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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작가

골목길

작성자자윤김태선|작성시간24.02.29|조회수41 목록 댓글 0

                                                                       골목길

 

  모임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젊을 때 한 골목에 살던 사람들과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들 키우며 알뜰살뜰 살던 시절, 집집이 돌아가며 국수랑 수제비를 나눠 먹던 정이 이어져 대도동 골목계가 되었다. 이제 세월 따라 다들 그곳을 떠났지만 한자리에 모이면 예전 골목길로 돌아간 듯 반갑다. 코로나 사태로 못 만나다 모처럼 얼굴을 보기로 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한껏 올라갔는지 20,19,18, 빨간 숫자가 부지런히 깜박이며 내려와 11층 내 앞에 멈췄다. 문이 열리자 안에는 대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와 젊은 엄마가 타고 있었다. 몇 층 몇 호에 사는지는 몰라도 낯이 익었다. 내가 안녕, 하며 아는 체하자 앙증맞게 마스크를 낀 아이가 웃는 눈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어디 가는 냐, 머리핀이 이쁘다, 계속 말을 붙이는 사이 1층에 도착했다. 아이는 손을 흔들며 내리고 나는 차가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현대판 골목이다. 그곳을 통해 큰길로 나가고 그 안에서 한 통로 사는 이웃들과 마주친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촌의 움직이는 골목길이라 할 수 있다. 나처럼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승강기 없이는 외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계단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비상시가 아니면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엘리베이터는 형태와 분위기가 지상의 골목과는 다르다. 구불구불 조붓한 맨땅이 아니라 깔끔하고 단정한 직사각형 공간이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길은 조용하고 깔끔하지만 삭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도 대개 무표정하다. 인사는커녕 시선을 피하고 돌아서 버리기도 한다. 조용한 공간에 어색함이 흐른다. 젊은이들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요즘은 모두 마스크를 써서 복면 상태인데 단둘이 탄 낯선 아저씨가 눈을 부릅뜬 채 벽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내 어릴 적 골목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가장 가깝고 만만한 소통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왁자지껄 생기가 넘쳤다. 제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새벽의 골목을 깨웠다. 밤새 고인 첫 샘물을 뜨려는 어머니가 주로 그 주인공이었다. 물동이를 이고 어머니가 나가면 그 뒤를 쫓아가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내 잠마저 깨웠다.

  골목에는 맛이라는 인정이 있었다. 길은 좁고 형편은 넉넉지 않아도 사람들의 손은 크기만 했다. 무슨 별식이라도 하면 갈라먹기 위해 한 솥 가득 끓였다. 그 시절 인심이 훈훈하기도 했지만 나눠 먹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집들이 어깨를 바짝 붙이고 있어 음식을 하면 냄새로 먼저 알았다. 골목 가득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어찌 혼자 먹을 수 있었으랴. 덕분에 걸핏하면 소박한 잔치가 벌어졌다. 나도 몇 번 어머니를 따라나섰는데 늘 먹던 것도 골목에서는 유난히 맛이 있었다.

  나는 그 골목에서 기다림을 배웠다. 장날이면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다. 소꿉친구들이 불러도 혼자 사금파리 조각으로 흙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하루는 어머니가 내 운동화를 사 오신다며 시장에 가셨다. 나는 어머니가 사 오실 운동화와 꽃무늬 원피스를 그렸다. 그렸다 지우고 또 그리며 눈길은 큰길 쪽에 가 있었다. 저만치 사람이 나타나 점점 가까워지면 혹시 어머니인가 싶어 벌떡 일어났다. 기다리다 지칠 무렵 긴 그림자를 거느리고 어머니가 걸어왔다. 나는 장바구니부터 살폈다. 아침에 들고 나간 우리 닭이 그대로 있었다. 닭을 팔아 빨간 운동화를 사 온다 했는데, 어린 닭이 아까워서 그냥 왔단다. 운동화가 없어 섭섭했어도 닭이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떠오르는 골목이 또 있다. 내가 중3 때 자취를 하던 동네였다. 집 떠난 지 보름쯤 지났을까. 수업을 마치고 골목을 들어서는데 저쪽 모퉁이로 돌아나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얼핏 어머니 같았지만 농사일로 바쁜데 오실 리가 있나, 내가 너무 보고 싶어 헛봤겠지하며 대문을 들어섰다. 내 방문 앞에 참하게 매듭 묶은 보퉁이가 놓여있었다. 어머니였구나! 허둥지둥 나가 꺾어진 골목을 정신없이 달렸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집에 올 생각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더니 어머니도 한 달이 길었구나! 어둑어둑한 길을 울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그 골목에 찍힌 애틋한 발자욱이 하나 더 있다. 내 자취방과 비스듬히 마주 보는 집에 남학생이 드나들었다. 중학생 모자를 썼고 교복에 달린 숫자로 보아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등굣길에 자주 마주쳤다. 그가 앞설 때가 있고 내가 먼저 나서는 날도 있었다. 내가 앞서가는 날은 뒤가 신경 쓰여 발걸음이 꼬였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게 좋았다. 호젓한 오솔길을 함께 걷는 기분이랄까. 마음과는 달리 마주치는 게 부끄러워 대문 밖을 내다보며 그가 지나가길 기다리기도 했다. 어느 날, 무엇을 잊었는지 급히 되돌아오는 그와 딱 마주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는데 그가 스칠 듯이 휙 지나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귓볼이 빨갰다. 그 짧은 순간이 내 추억의 책갈피를 오래오래 물들였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골목길이 사라진다. 좁고 굽은 길을 닦아 그 길로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골목과 함께 오래된 마을도 사라지고 옛집들이 있던 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한다. 그나마 남은 길에도 아이들은 다 자라 떠났다. 키 작은 채송화 봉숭아와 그 꽃을 닮은 노인들이 골목을 지킨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 문 옆에 의자 하나를 내놓았다. 낡아서 버리려 했는데 정든 물건이라 그냥 두었더니 의외로 쓰임새가 있었다. 짐을 놓기도 하고 앉아 쉬기 편했다. 한번은 잠깐 쉬려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렸다.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그 안에 탄 사람들도 놀란 눈치였다. 같이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내게 한마디씩 건넸다. 의자가 있어 편하겠다는 둥, 고향 집 대문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둥. 침묵이 흐르던 곳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엘리베이터 안이 좀 훈훈해졌다. 꼬마들은 나와 마주치면 의자 할머니라며 반가워하고 눈인사를 하는 이웃도 늘었다. 내 인사말도 더 다정해졌다. 우리 통로 움직이는 골목길에도 웃음꽃 필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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