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IS MY LIFE
언양에세이포럼
26기-13차시
일시: 2026년 6월 9일 (화) 3시00분
목록
|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 1 | 그 새벽의 사건 | 김선애 | 4 | 김연희 |
| 2 | 가는 길 | 김인옥 | 4 | 박동조 |
| 3 | 금정산 산행 | 조영정 | 8 | 박정애 |
| 4 | 여름과 가을 사이/ 박희자 6 | 박희자 | 6 | 예수백 |
| 5 |
합평순서/권춘애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박동조 박정애
박희자 예수백 이경자 이상순 이혜경 조영정
1. 그 새벽의 사건/김선애4
1. 그날은 새벽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식물탐사를 가기 위해 집합 장소로 가던 중에 일어났던 일이다. 평소에는 새벽에 모이는 날이면 택시를 호출해서 가곤 했다. 그런데 웬일로 남편이 태워다 주겠다고 나섰다.
2.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주로 낮에만 다니던 길이 오늘따라 약간 서늘하게 느껴져서 옷깃을 여미게 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풍경은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의 끈을 풀고 여유 있게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도로에는 우리와 목적지가 같은지 우리 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고 있는 차가 있었다. 저 차도 일찍 나서야 하는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3.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를 때였다. 로터리를 지난 후 직진을 하면 되는데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서 일이 터져버렸다. 우리 차 뒤에 따라오던 그 차가 오른쪽 옆으로 붙으면서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두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창문을 내려서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그 차의 운전자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욕을 했다. 우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를 하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며 우리 차를 계속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안 되겠는지 차를 세우고 내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남자는 화가 안 풀렸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삿대질을 했다. 거듭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4. 이제는 해결됐거니 하고 출발했는데 그 차는 모이는 장소까지도 따라와서 하는 말이 ‘뺑소니로 신고하겠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차량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뭐가 뺑소니냐고 따지니까 우리 때문에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란다. 지독하게 집요한 사람이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남편도 기가 막힌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가 빌미를 제공했으니 꾹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다.
5. 생각해 보니 운전을 하다보면 갑자기 차선을 바꾸거나 끼어들기를 하는 차 때문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가끔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혼자 욕을 하면서 화를 풀곤 한다. 아마 그 사람은 화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사람인 것 같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공격을 해서 본인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일까? 아니면 현대인이 겪고 있는 신경질적인 불안을 표출해야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일까? 아마도 새벽에 부부 싸움을 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6. 그 차가 가고 난 뒤에 남편에게 그냥 직진하면 되는데 왜 그랬냐고 물었다. 모이는 장소가 직진보다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꼿꼿한 남편 성격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는데도 욕만 잔뜩 들어 먹었으니, 자존심이 심하게 구겨진 것 같았다. 모처럼 태워줬는데 기분 나빠 할까 봐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7.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고 회원들이 모이자, 탐사 장소로 출발을 했다. 회원들에게 금방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그건 뺑소니라고 볼 수 없다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회원들은 안 들은 것으로 하고 귀를 씻으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서 집중이 되질 않았다. 탐사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다. 아무 연락이 없으니 걱정 말고 하던 일이나 하라고 했다.
8. 2박 3일 동안 탐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기분이 가라앉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그 사람이 뺑소니라고 엄포를 놓은 이유를 물어봤다. 아마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돈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화도 풀고 돈도 받으려고 끝까지 쫓아 왔지만 통하지 않자 육두문자만 잔뜩 늘어놓고 가버린 것으로 생각하자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적인 잣대와 인간적인 도리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낀 사건인 셈이다.
9. 며칠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 로터리를 지나가다 보면 그때의 사건으로 그 남자가 생각이 나곤 한다. 그 사람은 아마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본인은 운전을 하면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에 본인이 원인 제공자라면 어떻게 처신을 할지도 궁금하다.
10.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새벽의 사건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도로는 갑작스러운 핸들 꺾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직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방향을 틀게 된다. 방심하지 말고 늘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조심 살아가야겠다.
