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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순 작가

모기와 나

작성자변미순|작성시간23.03.07|조회수21 목록 댓글 0

 

 

모기와 나

변미순


   어느해 10월 초. 날씨는 시원해졌는데 모기 한 마리가 방 안에 날고 있다. 귓가에서 윙윙대니 잘 수가 없다. 어린 조카가 같이 자겠다고 침대에 파고 드니 더욱 결단을 내야 한다. 법정스님은 모기에게 헌혈한다 했지만 한번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어야 하는 고통에 작은 소리에도 긴장을 하였다.

   잠도 오고 느려진 손짓으로 한시간째 10월 가을 모기에게 농락당하고 있자니 화나는 것보다 서글픔이 더해진다. 모기를 시원하게 때려잡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 하는 기억을 떠 올리니 더 화가 난다.

   잠자기는 틀렸다. 시집 한 권 읽으려 앉은뱅이 상 하나 펼쳐놓고 보니 내일이 일요일이라 다행이다. 시 구절 한 줄이 눈에 들어온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이 글로 위로를 하며 한밤 모기와의 전쟁을 포기한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일어나니 조카가 몸을 긁으며 울상인데 나는 모기에게 한방도 물리지 않았다. 늙은이 피는 맛도 없나벼.

 

   어느해 9월 하순. 몇 번 지진을 겪고나니 잠자리에 들때 가끔 긴급대피시 들고 나갈 가방을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이 밤은 작은 모기 한 마리 때문에 지진이고 뭐고 다 잊고 모기와 전쟁을 시작한다. 방 천장에 앉은 놈이 파리채를 휘둘러도 잡히지 않는다. 왱~소리를 따라 가 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너에겐 지지 않으리라 각오를 다지고 쫓다가 펼쳐둔 박스에 걸려 넘어지면서 모서리에 무릎이 긇히고 만다. 모기 피 보려다 내 피를 보고 말았다.

   넘어지는 소리에 자던 딸아이가 와서 보고는 어이없는 표정이다. 젊어서는 파리도 손으로 잡아 후려쳤는데 하는 너스레는 입속에서만 맴돈다. 재바르다는 것은 그냥 내 머리에서만 존재하는 추억의 단어일 뿐이다.

 

   또 어느해 9월 마지막 날.  초여름 가뭄과 한여름 뙤악볕 더위 때문에 모기의 개체수가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종종 나왔다. 그래도 주택에 사는 나는 매년 여름과 가을, 모기를 맞아 전쟁하는 50대 아줌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는 입이 삐뚤어져 잘 물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모기 나는 소리에 여전히 민감하게 소름이 돋는다. 오늘도 왱~하고 모기 한 마리가 약을 올린다.

   올해는 미리 흰 깃발을 흔들며 항복을 한다. 날 밤을 새우면 내일은 피곤으로 더 힘들어 할 것이므로 오늘밤 저 모기와는 대응하지 않겠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맘대로 해봐라 하고 잠들어 버렸다. 여름내내 모기는 못잡고 빈 박수만 치지 않았던가.

   잠버릇이 곱지 않아 분명히 이불을 벗어던지며 잤을 것인데 모기에게 물린 것 같지가 않다. 내 피가 맛이 없어졌을 수도 있고, 피부가 가려움에 둔해진 것일지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제 모기도 포기한 피맛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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