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IS MY LIFE
언양에세이포럼
26기-15차시
일시: 2026년 6월 23일 (화) 3시00분
목록
|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 1 | 수요일에 피어나는 독서의 숲 | 이상순 | 9 | 김인옥 |
| 2 | 빛나는 반딧불이였다 | 김선애 | 6 | 박동조 |
| 3 | 父子 장꾼 외 (수필세계 신인상) | 허명순 | ||
| 4 | 낡은 누더기 외(수필세계 신인상) | 홍미애 | ||
| 5 |
합평순서/권춘애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박동조 박정애
박희자 예수백 이경자 이상순 이혜경 조영정
1. 수요일에 피어나는 독서의 숲 / 이상순(9)
1 몇 해 전부터 수독회 (수요 독서회)에 참여 하고 있다. 매월 한 권씩 지도교사가 선정 해주는 책을 읽고 매월 셋 째 주 수요일 만나서 토론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나눈다.
2 어린 시절 난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아이었다. 만화책에서부터 탐정소설, 문학전집, 성인소설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러고 직장 생활 내내 내 손에서 책이 떠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때는 할부로 책을 구입하고 매월 책값은 월급을 받으면 지불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책은 내 삶에서 멀어졌다.
3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빴고, 책장을 넘길 여유도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1년에 읽는 책이 1.59 편이라며 걱정하는 뉴스를 보아도 무덤덤했다. 어느 날 구청에서 운영하는 생활문화 센터에서 우연히 독서회 동아리 대표를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한 달에 한 권씩을 읽는다는 것이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독서를 권하기는커녕 나 자신부터 꾸준히 읽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센터장님의 권유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듭되는 말씀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결국 마음을 바꾸어 내가 속해 있는 여러 단체에 회원 모집을 알리고 지인들에게도 참여를 부탁했다. 어떤 분들은 반쯤은 내 권유에 못이겨 가입하였다. 그렇게 10여 명의 회원이 모여 수독회가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4 처음에는 책을 선정해 직접 구입한 뒤 회원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읽어 오시라 부탁했다. 과연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다. 그리고 책을 선정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없었다. 독서회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길잡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수필가이자 울산 문인협회 편집주간으로 활동하시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지도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선생님은 울산도서관에서도 활동하시고 지역의 도서관에서 상주 작가로 활동하시고 계셔서 나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해 주셨고, 그때부터 수독회는 단순히 책을 읽는 모임을 넘어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는 배움의 공간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5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한 권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같은 문장을 읽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게 독서의 즐거움이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도 조금씩 늘었다.
6 독서회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사람을 따라왔다. 책이 좋아서 오기도 하지만,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온기에 이끌려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독서는 혼자 하는 일이지만, 독서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생각을 비추어 보는 공간이었다. 회원 가운데 의학박사이신 H선생님은 특히 인상적이다. 선생님은 단순히 책을 읽고 오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치 연구자가 자료를 탐구하듯 책 속 세상을 파고든다. 어느 소설을 읽을 때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명을 일일이 찾아 지도를 그려 오셨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소설 속 공간을 상상하셨다.
7 우리는 책의 줄거리만 읽었지만, 선생님은 책 속 세상을 직접 여행하고 오신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독서가 단순히 활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권의 책은 사람에 따라 연구가 되기도 하고 여행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독서회는 그렇게 서로 다른 읽기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열 명이면 열 가지 생각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 다양함속에서 책보다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을 통해 책을 더 넓게 읽게 되었다.
8 독서회를 시작했을 때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졌던 지난날이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읽으며 책을 가까이 하는 노년이 되었다. 매달 새로운 책을 만나고, 그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독서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살면서 이토록 즐거운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책만 읽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알지 못했던 지식과 경험을 배운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9 인생의 계절로 치면 어느덧 가을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고, 중년의 세월은 가족과 생계를 위해 바쁘게 흘러갔다. 지금은 책과 사람을 통해 삶을 돌아볼 여유를 얻었다. 수독회는 내게 단순한 독서 모임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학교이자 인생의 동행자가 된 것 같다.
