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스름달 뜨기 전에/권춘애4
1. 으스름달이 뜬다. 어둠과 밝음이 교대하는 시간이다. 으스름달의 엷은 빛이 어둠을 감싸안는다. 으스름달은 낮과 밤을 가르는 시간이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짐승들도 잠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2. 오늘처럼 으스름달이 떠 있는 걸 보면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맞벌이였기에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야 했었다. 그 시절엔 선거철이 되면 손으로 선거 명부 작성을 해야 했기에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쩔 수 없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아이를 시골 친정집에 맡겨야 했었다.
3. 해거름이 되어 으스름달이 뜰 무렵이면 친정엄마가 전화했었다. 종일 잘 놀던 아이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소파 뒤에 숨어 울음을 터뜨리고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고 했었다. 친정엄마는 애처로워 볼 수가 없다며 전화선 너머로 어쩌면 좋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수화기를 아이 귀에 대어 주고 내 목소리를 듣게라도 해 주라고 했었다. 세 밤만 자고 데리러 간다는 말로 달래어 전화를 끊고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옷자락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 시절엔 사는 것이 힘들어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4. 놀이방에서는 어둠이 내리면 엄마가 나타났었는데 으스름달이 뜰 때까지 엄마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불안과 공포감이 오죽했을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어쩌면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는 그때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생겨났다. 분리불안과 애정결핍에서 오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었다.
5. 오늘도 손자는 사각 블럭 쌓기 놀이에 빠졌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블럭을 내팽개치고 엄마를 부르며 문 쪽으로 뛰어간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현관문이 열리지 않자, 다시 돌아온다. 놀이에 빠져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손자의 마음은 문 쪽에 가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면 엄마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6. 손자가 엄마 생각을 하지 않게 간식을 챙겨주고 같이 블럭 쌓기 놀이를 한다. 그것도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소용이 없다. 작은 소리에도 몇 번을 문 쪽으로 뛰어간다. 애정결핍이 생길까 봐 조바심이 난다. 할아버지 등에 업혀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본다. 기분이 나아졌는지 할아버지 등에서 깔깔거리며 웃는다.
7. 손자를 보면서 아들을 떠올린다. 하루도 아니고 몇 날을 친정에 맡겨 둬야 했던 그 시절 아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들의 부모에 대한 소중한 그 시간을 되돌려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기에 손자에게 마음을 쏟는다.
8.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 똑같은 마음일 것 같다.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며 같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까. 기다리는 마음이 그것으로 아주 미미하게나마 치유가 되면 좋으련만.
9. 손자는 할아버지와 사각 블럭 쌓기 놀이에 다시 빠졌다. 블럭이 총으로 변신하였다며 “변신!”을 외친다. 할아버지는 쓰러지는 시늉을 한다. 손자는 신이 났다. 갑자기 할미에게도 변신을 외친다. 할미도 소파에 쓰러지자, 통통 뛰어다니며 이겼다고 좋아한다.
10. 어둠을 언뜻 안은 으스름달이 뜨기 전부터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손자.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가 난다. 발걸음 소리가 나자, 부리나케 문 쪽으로 뛰어간다.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파트가 떠나가라 “엄마!”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