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IS MY LIFE
언양에세이포럼
26기-14차시
일시: 2026년 6월 16일 (화) 3시00분
목록
|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 1 | 샹그릴라 | 조영정 | 9 | 이경자 |
| 2 | 남동생 | 김선애 | 5 | 이상순 |
| 3 | 도서관이 준 선물 | 김인옥 | 5 | 이혜경 |
| 4 | 으스름달 뜨기 전에 | 권춘애 | 4 | 김연희 |
| 5 |
합평순서/권춘애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박동조 박정애
박희자 예수백 이경자 이상순 이혜경 조영정
1. 샹그릴라 /조영정9
1. 제임스 힐턴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인도에서 근무하던 영국인 네 명이 티베트인에게 납치되어 히말라야산맥 너머로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비행기가 불시착한 곳은 티베트의 험준한 산중에 감춰진 불가사의한 ‘샹그릴라’이다. 그곳은 세상과 단절된 낙원으로,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난 영원한 공간이며, 근대적 시설이 갖추어진 사원과 풍요로운 농작물이 가득한 신비로운 땅으로 묘사된다.
2. 티베트 불교 경전에는 설산이 고성을 둘러싸고 있고 황금 불탑이 빽빽이 늘어서 있는 성스러운 낙원이 등장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곳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히말라야산맥이 있는 몇 나라가 자기들 마을이 그곳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나 중국 정부에서 중뎬이 ‘샹그릴라’라고 발표한 후 몇 년이 지나 도시 이름을 ‘샹그릴라’로 바꿨다. 그 후 세계 모든 사람이 ‘샹그릴라’라고 부르고 있으니 선점 효과는 대단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예전엔 티베트 땅이었다가 현재는 중국 윈난성의 현급 도시인 장족 자치주다.
3. 윈난성 중뎬은 힐튼이 이상향으로 그린 ‘샹그릴라’와 비슷한 산과 호수가 있는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갖고 있다. 병풍처럼 큰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겨울에는 사방의 산이 설산으로 변한다. 진사강이 이곳을 감싸 흐르고, 그림 같은 호수 나파하이도 가까이에 있다.
4. 얼마전, 샹그릴라를 향해 길을 나섰다. 해발 3,200m에 있는 고성이 중국인들은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 마을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몹시 궁금했다.
5.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고성에 처음 발을 디뎠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돌바닥 길이 펼쳐졌다. 소수민족인 장족 복장을 한 부녀자들이 삼삼오오로 지나가며, 민속 복장을 통해 그들의 고유한 민족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층은 상점으로 개조되어 옛 모습을 잃었고, 그나마 2층은 전통적인 티베트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차별화된 독특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6. 샹그릴라의 호수 풍광과 소설 속에 나오는 라마사원을 둘러보기 위해 먼저 나파하이 전망대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와 초원에는 말과 야크가 한가롭게 쉬고 있었다. 나파하이는 해발 3,226m에 있는 계절성 고원 습지 호수로, 면적이 660km²에 달한다. 맑고 푸른 물빛과 흰 구름이 어우러져 마음을 확 트이게 했다. 그 옆으로 또 다른 풍경이 시선을 붙잡았다. 원뿔 모양의 돌탑 둘레에는 경전이 적힌 오색 천이 여러 단으로 감싸여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티베트 불교 문화의 상징인 ‘타르초’다.
7. 해발 3,400m의 언덕 위에는 윈난성 최대 규모의 티베트 사원인 송찬림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사찰은 티베트 예술박물관이라고 불리며, 종교와 건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스러운 전당이다. 마을 언덕 위에 우뚝 솟아있는 4개의 사찰 건물은 마치 장엄한 성곽처럼 웅장했고, 황금색 지붕은 광채를 뿜어내어 시선을 끌었다. 마을 길을 따라 대웅전 법당까지 108계단을 오르는데, 고산 지대라 숨이 금세 가빠졌다.
8. 법당 안은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가득 차 있어 다소 놀라웠지만, 그 화려함 속에서도 평화롭고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붉은 승려복을 입은 수도승들이 여러 명 앉아 염불하거나 경전을 읽는 모습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곳 라마교 승려들도 경전 속에 나오는 ‘샴발라’ 라는 신화 같은 이상향을 평생 추구하며 수행의 길을 걷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 누구나 이상향을 꿈꿀 때가 있다. 하지만 윈난성의 샹그릴라를 둘러보면서, 이상향은 현실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환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그리는 가치의 상징이라면 이상향이 굳이 장소일 필요가 있을까. 그럴 때 이상향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 작품이, 누군가는 흔들림 없는 일상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텃밭이 그럴 수 있으리라.
