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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포 26기

수요일에 피어난 독서의 숲 이상순9

작성자이상순|작성시간26.06.17|조회수34 목록 댓글 0

수요일에 피어나는 독서의 숲 이상순(9)

 

1 몇 해 전부터 수독회 (수요 독서회)에 참여 하고 있다. 매월 한 권씩 지도교사가 선정 해주는 책을 읽고 매월 셋 째 주 수요일 만나서 토론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나눈다.

2 어린 시절 난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아이었다. 만화책에서부터 탐정소설, 문학전집, 성인소설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러고 직장 생활 내내 내 손에서 책이 떠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때는 할부로 책을 구입하고 매월 책값은 월급을 받으면 지불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책은 내 삶에서 멀어졌다.

3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고, 책장을 넘길 여유도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1년에 읽는 책이 1.59 편이라며 걱정하는 뉴스를 보아도 무덤덤했다. 어느 날 구청에서 운영하는 생활문화 센터에서 우연히 독서회 동아리 대표를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한 달에 한 권씩을 읽는다는 것이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독서를 권하기는커녕 나 자신부터 꾸준히 읽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센터장님의 권유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듭되는 말씀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결국 마음을 바꾸어 내가 속해 있는 여러 단체에 회원 모집을 알리고 지인들에게도 참여를 부탁했다. 어떤 분들은 반쯤은 내 권유에 못이겨 가입하였다. 그렇게 10여 명의 회원이 모여 수독회가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4 처음에는 책을 선정해 직접 구입한 뒤 회원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읽어 오시라 부탁했다. 과연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다. 그리고 책을 선정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없었다. 독서회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길잡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수필가이자 울산 문인협회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시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지도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선생님은 울산도서관에서도 활동하시고 지역의 도서관에서 상주 작가로 활동하시고 계셔서 나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 주셨고, 그때부터 수독회는 단순히 책을 읽는 모임을 넘어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는 배움의 공간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5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한 권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같은 문장을 읽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게 독서의 즐거움이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도 조금씩 늘었다.

6 독서회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사람을 따라왔다. 책이 좋아서 오기도 하지만,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온기에 이끌려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독서는 혼자 하는 일이지만, 독서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생각을 비추어 보는 공간이었다. 회원 가운데 의학박사이신 H선생님은 특히 인상적이다. 선생님은 단순히 책을 읽고 오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치 연구자가 자료를 탐구하듯 책 속 세상을 파고든다. 어느 소설을 읽을 때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명을 일일이 찾아 지도를 그려 오셨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소설 속 공간을 상상하셨다.

7 우리는 책의 줄거리만 읽었지만, 선생님은 책 속 세상을 직접 여행하고 오신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독서가 단순히 활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권의 책은 사람에 따라 연구가 되기도 하고 여행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독서회는 그렇게 서로 다른 읽기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열 명이면 열 가지 생각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 다양함속에서 책보다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을 통해 책을 더 넓게 읽게 되었다.

8 독서회를 시작했을 때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졌던 지난날이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읽으며 책을 가까이 하는 노년이 되었다. 매달 새로운 책을 만나고, 그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독서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살면서 이토록 즐거운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책만 읽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알지 못했던 지식과 경험을 배운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9 인생의 계절로 치면 어느덧 가을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고, 중년의 세월은 가족과 생계를 위해 바쁘게 흘러갔다. 지금은 책과 사람을 통해 삶을 돌아볼 여유를 얻었다. 수독회는 내게 단순한 독서 모임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학교이자 인생의 동행자가 된 것 같다.

10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회원들과 이야기 나눌 때마다 생각이 넓어진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가을 햇살에 익어 가는 들녘의 곡식처럼 내 삶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우연한 권유로 시작한 독서회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회원들을 만나는 수요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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