뿐이랴. 힘들게 추수한 수확물을 절 모르고 시주하고 있다. 이북에서 요구하는 괴상한 명목으로 국민 알게 모르게 퍼다 주며 굽신거리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에 보태어 이북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데 벌써 철조망을 걷어치우고 힘들게 만든 북쪽의 침입을 막기 위해 힘들게 만든 튼튼한 시멘트 벙커를 굴착기로 부수어 버리고 있다. 저쪽은 떡 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 미리 김칫국을 마시는 꼴이다.

더구나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멀못이 되어 북미를 붙이는 모양으로 되어가고 있다. 남북을 합칠 때는 임시방편이더라도 미국이 거멀못이 되어 우리 입장을 중재하여 남북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루어지는 모양이 가관이다. 우리나라 국정 최고 수반이 바쁘게 이북에 갔다가 미국으로 횅하니 보고하러 간다고 분주하다. 대접도 옳게 받지 못하면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모양새가 서글프다. 또한 북에서는 중국과 소련을 불이 나게 들락거리고 있다.

오늘의 외교 무대 배우들의 하는 모양새가 지나간 역사에서 행하였던, 수치스럽고 슬픈 역사와 너무나 닮아가고 있다. 대원군은 청을, 명성 황후는 러시아를 들락거리며 손을 벌리다가 결국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치욕스러운 상처가 오랜 세월이 흘러 하얗게 바래어진 것 같더니 새삼 왜 이렇게 통증을 느끼게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모양이 뇌리를 스치며 가슴 깊은 곳에서 시린 바람이 일고 있다.

줏대 없이 열강에 기대어 그들이 흔드는 데로 이리저리 휘둘리던 마마보이 역사를 오늘 재연출하는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배우가 약간 바뀌었을 뿐 미국이니, 중국이니, 소련이니 그들의 역할이 과거의 열강들과 너무나 유사하다.

과연 그들의 외교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얼마나 존중하며 거멀못을 박을지 걱정스럽다. 지나온 역사에서 많이 겪은, 부끄럽고 슬픈 외교의 길로는 접어들지 말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조마조마하다.

우리 스스로 미래의 방향키를 꾹 잡고 우리 민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외교 무대에서 타국이 만드는 임시방편의 거멀못 수리가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드는 강력 접착제에 의한 튼튼한 복구가 이루어지기를 빌어 본다. (13.4)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