10. 거창하게 이상향을 찾기보다,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과 따뜻한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마음속의 작은 꿈과 희망이 바로 진정한 이상향이 아닐까. 결국 이상향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느낀다.
11. 많은 이들이 늙음과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 영원한 낙원의 세계를 꿈꾸지 않던가. 나 역시 안정된 일상에서 걱정 없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이웃과 화목하게 어울리며 가족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삶이 내가 그리는 이상향의 모습이다.
12. 나는 오늘도 이상향에 갔다. 친구들과 따뜻한 점심을 나누어 먹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내일은 또 어떤 샹그릴라로 떠날지 기대해 본다.
2. 남동생 /김선애5
1. 오랜만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부산 출장을 온 김에 우리 집에 들르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그러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바로 마트에 가서 장을 잔뜩 봐왔다. 몇 년 만에 보는 동생인데 손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2. 자랄 때 동생하고 유난히 가깝게 지냈다. 위의 오빠들은 귀여워하기는 했지만 늘 놀리기 일쑤였다. 동생은 나보다 아래여서 상대하기가 좋았다. 유년의 시절을 되돌아보면, 남동생과 함께 뛰놀던 골목길과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했던 기억들이 뚜렷이 떠오른다. 동생은 장난도 심하고 말썽도 잘 부렸지만, 부모님은 막내라서 그런지 항상 푸근하게 감싸주곤 했다. 동생은 사춘기를 지나고 나서 철이 들자, 착한 아들로 변신을 했다. 덕분에 멀리서 사는 나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는 매일 요양원에 들러서 잘 보살폈다. 올케들보다 동생은 바쁜 일정에도 매일 어머니를 보러 가고 목욕도 직접 시킬 정도였으니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효도를 지극정성으로 받고 돌아가셨다.
3. 각자 결혼해서 살고, 사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친정 모임에는 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전 조카딸이 결혼할 때 참석해서 얼굴을 봤지만, 동생이 온다니 반가움이 앞섰다. 드디어 저녁에 동생이 왔다.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음식을 잔뜩 차려 놓은 것을 보더니 좋아하는 눈치다. 그래도 말은 차린다고 고생했다고 한다. 맛집에 가서 저녁을 대접하려고 했는데 미안하다고 한다.
4. 저녁을 맛있게 먹고 동생은 그동안 살아가면서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가까이 살면 자주 들었을 이야기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이야기가 뒤엉켜서 끝날 줄을 모른다. 동생은 자기 식구인 올케와 조카들 이야기를 하는데, 난 옛날에 밥을 같이 먹으면서 자랐던 친정 식구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옛날로 필름을 되돌리니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상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5.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동생의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를 마친 후, 예약한 호텔에서 빨리 입실하라고 해서 가 봐야겠다고 한다. 난 당연히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줄 알았는데, 웬 호텔을 예약했느냐고 취소하라고 했다. 전화를 해 보더니 특가 행사 가격이어서 취소가 안 된다고 한다. 몇 년 만에 누나 집에 왔는데 여기서 자고 가야지 어딜 가냐고 했지만, 기어코 간다고 우겼다. 동생이 하는 말이 서로 편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냐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당연히 자고 갈줄 알고 침구도 깨끗하게 마련해 놓았는데 호텔로 가겠다니.
6. 서로 편한 공간이 더 낫다는 동생 말에는 어린 시절 함께 보냈던 소중한 시간들과는 또 다른 현실의 거리가 느껴졌다. 그 순간 내 가슴 한켠에는 차갑게 스며드는 작은 서운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거리감이 어쩌면 서로를 위한 배려인지도 모르겠다고 속으로 다독였다.
7. 옥신각신하다가 할 수 없이 호텔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더니 택시를 불러놨다고 하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동생이 가고 난 뒤의 풍경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세월은 어쩔 수가 없고 각자 결혼해서 살다보니 가치관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개구쟁이였던 동생은 격식을 차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남매의 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동생은 민페를 끼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8. 날이 밝은 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호텔에서 나와 공항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다음번에 오게 되면 꼭 자고 가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누나가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을 한다. 언제든지 오면 환영이라고 하면서 잘 가라고 했다. 어제의 만남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우리가 그 누구보다도 가까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삶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셈이다. 그나마, 같이 앉아 나눈 대화와 웃음이 한데 어우러져 우리 사이의 간극을 조금은 메워주었다.
9. 이 모든 생각은 내게 가족이란 결국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존재임을 말해주었다. 늘 함께였던 그 시절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깊어질 때 진정한 우애가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남동생과의 짧은 하루가 그리움을 되살리고,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3. 도서관이 준 선물/김인옥5
1)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글자를 익혔다.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글자가 되고, 그것이 의미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게 너무 신나서 국어교과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동화책이 귀하던 시절, 읽기에 굶주린 꼬마는 거리의 간판, 상표, 풀빵 봉지까지글자란 글자는 모조리 읽고 다녔다.
