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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작가

나이아가라 폭포

작성자자윤김태선|작성시간24.02.29|조회수45 목록 댓글 0

                                                              나이아가라폭포

 

  나이아가라폭포를 가기 위해 뉴욕주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었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 차창 너머로 둥둥둥 북소리가 들렸다. 원주민들이 여태 이곳에 살고 있는가, 환청인가. 금방이라도 인디언들이 춤추며 뛰어나올 것 같아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멀리 산불이 난 것처럼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솟았다. 가까이 가니 산불이 아니라 폭포가 품어내는 물안개였다. 나이아가라폭포가 일곱 빛깔 무지개 화관을 쓰고 자태를 드러냈다.

  나이아가라강물은 이리호수에서 폭포를 넘어 온타리오호수로 흘렀다. 세계 최대 유량을 자랑하며 바다같이 도도히 흐르던 강물은 말굽처럼 움푹 파인 절벽 끝에 이르자 고꾸라지듯 곤두박질쳤다. 길 가던 아가씨가 털썩 넘어져 얼른 고개를 못 들듯 물 부딪히는 굉음은 조금 뒤에 들렸다. 그만큼 낙폭이 컸다. 폭포 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깊은 한을 토해내는 울부짖음 같았다. 시름을 폭포가 대신 울어주는 듯 속이 후련했다.

멀리서도 물소리는 세차게 들리고 호기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달렸다. 폭포를 마주하자 국기 게양대 앞에 선 것처럼 숙연해졌다. 바라보고 서 있으려니 떨어지는 물줄기가 다시 거대한 물기둥이 되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새로운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물을 차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기분이었다. 심호흡을 하자 조금 진정이 되었다.

  나이아가라폭포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했다. 새로운 체험에 들뜬 우리에게 가이드가 질문을 던졌다, 독수리같이 날아볼까, 연어처럼 물길을 거슬러 오를까, 물방울을 흠뻑 뒤집어쓴 공주가 되고 싶은가. 우리 대답은 당연히 모두 다였다. 비용을 추가해 세 가지를 다 해 보기로 했다. 나는 평소에 알뜰한 여행을 즐겼지만 나이아가라폭포는 버킷리스트에 있는 만큼 이번에는 주머니 끈을 풀었다.

  유람선 혼블라호에 올라 폭포에 바짝 다가갔다. 바가지로 퍼부어대듯 물이 쏟아졌다. 얼굴에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폭포가 세찬 손길로 사람들의 얼굴을 씻겨주었고 세속의 때를 벗겨 낸 듯 말끔한 얼굴들이 마주 보고 웃었다. 유람선은 물고기가 헤엄치듯 폭포 자락을 휘저었다. 빨간 우의는 캐나다에서, 파란 비옷은 미국 쪽에서 유람선을 탄 사람들이었다. 비옷 색깔이 다른 두 척의 배가 서로 지나칠 때 청홍전 응원을 하는 것처럼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여러 나라 언어가 뒤섞여 튀어나왔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탔으니 비명도 가지각색이었지만 아아악은 공통어였다.

  유람선에서 내려 제트보트에 올랐다. 폭포 아래쪽 소용돌이가 하얗게 몰아치는 곳으로 뱃머리를 들이댔다. 흰 물살을 가르며 나는 듯이 스쳐 갔다. 거대한 물기둥이 앞을 막아도 보트는 내쳐 달렸다. 날쌔게 뚫었지만 물이 더 빨랐다. 보트 안으로 물이 들어차 아수라장이 되었다. 물보라 속에서 한고비 넘겼다 싶으면 또 다른 소용돌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술술치 않은 우리 인생살이 열두 고개를 넘는 것 같았다. 볼이 얼얼하도록 물을 얻어맞고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되어도 싫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감미로움이 밀려왔다.

