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김인옥
1. 외숙모님이 돌아가셨다. 향년 90세. 외사촌 동생이 아침에 들렀더니, 아직 몸이 따뜻하더라고 했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시더니 뜻대로 되셨다. 슬프다는 감정보다 다행이라는 느낌이 더 컸다. 워낙 꼿꼿한 성격이라 며느리 수발을 받을 턱이 없는 분인데, 저승 노자 치르느라 오래 앓아누웠더라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남편 복이 그리도 없더니 다행히 가시는 복은 타고나셨다.
2. 외숙모님은 무릎이 시원찮아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을 뿐, 눈 감기 직전까지 정신도 맑고 지병도 없었다. 딸이 가까이 살아서 가끔 반찬을 해 나르고 집안일을 보살펴 드렸을 뿐, 숙식을 끝까지 손수 해결하셨다.
3. 외삼촌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교육을 받고도 입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노동판에도 끼어들지 못해 자포자기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낸 위인이었다. 이질인 나에게는 그럴 수 없이 다정하고 재미있는 분이셨지만, 외숙모에게는 원수 같은 남편이었다. 그 덕에 숙모님은 지난한 세월을 사셨다. 그럼에도 올해 들어 부쩍 딸에게 “너희 아버지가 날 데리러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셨다니, 부부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살붙이고 살아온 세월이 무서운 것일까, 홀로 산 수십 년 세월이 외로웠던 걸까. 부디 평안하시라고 인사드리고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4. 외숙모님보다 더 가벼운 죽음을 친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아파트 노인정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1일 관광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 노인이 우쭐우쭐 즐겁게 노시더니, 귀가길에서도 마이크를 놓을 줄 모르시더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몇 곡을 열창하신 후 시원한 물을 찾았다. 한 일행이 물을 한 잔 따라주니,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아, 시원하다.”한 마디 하시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5. 같이 간 일행들이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웠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의 오판이었다. 꽃 속에 둘러싸여 신나게 놀다가 가셨으니 축복받은 죽음이라며 입을 모았다. 몸져 눞지도 않고 자식 고생도 안 시켰으니, 복된 죽음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덕을 많이 쌓은 모양이라며 하나같이 그 노인을 부러워하더란다.
6. 연세 높으신 분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사후세계가 아니라 죽는 과정이라는 것에 적이 놀랐다. 죽음 앞에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 문제가 더 깊은 관심사였다. 하기야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오랜 병석에서 고통 속에 견뎌야 한다면, 죽어가는 부모나 간호하는 자식이나 지치기 마련이다. 힘들어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는 이중 고통을 겪어야 하고, 자식은 자식 대로 삶이 무너지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것이다. 급기야 서로의 마음이 멀어지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글픈 이별이 될까. 그런 의미에서는 관광버스에서 생을 마감한 노인도 저승 가는 복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7. 나의 부모님 세대는 모두 이승을 하직하시고, 생존해 계신 분은 여든이 넘은 막내 이모님 한 분뿐이다. 이제 우리 자식 세대 차례가 되었다. 생명의 유한함을 모르는 척 눈 감고 살 뿐이지, 손을 꼽아 보면 나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세상과 작별하기 싫으니 어쩌나. 특히 온 대지가 생명으로 가득하고, 연둣빛 신록이 찬란하게 피어날 때면 몇 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지 않은가.
8. 병석에 질기게 누워 자식들 진을 빼고 싶지 않지만, 저 노인 같은 느닷없는 죽음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생명을 거두어 가기 전 한 열흘만 말미를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 떠나기 전 보고 싶은 얼굴 만나보고, 금전 빚, 마음 빚 청산하고, 실타래처럼 엉긴 감정 다 풀고 ‘사랑한다’, ‘고마웠다’, 인사 나눈 다음 눈감을 수 있다면 좋겠다.
9. 그러나 언제 내 앞에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정신 온전하게 살아있을 때 맺을 건 맺고 풀 것은 푼 다음, 더 이상은 악업을 짓지 말고 조심조심 살아야 한다.
10. 밤공기가 서늘하게 뺨을 스친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영혼이 반가운 해후를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