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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순 작가

사유원을 거닐다-문학기행 후기

작성자변미순|작성시간24.01.01|조회수82 목록 댓글 2

 

 

사유원을 거닐다

변미순

 

   우리 수필세계작가회는 매년 6월 6일에 문학기행을 간다.

   올해는 어디로 갈까? 봄이 되고부터 후보로 떠오른 장소들이 머릿속에서 전을 폈다. 그중에서 거리가 먼 곳, 언제든 갈 수 있는 곳, 많이 알려진 곳을 제외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소가‘사유원’이었다. 가본 적 있는 그곳은 나의 뇌리에 특별한 곳으로 저장돼 있었다. 임원회의에서 문학기행 후보지로 사유원을 추천했다.

   문제는 비싼 입장료였다. 평일 5만 원, 공휴일은 6만 9천 원, 단체는 20명 이상일 때 10%가 할인된다고 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비싼 입장료에 기겁한 회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나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가지 못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개인에게 입장료를 부담 지우지 않고 모아둔 회비를 쓰자는 조건으로 사유원이 후보지로 낙점되었다. 대신 다른 곳에서 경비를 아껴보자는 뜻에서 올해의 문학기행은 전세버스 대신 회원끼리 소그룹을 지어 승용차로 이동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때부터 나의 뇌리는 쉴 틈이 없었다. 어찌하면 남다른 문학기행이 될까 고민하였다. 거금의 사유원 입장료가 사무국장 공금횡령의 사건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후보지가 되고 나서 두 번 사유원을 사전 답사로 다녀왔고 숲해설을 위해 몇가지 나무 공부도 하였다. 사유원과 가까운 ‘세이베리 딸기농원’에서 딸기 수확 체험도 곁들이기로 했다.

   6월 6일 오전 10시 30분, 약속 시간에 맞춰 21명의 회원이 딸기농원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회원들의 표정에서 어린 날의 소풍 날을 떠올렸다. 상기된 얼굴빛에 나이는 없었다.

   6월은 높은 기온으로 딸기의 맛과 향이 떨어지는 시기다. 그런 기후적인 조건이 무색하게 농장에서는 제철처럼 맛과 향이 좋은 딸기가 생산되고 있어 회원들을 놀라게 했다. 혹시나 걱정되어 문학기행 한 주 전, 방문하여 딸기의 품질을 미리 확인해 둔 나는 맛있어 하는 회원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딸기농장에서 시행하는 ‘고설수경재배’ 농법은 첨단기술이다. 침대처럼 높이 올린 곳에서 재배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회원들은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공중에서 자라는 딸기 모습에 놀라고, 달고도 청정한 맛에 놀랐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딸기농장 체험은 신기술을 직접 보고 느낀 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딸기 체험을 마친 뒤, 점심을 먹으러 수목원 근처 ‘수덕고디탕’으로 향했다. 답사차 갔을 때, 엄마의 밥상처럼 소박하면서도 돌솥밥 맛이 일품이어서 선뜻 예약해둔 식당이었다.

  문학기행의 정점은 뭐니 해도 ‘사유원’이었다. 태창철강 회장인 사야(史野) 유재성 개인이 ‘나를 마주하는 내 안의 숲’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사색하며 산책하는 공간을 목적으로 만든 수목원이라는 소개에 내 마음은 사정없이 끌렸다. 실제로 그곳에서 건물의 단아함과 차원 높은 건축미에 무한 감동했다. 내가 사유원을 문학기행 장소로 강력 추천한 이유였으나, 오랜 시간 꾸미고 가꿔 한껏 멋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다른 수목원에 익숙한 회원들의 눈이 과연 내가 사유원에서 느낀 감동에 공감해 줄지 걱정이 되었다.

   제2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오 분 정도 걸어서 사유원 입구에 도착했다. 예약할 때 이미 숫자대로 요금을 정산했기에 입장할 때 인당 생수 한 병씩을 건네받았다. 그 밖에 음식물은 반입 금지라고 했다.

   사유원의 정문 이름은 ‘치허문’으로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한국의 건축가인 승효상의 작품이다. 승효상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을 설계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곳을 들어서면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꼬부랑길이 나온다.

