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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포럼 43기

한날한시에 / 우남희(4)

작성자우남희|작성시간26.06.20|조회수32 목록 댓글 1

한날한시에 / 우남희

1) 제삿밥을 먹는다. 나물을 넣고 비빈 커다란 양푼을 가운데 놓고 여섯 명이 먹는다. 여섯 명이 앉기엔 비좁은 평상이지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2) 앞집 민아 형님은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라 귀찮을 법도 하련만 제삿밥을 비벼 골목 네거리에 있는 평상으로 가져왔다. 말이 제삿밥이지 산채비빔밥과 다름없다. 형님은 “알다시피 바쁜 철이 지나고 조금 한가해 나물을 넉넉하게 했다.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누어 먹고 싶어서”라고 말끝을 흐린다.

3) 먹더라도 누구 제사인지 알고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 시할아버지 제사라고 하더니 이내 조상들을 한날한시에 모신 날이라고 했다. 시할머니 두 분에 시부모님, 설과 추석 명절까지 7번 지내왔는데 코로나 때부터 시할아버지 제삿날에 한목 지낸다고 했다.

4) 우리 마을의 주요 농산물은 수박이다.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는 부지깽이 일손도 빌려야 할 만큼 바쁜 농사철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도 얼마나 바쁜지 잘 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시할머니 두 분과 시부모 제사에 설 명절까지 있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5) 누군가는 말한다. 제사는 찬물 한 그릇 떠 놓고 지내더라도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간소하게 차리고 정성을 다했다고 하면 믿을까. 물론 믿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사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나부터도 차려진 상을 보고 정성이 있고 없고를 판단한다. 그러니 말이 간단하게 하라고 하지만 며느리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형편이다.

6) 나는 둘째 아들인 아버님의 맏며느리다. 장남인 큰아버님 슬하에 시숙이 세 명이나 있다. 그들이 지내야 할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를 어머님이 지냈고, 며느리인 내가 물려받아 30년 이상을 지내고 있다. 명절까지 다섯 번의 제사에서 어머님의 제사까지 더해 일 년에 여섯 번을 지낸다. 설 명절은 조상들에게 새해가 되었다고 알리는 문안 인사이고, 추석은 농사를 잘 지었다고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있다. 다과를 차려도 되지만 옛날부터 제사상과 똑같이 음식을 차렸으니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7) 어머님은 살아계셨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날한시에 모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때마다 남편은 ‘노’ 했다. 장 보고 음식 만들고 상 차리고 뒷정리까지 하는 사람이 나인데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차려진 상에 절만 하는 절맨인 사람이 ‘노’라고 하니 서운했다.

8)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열 번째의 추석을 맞은 2년 전, 큰아이가 선언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을 테니 알아서 정리하라고. 장손이 안 받겠다는데 무슨 수로 물려준단 말인가. 나도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한날한시에 모시라고 할 때도 ‘노’한 남편이었는데 아들이 안 받겠다니 생각이 복잡해진 것 같았다. 말수가 적은 남편이 더 말이 없었다.

9) 내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우리 세대까지만 지내고 나머지는 결정되는 대로 따르겠으니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라고 했다. 시동생은 아버님 제사에 맞춰 한날한시에 모시자고 하고, 동서는 우리 세대까지만 지낼 거면 바꾸지 말고 지내오던 것처럼 그대로 다 지내자고 했다. 부부라도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남편은 두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궁금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머님도 뵌 적 없다니까 당연히 아닐 테고, 아버님 또한 남편이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으니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같이 산 날이 가장 많은 어머님 제삿날이 아닐까 추측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남편이 단답식으로 짧게 말했다. 명절. 명절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알았다. 왜 명절을 택했는지를.

10) 시동생은 2시간 거리의 경남 지역에 산다. 아버님 제사나 어머님 제사가 있는 날이면 퇴근하고 저 혼자 밤길을 달려온다. 남편은 지금까지 “운전 조심하고 다음에 보자”라든가 그냥 “잘 가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 한 적 없다. 비단 시동생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그러나 그는 밤길을 운전하는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또 두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자주 없어 명절 때만큼은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있었다. 남편의 선택은 당연했다. 시동생과 동서는 남편이 왜 명절을 택했는지 그 속 깊은 마음을 알까.

11) 아버님 제사는 섣달이다. 아버님 제사까지만 지내고 새해부터 정해진 대로 하기로 했다. 이 사실을 형제들과 함께하는 단체 톡에 올리니 막내 시누이가 먼저 댓글을 올렸다. 명절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누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단 말인가. 정답은 없다. 단체 톡에 올린 건 알고 있으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을 뿐이지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생각을 구구절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서운해서 그런다는 걸 알지만 시누이들은 친정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발언권이 없는 출가외인이었다.

12) 남편이 내린 결정으로 결국, 모든 제사를 없애고 한날한시인 명절에 지내고 있다. 어머님 기일 때 가까이 사는 막내 시누이와 삼촌에게 잘 지내느냐고 안부 전화했다. 삼촌도 남편처럼 무뚝뚝해 자분자분 말을 하지 않지만 어머님 기일이라 전화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은데,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서운해하던 시누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서야 “언니야, 전화한 그 날이 엄마 제삿날이었지, 그래서 생각나 전화한 거지? 나도 깜빡했다.” 한다.

13) 시대가 바뀌면서 제례 문화도 바뀌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무슨 수로 거스른다는 말인가. 민아 형님네나 우리처럼 조상들을 한날한시에 모시기도 하고, 산소에 가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하고, 종교단체에 이름을 올리는 가정도 있다. 전통이라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서운하기는 하다.

14) 어느새 양푼에 담은 비빔밥이 바닥을 보인다. 배가 불러도 디저트인 수박에 손이 간다. 형님이 땀으로 키운 수박의 붉은빛이 먹기도 전에 온몸으로 퍼진다. 내 안에 노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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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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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영옥 | 작성시간 26.06.23
    30년 넘게 며느리로서 짊어져 온 제사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요?
    그것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정리해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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