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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작가

황남빵

작성자자윤김태선|작성시간24.03.03|조회수19 목록 댓글 0

                                                            경주 황남빵

 

 

  신라문화제가 열리는 날, 경주 노서동 고분군에서 임금님 머리 깎는 날행사가 열렸다. 나는 동호회 회원들과 사진 찍으러 갔다. 왕릉 주변은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참석 신청을 받았다는데 바로 옆 포항에 사는 우리 팀은 전혀 몰랐다. 전날 저녁에야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많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거나 가족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성덕대왕종이 대형스크린에 비치고 댕댕댕 종소리가 문화제 시작을 알렸다. 외줄 타기 명인이 밧줄 위에서 아슬아슬 한 발씩 내딛다 휘청거리자 아이들이 놀라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 연날리기 활쏘기 등등 전통놀이체험 교실도 열렸다. 도로에는 애벌레 모양으로 만든 꼬마기차와 말이 끄는 꽃마차가 반월성 쪽으로 맴돌았다. 축제 분위기가 물씬 했다. 본부에서 가위와 장갑, 도시락을 지급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신청 안한 우리는 제외였다. 식당에 가려니 멀고 카메라가 무거워 움직이기 어려웠다. 총무가 간식을 사러 나섰다.

  총무는 한식경이나 지나서 빵 보따리를 안고 나타났다. 마트가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반가운 간판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학창시절 무척 좋아했어도 돈이 없어 남들이 먹는 걸 구경만 했던 황남빵, 멀리 사는 고향 형님을 만난 듯 반가운 빵이었다. 황남빵은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좋아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느라 늦었다 했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총무 덕택에 우리는 생각지도 않는 맛있는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처음에는 미처 김밥이라도 준비 못한 걸 후회했는데 나는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황남빵에 얽힌 추억이 떠올라 아련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 초원의 빛이여! 영원한 나의 첫사랑이여! 부드러운 그대 입술 같은 황남빵이여 /그대와 같이 먹던 첫사랑의 달콤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시가 저절로 나온다며 누군가가 한 소절 읊었다. ‘너만 첫사랑이 있나, 나도 그립다.’ 저마다 가슴에 묻혀있는 잊지 못할 사연들을 끌어내느라 시끌시끌했다. 동그랗고 앙증맞은 빵 복판에는 언약의 표시인 듯 빗살무늬 도장을 폭 찍어 놓았다. 빵은 노란 수술이 핀 한 송이 꽃 같았다. 겉껍질은 얇고 부드러운데 가무잡잡한 팥소는 고소하고 달콤했다. 정말 꽃잎인 듯 입안에 살살 녹았다.

  스무 살 시절 나는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다. 어머니는 일 년 이년 세월이 후딱 지나간다며 집에 자주 올 생각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 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학비를 보내주시는 어머니께 늘 미안했지만, 쉬는 날 텅 빈 기숙사에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었다. 어느 토요일 견디다 못해 집에 가려고 포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같은 과 남자애를 만났는데 그도 경주집에 가는 길이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경주였다. 터미널 옆 형산강 지류가 보이자 나무라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되돌아가야겠다고 대구행 버스를 타자 그는 당황하며 잠깐 기다리라 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그의 손에 웬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날 나는 황남빵을 처음 먹었다. 꽈배기나 붕어빵이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속이 꽉 찬 단팥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같이 등산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녔다. 과제물도 같이 했다. 대도시에서 쌓인 외로움이 작은 도시에서 온 우리 둘을 엮어주었다. 경주 순례를 하면서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황남빵을 우리가 돈 벌면 많이 사 먹자 했다. 그 친구 덕분에 집에 자주 가지 않아도 쓸쓸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뜸한 나를 보고 이제 학교생활에 적응한 것 같다며 안심하셨다.

  그와의 이별은 예고 없이 닥쳤다. 갑작스레 어머니가 쓰러져 수술을 받았다. 뇌졸중이었다. 어머니가 나으면 연락하리라 했지만 회복은 더디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친구가 군에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난 남은 한 학년을 끝내 채우지 못했다. 남은 학기는 맺지 못한 사랑처럼 늘 내 가슴에 응어리져 남았다. 훗날 오십이 넘어 학점은행에서 남은 학년을 마무리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아직도 허전하다.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왕릉 주위를 빙 둘러섰다. 나도 그 팀에 끼어 섰다. 그 시절 그 친구가 추억 속에서 걸어 나와 내 옆에 섰다. 두 번째 종이 울리자 모두 임금님 만세를 부르며 가위로 잔디를 깎았다. ‘임금님 이발하시니 시원하시죠? 저는 그리운 친구와 함께해서 즐겁습니다’. 나는 남은 황남빵, 추억 하나를 마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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