2. 가는 길/김인옥4
1. 외숙모님이 돌아가셨다. 향년 90세. 외사촌 동생이 아침에 들렀더니, 아직 몸이 따뜻하더라고 했다. ‘자는 잠에 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시더니 뜻대로 되셨다. 슬프다는 감정보다 다행이라는 느낌이 더 컸다. 워낙 꼿꼿한 성격이라 며느리 수발을 받을 턱이 없는 분인데, 저승 노자 치르느라 오래 앓아누웠더라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남편 복이 그리도 없더니 다행히 가시는 복은 타고나셨다.
2. 외숙모님은 무릎이 시원찮아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을 뿐, 눈 감기 직전까지 정신도 맑고 지병도 없었다. 딸이 가까이 살아서 가끔 반찬을 해 나르고 집안일을 보살펴 드렸을 뿐, 숙식을 끝까지 손수 해결하셨다.
3. 외삼촌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교육을 받고도 입신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노동판에도 끼어들지 못해 자포자기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낸 위인이었다. 이질인 나에게는 그럴 수 없이 다정하고 재미있는 분이셨지만, 외숙모에게는 원수 같은 남편이었다. 그 덕에 숙모님은 지난한 세월을 사셨다. 그럼에도 올해 들어 부쩍 딸에게 “너희 아버지가 날 데리러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셨다니, 부부관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살붙이고 살아온 세월이 무서운 것일까, 홀로 산 수십 년 세월이 외로웠던 걸까. 부디 평안하시라고 인사드리고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4. 외숙모님보다 더 가벼운 죽음을 친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아파트 노인정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1일 관광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 노인이 우쭐우쭐 즐겁게 노시더니, 귀가길에서도 마이크를 놓을 줄 모르시더란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몇 곡을 열창하신 후 시원한 물을 찾았다. 한 일행이 물을 한 잔 따라주니,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아, 시원하다.”한 마디 하시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5. 같이 간 일행들이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웠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의 오판이었다. 꽃 속에 둘러싸여 신나게 놀다가 가셨으니 축복받은 죽음이라며 입을 모았다. 몸져 눞지도 않고 자식 고생도 안 시켰으니, 복된 죽음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덕을 많이 쌓은 모양이라며 하나같이 그 노인을 부러워하더란다.
6. 연세 높으신 분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사후세계가 아니라 죽는 과정이라는 것에 적이 놀랐다. 죽음 앞에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 문제가 더 깊은 관심사였다. 하기야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오랜 병석에서 고통 속에 견뎌야 한다면, 죽어가는 부모나 간호하는 자식이나 지치기 마련이다. 힘들어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는 이중 고통을 겪어야 하고, 자식은 자식 대로 삶이 무너지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것이다. 급기야 서로의 마음이 멀어지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글픈 이별이 될까. 그런 의미에서는 관광버스에서 생을 마감한 노인도 저승 가는 복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7. 나의 부모님 세대는 모두 이승을 하직하시고, 생존해 계신 분은 여든이 넘은 막내 이모님 한 분뿐이다. 이제 우리 자식 세대 차례가 되었다. 생명의 유한함을 모르는 척 눈 감고 살 뿐이지, 손을 꼽아 보면 나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세상과 작별하기 싫으니 어쩌나. 특히 온 대지가 생명으로 가득하고, 연둣빛 신록이 찬란하게 피어날 때면 몇 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지 않은가.
8. 병석에 질기게 누워 자식들 진을 빼고 싶지 않지만, 저 노인 같은 느닷없는 죽음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생명을 거두어 가기 전 한 열흘만 말미를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 떠나기 전 보고 싶은 얼굴 만나보고, 금전 빚, 마음 빚 청산하고, 실타래처럼 엉긴 감정 다 풀고 ‘사랑한다’, ‘고마웠다’, 인사 나눈 다음 눈감을 수 있다면 좋겠다.
