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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작가

시월 상달

작성자자윤김태선|작성시간24.02.2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시월 상달

 

  예전에 어머니는 시월을 상달이라 불렀다. 일 년 중에 이만한 달도 없다며 열두 달 내내 시월만 같았으면 했다. 나에게도 늘 상달을 맞이한 듯 살라 했다. 나는 시월이 뭐길래 저러나 하면서도 어렴풋이 풍성한 가을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시월이면 우리 집 마당은 탈곡한 나락으로 가득했다. 날씨가 청명해 가을 벼 타작은 낮에 이어 달빛 아래서도 계속되었다. 어둠이 가시기 무섭게 꼭두새벽부터 드릉드릉 탈곡기가 돌아갔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거둬들이는 시월 끝마무리가 중요하다며 어른들은 추수에 몰두했다. 평소에는 내가 반찬 투정을 하면 받아주었지만 이때만큼은 떼를 써도 건성건성 넘어갔다.

  시월에는 두 배로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어머니는 어슬렁대면 손에 쥔 것도 놓친다고 열심히 집 안팎을 드나들며 서리 내리기 전에 곡식을 거둬들였다. 누렇게 익은 벼와 따가운 시월 햇살에 탁탁 갈라지는 콩, 모기장을 둘러쓴 키 큰 수수도 새떼들이 몰려오기 전에 꺾어야 했다. 새 쫓는 일은 내 몫이었다. 새들은 땅에 떨어진 곡식이 지천이어도 장대를 휘두르는 내 곁에서 알랑대었다. 겁내며 도망가는 척하다 어느새 찢어진 모기장 사이로 수수알갱이를 파먹어 어머니께 지청구를 듣게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시월만 같아라.’ 흥얼대며 집안 여기저기 곡식을 갈무리하는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신줏단지에 햅쌀을 채우며 올 추수에 감사하고 내년 농사도 풍년 들게 해 달라 빌었다. 일벌레처럼 사는 게 뭐 그리 고마워하는지 철없는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들일이 끝날 무렵이면 어머니는 뒷산으로 추수를 하러 다녔다. 노랗게 익은 모과를 따다 꿀에 절이고 산감은 솔잎을 켜켜이 깔고 큰 독에 담아 홍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목이 기다란 호리병에 꽤양을 담고 시간 날 때마다 흔들었다. 그때마다 내캉니캉 살자중얼거렸는데 꽤양들이 잘 뒤섞이라는 주물이었다. 나는 그 말이 재미있어 노래처럼 따라 했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초가 되어 일 년 내내 우리 밥상에 올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도토리 줍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가을 추수였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어머니는 자주 신작로로 눈길을 주었다. 너희 고모 이모가 올 때가 됐는데 안 온다며 어디 아픈가 걱정했다. 금방이라도 언니! 나왔어하며 사립문을 밀고 들어올 것 같은지 일하는 어머니 손길에 흥이 났다. 박을 긁어 바가지를 만들고 뒤집은 솥뚜껑에 호박전도 부쳤다. 살구나무 아래는 어저께 쑨 도토리묵이 물 채운 고무통에 탱글탱글 담겼다.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시월이 좋았다. 산과 들로 나가면 여름내 풋 내음만 풍기던 열매들이 나 이제 익었노라 제빛깔과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산천에 있는 것은 주인이 따로 없다. 부지런한 사람이 임자다. 설익었을 때와는 달리 시월에는 무르익어 다 먹을 수 있었다. 빨강 구슬 같은 망개를 따 먹고 큰 밤나무 밑에 툭툭 떨어진 탐스러운 알밤을 주울 때는 저절로 신이 났다.

  풍성한 시월은 우리 인생으로 치면 완숙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자식들을 길러 다 출가시킨 지금 책임을 다한 듯 홀가분하다. 이제 더 바라지 말고 지금껏 여문 것만 거둬들이고 나누는 게 소중하다. 예전에 어머니가 시월 상달을 좋아했듯 나도 상달을 즐겁게 맞이하고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

나는 시월 상달에 추수하듯 그동안 써두었던 글들을 꺼내 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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