  세 번째 체험인 헬기를 타고 하늘을 날기로 했다. 나는 어릴 적 가을 하늘을 뱅뱅 맴돌던 고추잠자리를 볼 때마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도로에 차가 밀리면 날갯짓해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마음이 먼저 훨훨 날아 이산 저산 봉우리를 건너다녔다. 늘 그렇게 날고 싶었는데 그 원이 이루어졌다. 안전교육을 받고 헬기에 탔다. 위풍당당하게 조종석 옆에 자리 잡았던 아저씨가 앞면 유리로 튀어나갈까 무섭다며 나와 자리를 바꾸자 했다. 덕분에 나는 어부지리로 앞좌석을 차지했다. 잠자리 눈처럼 생긴 헬기 전면은 시야가 확 트였다. 떨어질까 겁나기보다는 가슴이 뻥 뚫렸고 조종간을 주면 나도 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순간에 헬기는 수직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발밑으로 커다란 그림이 펼쳐졌다. 나이아가라폭포가 땅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푸른 비단에 검은 띠를 두른 듯 길게 이어지던 강이 그쯤에서 크게 꽈리를 틀고 주저앉았다. 떨어지는 폭포가 하얀 이불 홑청을 둥글게 휘감아 던져놓았다. 쳐다만 보던 풍경을 쫘~악 내려다보니 옥황상제가 부럽지 않았다. 나도 나이아가라폭포 위를 날았으니 말이다.

  어둠이 깔릴 즈음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360도 빙빙 돌아가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다. 우리는 바닷가재 한 마리가 통째 얹힌 특제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야경을 보았다. 이곳은 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능력이 있어야 손님을 데려올 수 있다며 가이드가 생색을 냈다. 밥상머리에서도 바깥 풍경에 더 눈길을 빼앗겼다. 형형색색의 구름 사이로 폭포가 내려다보였다. 별이 주르륵 쏟아지다 구름에 걸려 은하수 강처럼 발아래로 흘렀다.

  나이아가라폭포는 계절마다 옷을 바꾸어 입는다 했다. 폭포 속으로 들어가는 터널 벽에 꽃이 만발하고 푸른 물결 넘실대는 봄, 여름 풍경과 또 곱게 물든 가을 단풍,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사진들이 걸렸다. 나는 터널을 걸어서 나이아가라의 사계절을 지나왔다. 위도가 서로 비슷해서인지 그곳의 자연변화도 우리나라와 닮은 것 같아 반가웠다.

  폭포에 얽힌 전설도 있었다. 예전에 마을에서 큰 재앙을 피하려고 해마다 강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물은 부족의 아가씨 중에서 제비뽑기로 정했다. 제물로 뽑힌 아가씨는 제사를 지낸 후 강물에 띄워 보냈다. 어느 해 추장의 딸이 뽑혔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물을 띄웠다. 배가 떠내려가자 지켜보던 추장은 딸의 손을 잡았고 부녀는 함께 폭포 속으로 사라졌다. 추장도 아비였지만 딸을 제물로 바치는 부모 마음은 다 몰랐으리라. 추장이 사라진 후 제물 바치는 일도 없어졌다. 강물은 그 사연을 들었는가 못 들었는가 묵묵히 흐르기만 했다.

  나는 폭포를 보며 자랐다. 고향 마을 뒷산에는 신기한 폭포가 있었다. 산자락을 타고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이리저리 비틀며 흐르는 폭포였다. 위에서 둥그런 입구만 보이고 안쪽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래 미로같이 비좁은 입구를 들어가면 오목하게 파인 구덩이가 층층이 자리했다. 비가 와야 폭포가 되었고 물이 흐르면 미꾸라지가 타고 올랐다. 그중에 가끔 물뱀도 섞여 있어 우리를 놀라자빠지게 했다. 비가 그치면 폭포는 사라지고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그곳을 물이 없어도 폭포라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들의 만만한 놀이터였다. 친구를 만나면 손잡고 가고 혼자 있기 심심해서 가면 누군가가 와 있었다. 방과 후 학교에서 곧장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1폭포 2폭포 3폭포라 부르며 친구들끼리 한 웅덩이씩 차지해 숙제도 하고 집에서 가져온 군것질거리도 나누어 먹었다.

어린 날의 폭포에 대면 나이아가라폭포는 엄청나게 웅장한 놀이터였다. 나는 그 놀이터에서 마음껏 즐겼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기에 거리낄 것 없이 온전히 폭포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다시 해가 떴다. 나이아가라폭포에서 나는 일몰과 월출에 다시 일출까지 오롯이 보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에서 눈을 감으니 물소리가 들렸다. 폭포가 계속 나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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