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준 선물/김인옥5
1)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글자를 익혔다.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글자가 되고, 그것이 의미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게 너무 신나서 국어교과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동화책이 귀하던 시절, 읽기에 굶주린 꼬마는 거리의 간판, 상표, 풀빵 봉지까지글자란 글자는 모조리 읽고 다녔다.
2) 도서관 다운 도서관을 처음 본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였다. 학교 도서관에 들어서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천 권의 책들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책 속의 신기한 세계에 푹 빠져 있으면,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듯 포만감이 일었다.
3) 그러나 삶이란 그리 녹록한 게 아니었다. 고학생이었던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장에 다닐 땐 읽어내야 할 책만으로도 숨이 가빴다. 결혼 후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점점 책과 멀어져 버렸고, 나는 책에 몹시 허기졌다.
4) 퇴직을 하고 가장 기뻤던 것은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부자가 됐다는 사실이었다.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책을 만나기 위해 우리 지역 공립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열람실에 들어서자 코 끝에 스며드는 책 냄새. 왈칵 반가움이 몰려왔다. 오랜 벗과 조우하듯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많은 책들을 모조리 다 읽고 싶은 욕심에 가슴이 뛰었다.
5) 도서관에 자주 드나드는 나를 유심히 보신 관장님께서 도서관 독서동아리를 소개해 주셨다. 동아리의 이름은 자운영이었다. 2014년 말, 설레는 마음으로 자운영의 문을 두드렸다. 회원 수가 열두 명 남짓이었는데, 신입인 나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추천한 책으로 매달 1회 도서관 동아리방에서 독서토론회를 열었다. 내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6) 첫 독서토론회 날 상당히 놀랐다. 자유토론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과연 십여 년 토론을 이어온 사람들답게 토론 수준이 매우 높았다. 책을 꿰뜷어 보는 눈이 예리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예사롭게 읽은 대목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음을 깨달았다. 나와 시각이 다른 이도 있어 책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서서히 독서토론회에 동화되어 가며 독서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7) 내가 입회한 지 5년 뒤인 2019년, 회원은 18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우리들의 소망이었던 작품집 발간을 관장님으로부터 허락받았다. 십여 년 독서동아리 활동을 한 회원 중에는 동아리 강사님의 권유로 글쓰기 습작을 하고, 신춘문예나 전국 공모전에 당선되어 소설가, 수필가,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회원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편집위원을 꾸려 회원 작품집 제3권을 만들었다. 2집을 낸 지 9년 만이라 했다. 독후감을 중심으로, 시, 시조, 수필, 소설, 일기 등의 회원 작품을 모아 250쪽의 작품집을 만들어 냈다. 자운영 제3집, 내 작품이 인쇄된 최초의 책이었다. 교정 보느라 여름 한 철을 반납했지만, 책이 되어 나오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참 뿌듯했다. 나는 편집 후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들의 글이 근사한 작품집이 되어 나올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문집 발간을 기꺼이 허락하신 관장님 참 고맙습니다. 일기에서 소설까지 다양한 작품 내어주신 회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동하고 공감하며 때로는 목이 메었습니다. 세 분 선생님의 애정어린 축사도 가슴 뭉클했습니다. 여러 차례 귀한 시간 내어 교정을 봐주신 ㅇㅇ님, ㅇㅇ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측면 지원하신 ㅇㅇ님, ㅇㅇ님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이 가을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날들이길 기원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께 사랑을 전합니다.’
8) 작품집을 엮는 과정에서 내 작품을 눈여겨 본 편집위원들이 문재가 엿보인다며 글쓰기에 도전해 볼 것을 권유했다. 나는 독서활동을 병행하며 용기를 내어 난계문학관 수필부에 등록했다. 그곳엔 이미 수년 전부터 시, 수필, 소설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다. 나는 수필 강사님의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 백지를 앞에 두고 막막하기만 한 초보자를 등 떠밀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써보도록 부추겼다. 나는 거기에 고무되어 넋두리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 공부를 한 지 5년 만에 등단을 하고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도 출간했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책과의 인연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9) 이 무렵 편집위원들과 가끔 사적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다섯 명의 편집워원들이 독서동아리를 결성하였다. 매월 한 권의 책을 함께 선정하여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한편, 미술관과 전시회를 견학하기도 하고, 이슈가 되는 영화를 함께 관람한 후 감상회를 열었다. 이는 내 시야가 확장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0) 자운영에 입회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회원이 30명 가까이 늘어났다. 장소가 협소하게 느껴지고, 토론하기에도 인원이 부담스러웠다. 동아리 회원 중에 집안 사정으로 또는 직장을 갖게 되면서 오전에 이루어지는 토론에 참여하기가 어려운 회원이 과반을 넘었다. 동아리 모임을 모두 참석이 가능한 저녁 시간으로 옮겼다. 자운영 회원 중에 직장과 집안일로 독서토론회에 참석이 어렵게 된 회원 두 명이 더 합세해 회원 수가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모두 자운영에 발 담근지 10년이 넘는 사람들이라 심기일전하여 혼자 읽기 어려운 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11) 때마침 이 모임 중에 한 멤버가 골목 안에 동네책방을 차려 모임 장소가 수월하게 정해졌다. 마음껏 떠들 수 있고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 볼 일 없으니 마음 편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모임이 10시를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았다. 토론을 펼치는 가운데 자연스레 속마음이 드러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돈독해져서 토론회 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
12) 책이 선정되면 한 회원이 작가와 작가의 사상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요약 정리해서 인쇄해 온다. 이 자료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읽은 30여 권의 책들은 대부분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방대한 책이거나, 괴테의 <파우스트>,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사르트르의 <닫힌 방>,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같은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피천득 수필집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같은 수필집을 읽으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13) 도서관은 나의 운명을 바꾸어 준 엄청난 선물이었다. 수많은 양서들을 읽으며 세상과 사람을 보는 안목을 틔웠고, 노후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꿈도 꾸어보지 못한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자신의 수필집을 가진 작가가 되게 했다. 책을 통해 좋은 벗들을 사귀어 그들의 영향을 받아 나를 성장케 했다. 그리고 며느리와 책을 서로 나누어 보는 책 친구가 되게 해주었다. 내 책장엔 엊그제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이 두 권이나 꽂혀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