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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작가

쉽게 떠나는 포항물회 맛기행

작성자자윤김태선|작성시간24.03.03|조회수25 목록 댓글 0

                                               쉽게 떠나는 포항물회 맛기행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본다. 마무리 멋부림으로 스카프를 두르고 집을 나선다. 맛기행을 떠나는 길이다. 누가 봐도 타 도시에서 여행 온 것처럼 보이게 차림새를 갖춘다. 준비하는 품새로 봐서는 멀리 며칠 떠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까운 죽도시장으로 간다. 나는 오늘 내가 좋아하는 포항물회를 먹을 참이다.

  내가 가는 횟집은 전망이 좋다. 포항이라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상상하는데 그렇지 않다. 굳이 바다를 보겠다면 이삼 층으로 가면 된다. 일 층에 앉은 내 앞에는 포항 죽도어시장 전경이 펼쳐진다. 활기차게 걷고 뛰고 웃고 떠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 화가가 그린 대작을 보는 것 같다. 기다란 수족관에 횟감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대게도 몇 마리 깔려있다. 전복과 고동은 수족관이 바다의 미역돌인 양 유리에 착 달라붙었다. 그것들은 내가 유리벽 뒤에서 저들 속살을 보는 줄 모를 것이다. 고무 반티에는 해삼 멍게 개불이 꿈틀대며 놀다 널브러져 쉬기도 한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생동감이 넘친다.

  시장 식당은 손님 혼자 와도 반긴다. 내가 혼자라고 검지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인다. 주인이 다섯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들어오란 말이다. 이 정도면 어판장 수신호 수준이다.

  식당 안에 감도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우선 반갑다. 뒤이어 따라 나오는 물회는 더 반갑다. 그 맛이 일품이다. 쫀득쫀득 싱싱한 생선 살에다 새콤달콤매콤한 양념을 넣는다. 그 위에 살얼음이 동동 뜨는 국물을 부어 먹으면 속이 시원하다. 마치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다. 초간장에 비벼주는 국수는 보들보들한 해파리냉채를 먹는 것 같다. 생선 한 마리에(머리와 뼈) 무를 넣고 바글바글 끓인 매운탕은 밥 두어 공기쯤은 후딱 해치우게 한다. 이만하면 용왕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지방 탄수화물 섭취는 거의 없고 생선 한 마리를 통째 먹었으니 단백질 칼슘 미네랄 무기질까지 풍부한 건강밥상이다.

  물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배는 적당히 부르고 기분이 굉장히 좋다. 허했던 몸과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주머니가 얇아도, 식성 맞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 즐길 수 있는 건 죽도시장 포항물회니까 가능하다. 북적이는 사람 사이를 헤치고 나가면 혼자라는 외로움도 잊어버린다. 그 맛과 그 기분이 흐뭇해져서 집으로 간다. 자주 찾는 나만의 물회 맛기행이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물회는 최고급이면서도 참 만들기 간편한 음식이었다.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았지만, 우리 집은 농사를 지었다. 바쁜 모심기가 끝나고 일손이 빌 때면 동네 아저씨들이 바닷가 마을로 일을 나갔다. 주로 고기 그물을 털어주거나 그물 깁기를 도와주고 해녀들이 잘라온 미역을 운반해주는 거였다. 그들이 돌아올 때는 품삯으로 생선이나 미역귀를 받아왔다. 어머니는 그것을 우리 집에 가져와 돈이나 곡식으로 바꾸어가라고 미리 당부를 해두었다.

  생선이 도착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물회 만들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큰 반티에다 오이 미나리 쪽파 고추 갖은 채소를 잘게 채 썰어 담고 나지막한 항아리에다 식초 고추장 마늘 등을 넣어 물회양념을 만들었다. 국수도 한 채반 넉넉하게 삶았다. 냉장고나 얼음이 없던 그때는 깊은 우물물이 최고로 시원했다. 양념 항아리는 수십 길 아래서 올라온 시원한 우물물을 수없이 뒤집어 섰다. 생선은 포를 뜨는 게 아니라 뼈째 썰어서 채소와 함께 양념을 골고루 버무렸다. 조금 후에 물을 붓고 다시 간을 맞추었다. 먹을 사람이 더 오면 채소와 국물만 추가하면 됐다. 한 대접씩 인심 좋게 듬뿍 떠도 국물과 채소는 넉넉했다. 회를 다 먹으면 남은 국물에는 국수를 말았다. 이렇게 먹고 나면 원기가 돋고 그 근기로 있어 한 해 여름은 그냥 간다 했다. 나는 맛 좋고 푸짐한 새참을 잊을 수 없다.

  동해안은 물이 맑고 깨끗해 모든 생선이 횟감이었다. 신선도에 따라 물회가 되는가 생선국이 되는가 결정되었다. 우리 집은 주로 물회를 만들어 일할 때 새참으로 내갔다. 동이 트기 전 숲실 뱃머리에 가서 생선을 사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모여 농사일을 할 때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특별식이었다. 어머니는 음식의 기본은 간 맞추기이고 집안의 간장 된장 고추장 맛이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했다. 부엌일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어머니 손맛을 전수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먹는 것에는 빠지지 않았다. 내가 물회를 좋아하는 것은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서이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고 배도 크게 부르지 않는 포항물회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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