   사유원의 맨 꼭대기에 있는 찻집인 ‘가가빈빈’에 닿기까지 날것의 건축물들을 만나는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교통 불편한 산속에 어떻게 건축재를 날라왔는지도 궁금했다. 원래 20만평 이상의 자연을 그대로 두는 걸 원칙으로 삼고 조성한 수목원이라고 했다. 그 자연에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을 자연에 스며들 듯 앉히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고 했다.

   실제로 포루트칼의 대 건축가 알바로 시저, 한국의 위대한 건축가 승효상, 정원 전문가, 조명 전문가들의 예술적인 시각이 산속의 자연과 하나처럼 어우러진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이름난 건축인들의 작품답게 흐트러짐 없는 단아함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각 건축물을 만날 때마다 작가의 남다른 시선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다 보면 오르막길을 오르는 피곤이 멀리 달아났다.

   반 천 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백여덟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는 ‘풍설기천년’에서 회장은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모과나무를 상상했는데, 크기를 거세당한 분재목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처연해진다고 했다. 인간의 108번뇌를 모과나무가 대신 겪는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삐죽 위로 자라기만 하는 모과나무를 아름다운 분재목으로 키워낸 대를 이은 원예사들의 노고와 기술에 감동해서 가슴이 먹먹했는데, 회장은 박탈당한 모과나무의 자유 의지를 슬퍼했으니 사람의 눈과 감정은 얼마나 다른가! 그래서 ‘홀로’보다 ‘함께’하는 삶이 더 풍요로운 것 같다.

   사유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위대함, 전문가, 소중함, 오랜 기획, 집중력 등등을 녹여 낸 이곳은 소란하지도 않고, 혼잡스럽지도 않은 단아한 장소이다.

   이십 년을 가꾸고 본격적으로 조성한 뒤 최근 오픈한 사유원은 매일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해 혹시나 생겨날 자연 파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내가 선택한 곳에 대한 감동을 회원들과 공유할 수 있어 기뻤고 보람도 있었다.

   글로 사유원의 건축과 자연을 다 적을 수는 없다. 단언하건대 직접 가보지 않고는 그 충만한 감동을 결코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사유원의 비밀스러운 매력을 다 오픈하고 싶지도 않다. 여름, 가을, 겨울의 사유원을 보았고, 네 번째로는 단체 기행을 다녀왔다. 그런데도 갈증을 느끼는 나는 이른 봄, 익은 봄, 배롱나무꽃이 환하게 피는 한 여름에 각각의 시기에 맞추어 방문할 꿈을 다시 꾸고 있다.

    슈퍼리치라는 말이 있다. 부자들의 사회적인 책임이 세상을 바꾼다고 한 워렌버핏의 말이다. 한 개인 기업가가 평생 일군 부의 전부를 이 산에 녹이고 있다. 그의 선한 행동이 다수의 감동으로 재탄생한다면 진짜 성공한 기업가의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작회 회원 한분 한분이 사유원에 멋지게 녹아 멋을 만들었다. 가야금 연주에 어깨춤을 출 줄 아시는 회장님, 컨디션 난조였으나 끝까지 완주해 주신 분, 빨간, 파란 쟈켓이 사진의 색과 어울려 더 화려하게 꾸며주었다. 여러 사람이 한 곳을 같이 여행하면 백 개의 눈으로 보는 효과가 생긴다는 걸 각자가 찍은 사진을 주고 받으면서 깨달았다.

   높은 기온에 걷기 힘든 구간도 있었지만, 다섯 시간을 생수 한 병 들고 거닌 사유원으로의 여름 소풍은 좋은 추억으로 가슴에, 사진에 소담스레 담아 두었다.

   사유원의 조성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완성되면 사회에 환원을 계획하고 있다니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위대한 기부인가! 그날을 못내 기다린다.

 

2023년 12월 <오늘의 수필 8호:19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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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영희 작성시간 24.01.02 사유원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넓은 대지에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가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였습니다.
    사유원이 지금도 진행중이며
    후일 사회에 환원을 계획한다니...
    태창철강 회장의 스케일이 짐작되네요.
  • 작성자자윤김태선 작성시간 24.01.11 안가봐도 본듯한 글 감사합니다.
    짬내서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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