2) 도서관 다운 도서관을 처음 본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였다. 학교 도서관에 들어서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천 권의 책들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틈만 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책 속의 신기한 세계에 푹 빠져 있으면,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듯 포만감이 일었다.
3) 그러나 삶이란 그리 녹록한 게 아니었다. 고학생이었던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장에 다닐 땐 읽어내야 할 책만으로도 숨이 가빴다. 결혼 후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점점 책과 멀어져 버렸고, 나는 책에 몹시 허기졌다.
4) 퇴직을 하고 가장 기뻤던 것은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부자가 됐다는 사실이었다.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책을 만나기 위해 우리 지역 공립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열람실에 들어서자 코 끝에 스며드는 책 냄새. 왈칵 반가움이 몰려왔다. 오랜 벗과 조우하듯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많은 책들을 모조리 다 읽고 싶은 욕심에 가슴이 뛰었다.
5) 도서관에 자주 드나드는 나를 유심히 보신 관장님께서 도서관 독서동아리를 소개해 주셨다. 동아리의 이름은 자운영이었다. 2014년 말, 설레는 마음으로 자운영의 문을 두드렸다. 회원 수가 열두 명 남짓이었는데, 신입인 나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추천한 책으로 매달 1회 도서관 동아리방에서 독서토론회를 열었다. 내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6) 첫 독서토론회 날 상당히 놀랐다. 자유토론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과연 십여 년 토론을 이어온 사람들답게 토론 수준이 매우 높았다. 책을 꿰뜷어 보는 눈이 예리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예사롭게 읽은 대목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음을 깨달았다. 나와 시각이 다른 이도 있어 책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서서히 독서토론회에 동화되어 가며 독서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7) 내가 입회한 지 5년 뒤인 2019년, 회원은 18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우리들의 소망이었던 작품집 발간을 관장님으로부터 허락받았다. 십여 년 독서동아리 활동을 한 회원 중에는 동아리 강사님의 권유로 글쓰기 습작을 하고, 신춘문예나 전국 공모전에 당선되어 소설가, 수필가,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회원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편집위원을 꾸려 회원 작품집 제3권을 만들었다. 2집을 낸 지 9년 만이라 했다. 독후감을 중심으로, 시, 시조, 수필, 소설, 일기 등의 회원 작품을 모아 250쪽의 작품집을 만들어 냈다. 자운영 제3집, 내 작품이 인쇄된 최초의 책이었다. 교정 보느라 여름 한 철을 반납했지만, 책이 되어 나오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참 뿌듯했다. 나는 편집 후기에 이렇게 썼다.
‘우리들의 글이 근사한 작품집이 되어 나올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문집 발간을 기꺼이 허락하신 관장님 참 고맙습니다. 일기에서 소설까지 다양한 작품 내어주신 회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동하고 공감하며 때로는 목이 메었습니다. 세 분 선생님의 애정어린 축사도 가슴 뭉클했습니다. 여러 차례 귀한 시간 내어 교정을 봐주신 ㅇㅇ님, ㅇㅇ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측면 지원하신 ㅇㅇ님, ㅇㅇ님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이 가을 오래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날들이길 기원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께 사랑을 전합니다.’
8) 작품집을 엮는 과정에서 내 작품을 눈여겨 본 편집위원들이 문재가 엿보인다며 글쓰기에 도전해 볼 것을 권유했다. 나는 독서활동을 병행하며 용기를 내어 난계문학관 수필부에 등록했다. 그곳엔 이미 수년 전부터 시, 수필, 소설 강좌가 개설되어 있었다. 나는 수필 강사님의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 백지를 앞에 두고 막막하기만 한 초보자를 등 떠밀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써보도록 부추겼다. 나는 거기에 고무되어 넋두리하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 공부를 한 지 5년 만에 등단을 하고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도 출간했다. 도서관에서 시작된 책과의 인연이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9) 이 무렵 편집위원들과 가끔 사적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다섯 명의 편집워원들이 독서동아리를 결성하였다. 매월 한 권의 책을 함께 선정하여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한편, 미술관과 전시회를 견학하기도 하고, 이슈가 되는 영화를 함께 관람한 후 감상회를 열었다. 이는 내 시야가 확장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0) 자운영에 입회한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 회원이 30명 가까이 늘어났다. 장소가 협소하게 느껴지고, 토론하기에도 인원이 부담스러웠다. 동아리 회원 중에 집안 사정으로 또는 직장을 갖게 되면서 오전에 이루어지는 토론에 참여하기가 어려운 회원이 과반을 넘었다. 동아리 모임을 모두 참석이 가능한 저녁 시간으로 옮겼다. 자운영 회원 중에 직장과 집안일로 독서토론회에 참석이 어렵게 된 회원 두 명이 더 합세해 회원 수가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모두 자운영에 발 담근지 10년이 넘는 사람들이라 심기일전하여 혼자 읽기 어려운 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11) 때마침 이 모임 중에 한 멤버가 골목 안에 동네책방을 차려 모임 장소가 수월하게 정해졌다. 마음껏 떠들 수 있고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 볼 일 없으니 마음 편했다. 저녁 7시에 시작된 모임이 10시를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았다. 토론을 펼치는 가운데 자연스레 속마음이 드러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돈독해져서 토론회 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
12) 책이 선정되면 한 회원이 작가와 작가의 사상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요약 정리해서 인쇄해 온다. 이 자료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읽은 30여 권의 책들은 대부분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방대한 책이거나, 괴테의 <파우스트>,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사르트르의 <닫힌 방>,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같은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피천득 수필집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같은 수필집을 읽으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다.
