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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숙 작가

자존심을 세우다가

작성자김문숙|작성시간24.05.01|조회수17 목록 댓글 0

 

                                             자존심을 세우다가

 

 

 

                                                                                            김문숙

 

 

 

 

 

 무릎에 병이 났다. 가장자리가 따끔거리기도 하고, 시큼 거리며 덜거덕 소리도 난다. 걷다가 순간적으로 접질러서 깜짝 놀라는 것은 물론이고, 자꾸 아프다. 사 년 전부터 병원을 다니지만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방면으로 진료를 받아 약을 먹기도 하면서, 의사에게 통증이 왜 없어지지 않는지 물었다. 할 수 있는 처방은 최대한 내렸는데 무릎을 해부해 보지 않는 이상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하이힐을 오래 신어온 것이 통증 유발의 원인이지 않을까도 하는데, 구두를 신으면 무릎이 더 안 좋은 것 같았다. 그 하이힐을 사십 년이나 넘게 신었다

 열다섯 살 때의 어느 날, 동네 친구들이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아보자고 했다. 내 방 두 칸짜리 옷장 한 쪽에 세로로 박힌 긴 거울 앞에 명옥이와 선영이, 내가 나란히 섰다. 서로 몸을 맞대며 키를 재보기도 하다가 아버지가 쓰시는 줄자를 가져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차례로 대었다. 명옥이는 165센티가 넘었고, 선영이는 162센티가 되었다. 나는 겨우 153센티에서 달랑거렸다. 평소 나란히 모이면 내 키가 작아서 불만이었지만 정확한 수치를 알게 되자 주눅이 들었다. 우울해하는 나를 보고 두 친구는 우린 아직 어리니 앞으로 더 클 수 있을 것이라며 달래 주었다.

 키는 커질 것이라고 믿었다. 키가 큰 부모님처럼 훤칠하게 변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마음으로 그해를 보내면서 몇 번이나 거울 앞에 서서 얼마나 더 자랐는지 다시 재보았다. 변화가 없었다.‘왜 안 크지?’ 의문을 품으며 애를 태웠다. 그래도 중학교 이학년은 키가 더 크리라는 희망에 서 있었다. 아버지께 내 키가 작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나이를 먹으면 커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믿으면서 그해가 가고 다음 해가 지났는데 키는 그대로였다. 단신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있었다. 한 해가 더 흘러도 키는 크지 않았다.

 성장이 멈췄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을 때 마음이 서러웠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내 키를 앞질러서 쑥쑥 크고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속을 끓였다. 부모님을 원망해보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고민만 했다.‘이 작은 키로 어찌 사노! 결혼도 해야 하는데.’ 온전한 혼인을 할 수 있는지 미래가 불안했다. 밤마다 잠을 설치기도 하고, 부모님과 견주어 보며 어디서 주워온 자식인가를 의심도 했다. 거울로 자주 내 얼굴을 뜯어보면서 부모님 모습을 비교 확인하여 그 의심은 사라졌지만 속상함은 나를 지배했다.

 매일 보다시피 하는 그 친구들은 늘씬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렸다. 얼굴도 미인이었다. 작은 키의 나는 몸이 통통하여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았다. 짧은 다리마저 종아리가 굵어서 치마도 입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들과 함께 서면 외형적으로 확 차이나는 키 때문에 자존심이 자꾸 뭉개졌다. 친구들은 어쩜 저리 키가 크고 보기가 좋은지의 생각이 가득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고, 외출도 꺼릴 만큼 내 키가 싫었다. 친구들은 물론이며, 성인들과 비슷하지 않은 키로 어찌 살아갈지 걱정에 싸여 있었다.

 그러다가 이웃집 처녀들이 신고 다니는 하이힐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의 키가 더 커 보였다. ‘그래 앞으로 저걸 신는 거야!’ 의심도 없었다. 외출할 때만이라도 키가 커진다면 바랄 게 없을 정도였다. 작은 키가 열등감 속에 나를 옭아매었지만 높은 구두를 신으면 저절로 커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낮아진 자존심을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결단에 본격적으로 하이힐을 신으려 행동에 나섰다. 생활비를 아껴 쓰시는 엄마를 졸라, 동네 구두점에서 10센티 높이의 통굽 구두를 맞추었다. 기왕이면 10센티는 크고 싶었다. 그래야 남들과 비슷해질 것이라 여겼다.

