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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순 작가

출가

작성자변미순|작성시간23.03.07|조회수70 목록 댓글 0

 

 

출가(出家) -喜怒哀樂중 (哀)를 (樂)으로

변미순

 

    세상이 누르는 온갖 잣대로 비교 당하고, 낙심하고, 매사가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시한폭탄처럼 터져버릴것 같았고, 울어도 울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 억울함만 가득 차 있었다. 미간은 늘 찌푸려져 있었던 그런 혼잡스런 시간에 큰딸이 나의 곁을 떠났다. 벌써 십여년 전이다.

피눈물이 강처럼 흘렀다. 아이를 따라 나도 이생을 떠나면 되겠다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 하였으나 난 밥숟가락을 들고 국밥을 먹었다.

     그 무렵,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새로 옮긴 일터는 쌓이는 일이 많아 야근을 밥먹듯이 하였다. 큰딸과 함께 가지 못하는 변명거리도 되었고, 시름에 빠질 사이없는 상황이 오히려 좋았다. 빠른 추진력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고 실적과 칭찬이 이어졌다.

    성철스님은 세상에서는 10원의 값진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출가한다고 하였다. 나는 큰딸을 따라 가는 것 대신에 일에 몰두하기로 하였다. 스님의 출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를 위한 일은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욕심으로부터 출가하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로 누군가가 편하면 좋겠다, 나로 인해 무엇이 새로워지는 방향이 되면 더 좋겠다, 농업인이 소득이 증가하고, 그들의 단체가 힘이 강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세우려 하지 않는 대신 다수의 다른 이의 세상을 위해 살기로 하였다.

    어떤 잣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 있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고, 누군가에게 줄 것이 있으면 기꺼이 내어놓고, 도움을 청하거든 감사히 일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내가 큰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마음 전부였다.

   더는 살아갈 기력도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칼날 위에 선 듯 아슬아슬하게 바보처럼 살았던가 후회가 되었다. 나의 분신이 한순간에 떠나고 없는 일도 벌어지는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하였던가. 미간의 주름을 펴고 아이와 더 자주 웃고 놀고 이야기 해야 했었다.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속상해하며 지내 온 것이 미치도록 억울하였다.

   이보다 더 큰 후회가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나의 참척의 일을 가까이에서 보고도 아직 세상 욕심에, 조급함에 허덕이는 친구도 가족도 있었다. 마음은 쉽게 비워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억지로 비워내고 보니 참 너른 바위가 깨끗하게 놓여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느끼는 감정도 여유롭게 조절 가능하며, 매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사실로 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나의 에너지가 보통 사람의 서너배가 되는 듯하다고 한다. 가장 친한 친구는 전생의 여분을 끌어오고, 현생의 에너지는 최대치로 사용하고, 내생의 에너지까지 대출해서 쓰는 인생이란다.

    꽃같은 나이에 더 살지 못한 큰딸의 몫까지 열심히 살기로 했다. 후제 덤으로 산 나날들을 펼쳐놓고 디자인 전공한 너의 손길이 나의 일 곳곳에서 어떻게 함께 하였는지 설명해 주려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난 힘들지 않다. 큰딸과 함께 그날 출가하였기에.

 

 

<2022년 수필세계 책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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