9. 그러나 언제 내 앞에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정신 온전하게 살아있을 때 맺을 건 맺고 풀 것은 푼 다음, 더 이상은 악업을 짓지 말고 조심조심 살아야 한다.
10. 밤공기가 서늘하게 뺨을 스친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영혼이 반가운 해후를 했으면 좋겠다.
3. 금정산 산행/조영정8
1. 천년의 역사를 품은 범어사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역사의 향기를 오늘도 깊이 느껴보고 싶다. 금정산의 맑은 기운을 가득 들어마시며, 자연이 선사하는 신선한 에너지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채우기 위해 산행을 시작한다.
2.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꼽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기 때문에 산 이름이 금정산(金井山)이 되었고, 그곳에 세워진 절이 범어사(梵魚寺)라고 기록되어 있다.
3. 범어사 입구에서 맨 먼저 일주문을 만난다. 가람 진입로의 첫 번째 문으로 ‘산문’이라고 하며, 기둥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지붕을 받치므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의 일주문은 자연 암반 위에 둥글고 긴 돌기둥 네 개를 세워 세 칸을 이루고 있다.
4. 경내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고즈넉하다. 일상에서 벗어난 불심의 세계에 들어와 마음도 한결 맑아진다. 범어사를 오른편에 두고 금정산성 북문으로 향한다. 범어천을 따라 오르니, 바윗돌 아래를 어루만지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청아하다. 자연 속에서 듣는 이 아름다운 멜로디는 귀를 즐겁게 하고 힐링을 준다.
5. 북문으로 가는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위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른바 ‘돌바다(암괴류)’다. 바위는 물리적·화학적 작용으로 절리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얼고 녹는 과정을 거치면서 깨진 후. 중력에 의해 흘러내려 지금의 돌바다를 형성했다. 이 돌바다 밑으로는 물이 흘러 범어천을 이루고 있다.
6. 바위길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돌이 많고 가파른 구간도 있어 숨이 차다. 예전에 이 길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길이 무던하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했을 뿐, 다음에 등반하더라도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힘겹다. 일주일 전 감기 몸살로 고생한 후유증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7. 중년 여성이 애완견 두 마리와 함께 오르고 있다. 개들은 헐떡이며 뛰어오르다가, 주인이 부르면 금세 내려온다. 힘들 법도 한데 숲속의 새로운 분위기 덕분인지 무척 즐거워 보인다. 활기찬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힘이 솟는다.
8. 조선 후기에 세워진 북문에 도착한다. 성문 위에는 팔작지붕을 얹은 단층 문루(門樓)가 우뚝 서 있다. 적이 침략했을 때, 지휘관이 이 문루에서 전투를 이끄는 모습이 떠오른다.
9. 금정산성은 주변의 산세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1만 7천여 미터에 이르며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이 있다. 성벽은 이곳에 많은 화강암 중 적정 크기의 자연석과 네모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지형에 맞추어 쌓여있다.
10. 북문에서 바라본 고당봉의 바위산은 멀리 아득하다. 산림 감시원은 고당봉까지 왕복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등산로 양옆에는 진달래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꽃이 만개하면 등산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 약수터에서 맑고 시원한 자연수를 마시니 갈증이 해소되고 몸에 활력이 돈다.
11.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 정상에 섰다. 낙동강 줄기가 한눈에 차고, 북문과 부산 시가지도 눈에 들어온다. 김해시와 양산시 일대가 점점이 아득히 멀어진다.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을 감싸 포근하고, 맑은 하늘은 짙푸른 빛으로 시야에 가득하다.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단단한 바위의 기운이 온몸에 전해져 온다.
12 산을 오르는 여정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 들숨 날숨을 반복하며 산을 오르다 보면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숨이 차고 힘들다. 산길은 험하고 가파른 구간도 있고 지형에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오직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 하나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을 극복한 성취감은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결실을 볼때 느끼는 감동과 다름없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힘들 때도 많지만,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최선을 다해 길을 찾아 나가게 된다.
