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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순 작가

예순 입문기

작성자변미순|작성시간22.12.23|조회수36 목록 댓글 0

 

예순 입문기

변미순

 

   팔에 토시를 끼고, 썬글라스를 쓰고 운전하는 여성을 보면 유난스럽다고 비아냥거려 왔다. 최근 양쪽 팔목 주변에 종기가 나고 긁어 염증까지 생겨 고생을 했다. 약을 바르고 긴 팔토시를 구입해 끼고 다닌다. 피부가 약해지면서 예전에는 괜찮던 일들이 각종 질환으로 나타나고 있다.

   눈도 노안으로 불편하기만 하다. 돋보기가 없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햇빛에 나가면 눈이 부셔 썬글라스를 껴야 시야가 확보가 될 지경이다. 남을 탓하던 피부도, 눈도 형편없이 약골이 되어버렸다.

   내 나이 40대 즈음이었다. 식후 약을 한 주먹씩 드시는 어르신들에게 무슨 보약을 그렇게 많이 챙겨드시냐고 비아냥 되었다. 화가 난 인생 선배들이 한말씀 하였다. “피임약이다. 너도 주까?” 주위 사람들과 함께 데굴데굴 구르면 웃었지만 속으로는 쓸데없는 건강 욕심이 아닌가 하며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을 헤아려보니 10알이 넘는다. 당뇨약, 콜레스테롤 약, 피로회복제, 비타민, 유산균, 수면유도제, 비염약, 총 7종류나 된다. 앞으로 더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역류성 식도염 증세가 불편하여 병원가서 약을 타 와야한다.

예전에는 손주 자랑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핏줄이니 그렇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도 안 이쁜데 손자, 손녀 자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분들보다 더 심하다. 5만원 낼테니 봐 달라며 응겨붙기도 한다. 종일 손녀이야기만 하라해도 가능하다. 손녀만 생각하면 행복하다. 해야할 일을 잊을 때도 있고, 손녀가 온다면 모든 일을 뒤로 미룬다.

   내가 젊었을 때 비웃어대던 일들이 고스란히 나의 일이 되었다. 그때의 건방짐이 너무 죄스럽다.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이 부끄럽다. 세월은 애누리없이 모두에게 노년, 노화를 안겨주는데 젊음은 마냥 내 것으로 영원할 줄 알고 까불었다.

   세월은 참 많은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앞으로 또 어떤 합리화로 나를 이야기하고 포장해 갈지 궁금하다. 살아보지 못한 나이에 대해 좀 더 겸손해 져야겠다. 50대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인생 선배는 60대도 꽤 좋았단다. 다행이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날들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새 세상을 살고 있다. 젊다고 장담하지 말고, 나이들었다고 낙담하지도 말자. 매일이 소중하니 감사의 마음으로 겸손해지자고 다짐해 본다.

 

한국수필문학관, 수필로 행복을 꿈꾸다 :12-14.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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