10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회원들과 이야기 나눌 때마다 생각이 넓어진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가을 햇살에 익어 가는 들녘의 곡식처럼 내 삶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우연한 권유로 시작한 독서회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회원들을 만나는 수요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2. 빛나는 반딧불이였다/김선애6
1. 오늘은 반딧불이 체험 수업을 하는 날이다. 선착순으로 접수를 한다는 문자를 올리자마자 5분도 안 되어 마감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현대사회는 도시화와 인공조명 등으로 인해 밤하늘의 별이나 자연의 어둠을 경험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캄캄한 숲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생명체를 마주하는 것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이다.
2. 반딧불이는 예전의 순수했던 시절에 경험했던 자연의 신비를 직접 체험하며 정서적인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반딧불이의 빛은 강렬한 조명과 달리 생명력이 느껴지는 은은하고 규칙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휴대폰이나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오롯이 자연의 현상에 집중하게 되면서, 정보 과부하 상태인 현대인에게 강력한 휴식을 제공해 줄 수 있다.
3. 오늘 체험을 신청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 깨끗한 시골의 환경 속에서나 봤던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함께 참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반딧불이가 어떻게 빛을 내는지 궁금해서 질문도 많이 하며 호기심을 키웠다.
4. 예전에는 개똥벌레라고 불렸을 만큼 과거에는 시골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환경지표 종으로 대접받는 귀한 존재라고 알려주었다. 애반딧불이는 알, 애벌레, 번데기 상태에서도 빛을 내는데 그때의 빛은 다른 생물들에게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빛이다.
5. 반딧불이의 원래 이름을 맞추면 선물 증정이 있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 대답했지만, 정확한 답은 맞추지 못했다. 본래 순우리말 이름은 ‘반디’이고 이 반디가 내는 불빛이 반딧불인데 이 둘이 합쳐져 ‘반딧불이’라고 알려줬다.
6. 드디어 기다리던 반딧불이를 날리자, 초록색 빛을 내며 반짝였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치며 기뻐했다. 오늘 체험하는 반딧불이는 가장 작은 애반딧불이 종류이다. 수컷은 배 뒷부분에 있는 발광기에서 빛을 내는데 두 줄이며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반짝인다. 암컷은 한 줄이며 날아다니지만 짝짓기를 위해 수컷을 기다릴 때는 주로 앉아서 빛을 내며 신호를 주고받는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자, 아이들은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손에 올려놓아도 빛이 나는 발광기가 뜨겁게 느껴지지 않자 질문을 수없이 쏟아 놓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빛은 뜨겁지만,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생물발광이기 때문에 차가운 냉광이다.
7. 오늘 체험을 진행하면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살아가다 보면 사람도 저마다 한 번쯤은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시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젊은 날의 나는 배움에 목말라했다. 세상은 넓었지만 내가 뛰어들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었다. 늘 일에 지쳐 힘들어했지만, 나름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루가 짧게 느껴질 만큼 바빴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8.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안에는 나를 움직이는 빛이 있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빛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비추기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9. 살아가다 보면 기쁜 일보다 힘든 일이 더 많이 찾아온다. 기대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족을 돌보고 생계를 꾸려 나가는 일에 쫓기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해야 할 일은 많아지는 데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11.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웃음은 줄어들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 익숙한 것을 붙들고 있었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조금씩 빛은 희미해졌다.
12. 반딧불이의 빛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 아니다. 아주 천천히, 조용히 진행되었다. 열정을 잃었다기보다 잊어버렸고, 꿈을 포기했다기보다 미뤄 두었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나중으로 미뤄 둔 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그래서 배움에 더 열심을 다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빛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 삶을 위해 쉼 없이 깜빡이며 빛을 냈을 것이다.
허명순 신인상 2편
1. 부자父子 장꾼 외 4편
1)주말마다 동네 상가주택 사이로 골목시장이 들어선다. 형형색색 천막이 펄럭이고, 좌판을 펴는 장꾼들은 밥벌이할 채비에 분주하다. 며칠 뒤면 명절이라 한몫 볼 기대감에 부푼 표정들이다. 여기저기 얼굴마다 생기가 번진다.‘부자父子 장꾼’반찬 가게에도 예외는 아니다.
