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미용사/김태선
“바로 서 봐. 이쪽 좀 더 자르자” 안돼, 이만하면 됐어요.괜히 이쪽저쪽 맞지 않는다고 자꾸 자르면 딸랑해질까 걱정이다. 그만하자고 해도 자꾸 가위를 들이댄다.
남편은 두어 달에 한 번은 내 머리를 잘라 주겠다고 가위를 들고 나선다. 어설픈 가위질 솜씨인데도 마치 자기 사명처럼 부지런을 떨고 나는 못 이기는 척 그 앞에 앉는다. 머리를 다듬어 주겠다는 건 애정의 표현이고 머리를 맡기는 건 내 믿음의 몸짓이다.
부부 사이를 각별하게 이어주는 것은 돈도 아니고 숙련된 솜씨도 아닌 것 같다. 지켜주려는 마음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젊은 날 돈을 번다는 핑계로 같이 있을 시간도 없었고 또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아 티격태격할 때가 많았다, 따로 노는 게 시간과 체력 낭비가 적어 효과적이라고 물과 기름처럼 살았다.
남편에게 머리 자르기를 맡기게 된 것은 내가 허리 수술을 한 후였다. 보름 가까운 입원 생활에서 가지런하던 머리카락이 들쭉날쭉해져 신경을 건드렸다. 푸석하고 제멋대로 뒤집힌 머리 모습이 수술 통증과 함께 스트레스를 줬다. 내 이중고를 지켜보면서 그걸 못 참나? 하던 남편이 해결책으로 가위를 사왔다.
입원실 샤워장에 미장원이 차려졌다. 처음에는 어설픈 가위질이 겁났지만 당분간 외출도 없을 것 같아 눈을 꾹 감고 참았다. 잠시 후 가뿐하게 정리된 단발의 내가 거울 속에 보였다. 생각보다 괜찮다. 병실 여기저기서도 속이 후련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남편의 어깨가 올라갔다.
나는 평소에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아까워하며 소중히 여겼다. 잡아당기거나 뜨거운 바람을 쬐는 미용사의 손길은 싫었고 낯선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싫었다. 이사를 해도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잘 아는 미용사에게만 맡기려고 오랫동안 원정 다녔다. 최근 들어 탈모가 생겨 가르마 부분이 훤해졌는데 그 부분에다 까만 문신을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아킬레스건이었다.
남편은 문신도 내 몸 일부로 여겨주었다. 내 자존심을 살려주겠다는 처사였다. 아이들 키울 때는 으르릉거리고 살았는데 수술 후에는 다정해졌다. 마치 어릴 적 유치를 뽑지 않으면 뻐드렁니가 날까 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가 다시 돌아온 듯했다.
요즘은 가끔 머릿결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다. 비결은 단 한 가지, 생머리를 하고 모자를 쓰지 않는 거다. 인위적인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머리를 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열을 잘 배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마음에 열도 식혀준다. 머리숱 많고 화려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남편 덕이다.
이제 내가 가장 선호하는 미용사는 남편이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 때 가위만 가져다주면 된다. 파마를 왜 안 하느냐? 결을 좋게 하는 영양제가 있다, 머리 나는 약이 있다 등 내가 싫어하는 권유도 하지 않는다. 되려 냄새나는 머리보다 비누 향이 좋다며 칭찬도 해주어서 위안이 된다
마음을 붙잡는 것은 지켜주려는 정성이다. 가위질은 서툴러도 그 손길에는 나를 아끼는 마음과 사랑이 담겨 있다. 나의 머리 자르기는 서로 주고받는 사랑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