13) 도서관은 나의 운명을 바꾸어 준 엄청난 선물이었다. 수많은 양서들을 읽으며 세상과 사람을 보는 안목을 틔웠고, 노후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꿈도 꾸어보지 못한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자신의 수필집을 가진 작가가 되게 했다. 책을 통해 좋은 벗들을 사귀어 그들의 영향을 받아 나를 성장케 했다. 그리고 며느리와 책을 서로 나누어 보는 책 친구가 되게 해주었다. 내 책장엔 엊그제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이 두 권이나 꽂혀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4. 으스름달 뜨기 전에/권춘애4
1. 으스름달이 뜬다. 어둠과 밝음이 교대하는 시간이다. 으스름달의 엷은 빛이 어둠을 감싸안는다. 으스름달은 낮과 밤을 가르는 시간이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짐승들도 잠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2. 오늘처럼 으스름달이 떠 있는 걸 보면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맞벌이였기에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야 했었다. 그 시절엔 선거철이 되면 손으로 선거 명부 작성을 해야 했기에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쩔 수 없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아이를 시골 친정집에 맡겨야 했었다.
3. 해거름이 되어 으스름달이 뜰 무렵이면 친정엄마가 전화했었다. 종일 잘 놀던 아이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소파 뒤에 숨어 울음을 터뜨리고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고 했었다. 친정엄마는 애처로워 볼 수가 없다며 전화선 너머로 어쩌면 좋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수화기를 아이 귀에 대어 주고 내 목소리를 듣게라도 해 주라고 했었다. 세 밤만 자고 데리러 간다는 말로 달래어 전화를 끊고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옷자락으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 시절엔 사는 것이 힘들어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4. 놀이방에서는 어둠이 내리면 엄마가 나타났었는데 으스름달이 뜰 때까지 엄마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불안과 공포감이 오죽했을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어쩌면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는 그때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생겨났다. 분리불안과 애정결핍에서 오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말이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었다.
5. 오늘도 손자는 사각 블럭 쌓기 놀이에 빠졌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블럭을 내팽개치고 엄마를 부르며 문 쪽으로 뛰어간다. 한참 동안 기다려도 현관문이 열리지 않자, 다시 돌아온다. 놀이에 빠져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손자의 마음은 문 쪽에 가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면 엄마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6. 손자가 엄마 생각을 하지 않게 간식을 챙겨주고 같이 블럭 쌓기 놀이를 한다. 그것도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소용이 없다. 작은 소리에도 몇 번을 문 쪽으로 뛰어간다. 애정결핍이 생길까 봐 조바심이 난다. 할아버지 등에 업혀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본다. 기분이 나아졌는지 할아버지 등에서 깔깔거리며 웃는다.
7. 손자를 보면서 아들을 떠올린다. 하루도 아니고 몇 날을 친정에 맡겨 둬야 했던 그 시절 아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들의 부모에 대한 소중한 그 시간을 되돌려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기에 손자에게 마음을 쏟는다.
8.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 똑같은 마음일 것 같다.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며 같이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기다리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까. 기다리는 마음이 그것으로 아주 미미하게나마 치유가 되면 좋으련만.
9. 손자는 할아버지와 사각 블럭 쌓기 놀이에 다시 빠졌다. 블럭이 총으로 변신하였다며 “변신!”을 외친다. 할아버지는 쓰러지는 시늉을 한다. 손자는 신이 났다. 갑자기 할미에게도 변신을 외친다. 할미도 소파에 쓰러지자, 통통 뛰어다니며 이겼다고 좋아한다.
10. 어둠을 언뜻 안은 으스름달이 뜨기 전부터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손자.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가 난다. 발걸음 소리가 나자, 부리나케 문 쪽으로 뛰어간다.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파트가 떠나가라 “엄마!”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