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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포 26기

그 새벽의 사건/ 김선애 4

작성자김선애|작성시간26.06.06|조회수30 목록 댓글 0

그 새벽의 사건

 

김 선 애

 

1. 그날은 새벽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식물탐사를 가기 위해 집합 장소로 가던 중에 일어났던 일이다. 평소에는 새벽에 모이는 날이면 택시를 호출해서 가곤 했다. 그런데 웬일로 남편이 태워다 주겠다고 나섰다.

2.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주로 낮에만 다니던 길이 오늘따라 약간 서늘하게 느껴져서 옷깃을 여미게 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풍경은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의 끈을 풀고 여유 있게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도로에는 우리와 목적지가 같은지 우리 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고 있는 차가 있었다. 저 차도 일찍 나서야 하는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3.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를 때였다. 로터리를 지난 후 직진을 하면 되는데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서 일이 터져버렸다. 우리 차 뒤에 따라오던 그 차가 오른쪽 옆으로 붙으면서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두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창문을 내려서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그 차의 운전자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욕을 했다. 우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를 하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우리 차를 계속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안 되겠는지 차를 세우고 내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남자는 화가 안 풀렸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삿대질을 했다. 거듭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4. 이제는 해결됐거니 하고 출발했는데 그 차는 모이는 장소까지도 따라와서 하는 말이 뺑소니로 신고하겠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차량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뭐가 뺑소니냐고 따지니까 우리 때문에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란다. 지독하게 집요한 사람이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남편도 기가 막힌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가 빌미를 제공했으니 꾹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다.

5. 생각해 보니 운전을 하다보면 갑자기 차선을 바꾸거나 끼어들기를 하는 차 때문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가끔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혼자 욕을 하면서 화를 풀곤 한다. 아마 그 사람은 화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사람인 것 같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공격을 해서 본인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일까? 아니면 현대인이 겪고 있는 신경질적인 불안을 표출해야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일까? 아마도 새벽에 부부 싸움을 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6. 그 차가 가고 난 뒤에 남편에게 그냥 직진하면 되는데 왜 그랬냐고 물었다. 모이는 장소가 직진보다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꼿꼿한 남편 성격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는데도 욕만 잔뜩 들어 먹었으니, 자존심이 심하게 구겨진 것 같았다. 모처럼 태워줬는데 기분 나빠 할까 봐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7.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고 회원들이 모이자, 탐사 장소로 출발을 했다. 회원들에게 금방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그건 뺑소니라고 볼 수 없다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회원들은 안 들은 것으로 하고 귀를 씻으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탐사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다. 아무 연락이 없으니 걱정 말고 하던 일이나 하라고 했다.

8. 23일 동안 탐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기분이 가라앉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그 사람이 뺑소니라고 엄포를 놓은 이유를 물어봤다. 아마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돈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화도 풀고 돈도 받으려고 끝까지 쫓아 왔지만 통하지 않자 육두문자만 잔뜩 늘어놓고 가버린 것으로 생각하자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적인 잣대와 인간적인 도리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낀 사건인 셈이다.

9.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 로터리를 지나가다 보면 그때의 사건으로 그 남자가 생각이 나곤 한다. 그 사람은 아마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본인은 운전을 하면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에 본인이 원인 제공자라면 어떻게 처신을 할지도 궁금하다.

10.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새벽의 사건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도로는 갑작스러운 핸들 꺾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직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방향을 틀게 된다. 방심하지 말고 늘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조심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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