13. 금정산성 마을의 식당가 음식점에 들어간다. 파전과 흑염소 불고기, 풍성한 밑반찬과 향토주인 산성 막걸리가 상에 오른다. 좋은 누룩과 금정산의 청정한 물로 빚은 막걸리는 맛이 뛰어나다. 지금은 공동 양조장에서 빚어 마을 안에서만 소비되고 있다니 안타깝다. 산성 막걸리는 시중 막걸리와 달리 향토적인 맛을 풍긴다. 술을 몇 잔 나누고 나니 산행 후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
14. 새로운 도전과 즐거움을 선사할 또 다른 등반할 산을 찾는다.
4. 여름과 가을 사이/ 박희자 6
1. 공원 벤치에 앉았다; 푸르름으로 더위를 식혀주던 나무가 어느새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속절없이 염록소를 빼앗겼다. 빛바랜 나무를 보는데 한 여인의 모습이 겹친다.
2. 잠결에 인터폰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가 새벽 3시를 알리고 있었다. 한밤중에 무슨 일일까 놀라 옷을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긴장하며 인터폰에 귀기울였지만 더는 울리지 않았다.
3. 1층인 우리 집 문은 엘리베이터와 나란히 있다. 누군가 잘못 눌렀거나 아니면 잠결에 내가 잘못 들었거니 생각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데 다시 벨이 울렸다.
4. 두려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세요. 무슨 일이세요?'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6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잠옷 차림으로 영혼 없는 눈빛으로 서 있었다.
5. 기억을 잃은 사람을 처음 마주했다. 더구나 한밤중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뒤늦게 잠든 남편을 깨워야 하나 관리실로 연락을 해야하나 멈칫하는 사이 여자의 모습이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라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 잠자리에 누웠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억을 잃은 사람이 집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절박한 사람을 한밤중의 소란함이 싫어서 외면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가 그녀를 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7. 잠 못 들고 뒤척이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 1층이 아닌 2층쯤 거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온몸이 긴장되었다. 시간 차를 두고 들려오는 소리로 미루어 볼 때, 이집 저집 벨을 누르는 듯했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 도움의 손길이 닿기를 바랐지만 내가 그랬듯이 도와주지 않는 듯했다.
8.‘어쩌면 저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다는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더는 부끄럽지 않으려 문을 박차고 나왔다. 벨 소리의 짐작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출입문 밖으로 나섰다.
9. 초가을의 날씨가 닫힌 사람들의 마음만큼이나 차가웠다. 허술한 잠옷 차림의 여자가 염려되었다. 도움이 간절했던 사람을 외면한 것이 짐이되어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다. 차도에서도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10 이제 갈 만한 곳은 지하 주차장이었다. 엘리베이터 승강기가 16층에 있었다. 기다리지 못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계단을 타고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그곳에서 여자와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지하 2층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11. 손을 공손히 모으며 정중한 말씨에 놀랐다. 비록 늘어진 잠옷 차림이었으나 얼굴에서 뭔가 모를 기품이 느껴졌다. 기억의 세포들이 퇴색되어 푸른 빛을 잃었으나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교양이 뵈어 있었다.젊은 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던 한때의 모습이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여기는 지하 1층 밖에 없는데요. 2층이 없어요. 그런데 지하 2층은 왜 가려 하나요?“
나 역시 정중히 말했다.
"지하 2층에 우리 집이 있어요."
12.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찾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젊은 남자가 뛰어내렸다.
" 아! 장모님! 여기 계셨군요.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요."
남자가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자를 보았다. 입을 굳게 닫은 여자의 목소리를 더는 들지 못했다. 여자의 기억이 길을 잃었어도 젊은 날 몸에 봰 자세가 그녀 인생의 푸르렀던 여름의 한때를 이야기 해 주었다.
13. 점점 가을로 물들고 있는 나뭇잎에 아직 녹색이 띄엄띄엄 남아 있다. 여름의 끝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무처럼 그날 밤, 긴 여운을 남긴 여인의 인생이 다시금 처연하게 느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