2)장꾼이 되기 전, 남편은 자신이 장사에 젬병이라는 걸 몰랐다. 평생 사무직에만 있을 줄 알았던 그는 몸으로 돈을 버는 일이 서툴렀다. 몸에 익지 않은 허술한 몸놀림에 아내의 잔소리가 쉴 새 없이 뒤따랐다. 때로는 그 바가지 긁는 소리에 마음이 긁히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자신이 원하던 일이 아니라든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뿌리치지 않았다.
3)남편은 말수가 적고 꼼꼼한 성격의 직장인이었다. 외환위기 시절, 명예퇴직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세상에서 밀려난 참담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엔 경기조차 꽁꽁 얼어붙었다. 느닷없던 파장은 아이들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만 이라도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짓눌렀다. 눈을 뜨고 숨 쉬며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4)홀쭉해진 몸으로 남편은 새벽마다 농수산물공판장을 헤맸다. 온갖 기계 돌아가는 소리,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투박한 사투리, 끝없이 이어지는 배달 오토바이의 굉음은 그야말로 생활전선이라는 실감이 뼛속까지 와 닿았다. 그 안에서 남편은 다시, 자기 발로 삶을 딛고 일어나려는 각오를 다졌다.
5)어깨너머 배운 어설픈 솜씨로 그는 조리를 시작했다. 새벽시장에서 들여온 채소와 여러 가지 재료들을 손질해 겉절이도 버무리고, 우엉, 연근을 조리고, 마른반찬 몇 가지를 볶으며 난생처음 코다리 조림도 만들었다.
6)하늘을 지붕 삼아,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담 모퉁이에 집반찬 노점을 펼쳤다. 현관문을 나설 때의 패기와 당당함은 어디로 사라졌고, 부끄러움에 온 몸을 붉히며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아저씨, 오늘 반찬 뭐예요?”하는 이웃의 한마디가 발갛게 달아오른 마음을 덮었다.
7)음식 만드는 일은 온종일 육체로 부딪혀야 하는 노동이었다. 때때로 남편의 기력은 빠지고 몸이 쇠약해져 꺾어질 듯 말라 갔다. 하루하루 쌓인 피로에도 그는 부자富者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삶의 고비에서 선택한 길이기에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갈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견뎠다.
8)뜻밖에도 이웃들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해거름 무렵이면 찬거리를 사러 나온 낯익은 얼굴들과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짜다, 싱겁다, 핀잔을 던지면서도 인정으로 찾아오는 단골들이 늘어났다. 반찬 잘 만드는 것도 재주라며 등을 두드려 주는 어른들, 친정 반찬 맛이라며 흡족해하는 새댁도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야위어가던 남편의 삶을 조금씩 살찌웠다.
9)노점은 차츰차츰 자리를 옮겨갔다. 담 모퉁이에서 편의점 처마로, 상가 임시 건물에서 지금의 점포까지. 조금씩 장터를 키우는 동안 마음만은 이미 부자富者 장꾼이 되어 있었다.
10)호사다마라 했던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아들이 두통을 호소하는 날이 잦았다. 머릿속이 하얗고 어지럽다는 증상만으로는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입시생의 일시적인 증세려니 생각하고 먹는 약으로만 버텼다.
11)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담임교사에게서 이런 통신문이 왔다.‘두통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우수반에서 평반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사방팔방 명의를 찾아다닐 여력도, 항의할 기운도 없던 부모의 자괴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12)그날 밤, 남편은 살기위해 날마다 지지고 볶던 분주한 손을 멈추었다.“반찬은 다시 만들면 되지만, 아들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그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생계를 핑계로 자식의 위험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짐작한 걸 후회하며 아들 건강 찾기에 발 벗고 나섰다.
13)다행히 아들은 긴 투병 끝에 회복할 수 있었다. 대학을 마친 뒤, 스스로 길을 찾아 한식 조리사가 되었다. 학자가 되려던 꿈 대신, 아버지의 손끝에서 배우고 익힌 솜씨로 세상을 버텨내는 법을 택한 것이다.
14)얼마 전부터 부자父子가 부자富者를 꿈꾸며 같은 주방에 섰다. 남편은 여전히 전통반찬을 만들고, 아들은 한식 조리사로 새로운 메뉴를 연구한다. 같은 불 앞에서, 서로 다른 맛을 내며 같은 꿈을 끓여낸다.