진갈색 가죽으로 된 첫 높은 구두, 그것도 십 센티 하이힐! 찾으러 갈 때 가슴이 설렜다. 큰 키의 내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도 좋아졌다. 하이힐에다 나팔바지 밑단을 굽 길이에 맞추어 내리고 신으니 감쪽같았다. 밑단이 구두의 높이를 가려서 외관상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진짜 내 키로 여길 정도였다. 이젠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마술을 부린 듯했다. 허리도 날씬해 보이고 다리도 길어졌다.

 친구들과 나들이를 하면서, 상점의 진열창에 비친 훤칠한 내 키를 보고 아주 만족했다. 이제는 친구들과 섞일 수 있도록 커진 키! 외모가 멋스럽게 보였다. 그때부터 애착을 갖고, 커진 키를 사랑하였다. 마치 호숫가에 비친 고운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처럼. 하이힐을 신은 후 쇼 윈도우에 비쳤던 훅 커져 있던 나의 키! 최대약점을 감춰주며 기꺼이 자존심을 세워주는 이 모습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키가 커진다는 생각에 속상함도 흩어지고, 찡그렸던 인상도 펴졌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마음이 당당해져서 자신감도 생겼다. 문학 모임에 가도, 친구들을 만나고, 도서관엘 가더라도 창피스럽던 작은 키는 옛말이 되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계절에 따라 장만하여 신은 하이힐은 몸의 일원이 되어,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만큼 중요해졌고, 매달렸다. 열망에 부응한 높은 구두는 그런 식으로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이십 대 초반을 보내고, 결혼할 때가 되었다. 선을 보게 되자 십 센티 구두를 신고 나갔다. 이제는 가족이 된 시누이가그만한 키면 딱 좋다고 말할 때 내 마음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혼인한 후에 구두를 벗은 내 키를 보고 문제 삼을까 봐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시집을 오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왜 그렇게 키가 작노? 보통 키도 안되네!” 무안해진 나를 보고 어머님이 달래주셨지만 선볼 때 하이힐을 신고 나가서 속인 듯하여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의도적이었다고 다그쳐도 할 말은 없었지만, 어디 나만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나? 세상 여성이 높낮이는 다르지만 다 착용하는 것은 당연하잖은가.

 아이들이 커가자 미용업의 경제 전선에 뛰어들었다. 온종일 굽 높은 실내화를 신고 허리를 굽힌 채 작업을 하면 다리도 아팠고, 허리도 아팠다. 아픈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넓은 거울 앞의 내 모습이 보기 좋아야 했다. 마땅히 작은 키를 드러내놓을 수가 없었다. 모임이나 외출에도 하이힐을 신었지만, 바깥의 바쁜 활동을 할 때는 키 높이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하거나 여행, 등산할 때도 작은 키를 드러내기가 싫어 굽 높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그렇게 사십 년 바지 밑단에 가려진 거짓 탓일까. 한번 아프기 시작한 무릎이 정상 상태를 영영 이탈한 모양이었다. 연골주사를 맞고, 침을 놓기도 했지만 나이 드는 육신이 거짓을 더는 봐주지 않았다. 충격 속에 몇 달을 곰곰이 생각한 결과, 다시 낮은 신발을 신으려 작정했다. 하이힐에 목맨 애달픈 신체에는 매몰찼지만, 외모와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았다. 안 아픈 것이 최고였다.

 자기애에 빠졌던 성격적 결함을 가진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더 보려고 호숫가를 맴돌다가 그만 풍덩 빠져 은하수로 갔다. 안타깝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기 집착이었다. 작은 키의 열등감에 갇혔던 나는, 하이힐로 커진 키를 사랑하다가 종래는 무릎이 상하게 되어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병을 얻었다. 내 것이 아닌 거짓을 사랑했으니 착각주의자의 결과이다. 나르키소스는 신화여서 타당성이 있지만, 현실에서 하이힐을 사랑한 자리에 돋아난 통증에는 타당성이 없다. 허상을 쫒은 겉치레만 존재할 뿐이다.

 키가 작으면 어떻나? 생긴 대로 삶을 잘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 부모님이 주신대로 진짜 내 키의 모습으로 살아왔다면 예순에 이리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치를 거슬렀으니 그 대가가 크다. 앞으로 통증이 더 심해질까 우려된다.

 이제야 알게 된 일이지만, 하이힐을 신으면 무릎에 체중이 쏠려 실리게 되는데 무릎을 손상시키고, 허리도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 말처럼 허리도 안 좋아졌고, 무릎도 이 모양이 됐다. 작은 키를 높은 구두에 기대서 살아온 사십 년, 그것이 병으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젊음이 가진 무모함에다, 언제까지나 건강하리라 착각 속에 살아온 탓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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