15)퓨전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굳은 아들이다. 집밥에 어울리는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린 정성이 담긴 반찬을 만든다. 비록 왼손잡이지만, 칼질 하나로 밥벌이하겠다는 의지가 칼끝에서 반짝인다. 이웃들의 격려가 날이면 날마다 그의 칼질에 리듬을 타게 한다.
16)아들의 손끝에는 아버지의 세월이 배어 있고, 아버지의 칼끝에는 아들의 열정이 얹혀 있다. 부자가 함께 만든 코다리조림은 단골손님들이 제일 먼저 찾는 메뉴가 되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코다리 반찬처럼, 두 사람의 삶도 버릴 것 없이 꽉 차 있다.
17)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부자 장꾼은 눈만 뜨면 지지고 볶는 생의 단맛과 쓴맛을 버무리며 서로의 삶을 익히고 있다. 요리 솜씨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둘이 조금씩 닮아가는 듯해, 나는 때때로 소리 없는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18)파장 무렵, 골목시장 여기저기에 웃음소리가 들썩인다. 부자父子 장꾼의 가게에도 삶의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음의 맛을 조리하고 있다.
5. 똥둣간
1)수원의 해우재 박물관이다. 아담한 건물 1층 똥도서관을 거쳐 2층 체험관에 들어선다. 체험관에서는 시대별 변기와 똥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날마다 먹고 싸고, 싸고 먹고, 수없이 반복되는 우리네 삶을 공감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 것이 놀랍다. 감추려고만 했던 똥 이야기를 실컷 보고, 들어서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체험관을 한 바퀴 돌아 나와 길 건너 해우재 문화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2)금똥 조형물과 똥통 문이 관람객을 반긴다. 볼수록 신비한 것은 야외공원 곳곳에 설치해둔 전시물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화장실인 왕궁리 화장실모형부터 옛 화장실 문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조형물들이 가득하다. 그저 봐도 민망스럽게 생긴 백제 때 남자용 소변기‘호자’는 입을 벌린 동물 모양을 형상화해서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럽다.
3)앞부분이 높고 뒤가 낮아서 걸터앉기 편해 보이는 여인네들이 볼일 보던 요강도 있다. 현대의 화변기와 비슷하다. 시대별 다양한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 변천사를 체험하던 중, 내 눈을 잡아끈 곳은 똥둣간이다. 옛날,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좁고 냄새나던 우리집 똥둣간을 똑 닮아 놀랍다.
4)아버지는 농사일 밖에 모르던 농부였다. 농촌에서 일가를 이루어 가계를 꾸리려니 농작물 심을 밭뙈기 한 평이 절실했다. 변변한 연장 하나 없이 황무지를 개간하느라 당신은 거친 숨을 달고 살았다.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발이 부르터지도록 청춘을 다 쏟아부으셨다. 수년에 걸쳐 이룬 결과는 척박한 땅이나마 제법 모양을 갖춘 밭이 되었다. 돌덩이같이 딱딱한 흙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날마다 똥지게를 등에 지고 날라야 했다.
5)농부가 충분한 거름을 만들지 못하면 밥을 굶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을 때였다. 그만큼 잘 썩은 두엄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자양분이었다. 기름진 밭을 만들려면 소와 돼지 똥은 기본이고 여러 짐승의 똥과 똥둣간에 모여 있는 인분人糞이 필수적으로 쓰였다. 아버지는 밭 한쪽 구석에 구덩이를 팠다. 억센 풀을 베다가 깔고 볏짚이나 낙엽 등을 끌어다 넣었다. 그 위에 가축의 배설물, 분뇨, 아궁이 재를 부어 흙으로 덮어 두엄을 만들었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기름진 밭이 되자면 잘 썩힌 양질의 퇴비가 필요했다.
6)그래서였던가. 아버지는 바깥마당 길목에다 똥둣간을 지었다. 지나는 길에 볼일이 급한 사람이나 외지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을 배려한 공중화장실인 셈이었다. 한 사람의 배설물이라도 더 모아 토양의 질을 높일 심사였다. 그만큼 똥둣간은 우리집에서는 귀한 처소나 다름이 없었다.
7)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식구들 배 골리지 않겠다는 남다른 신념을 가진 아버지였다. 척박한 땅에 씨 뿌리고 알곡을 거두려 애쓰던 당신의 똥지게에 걸터앉은 우리 남매들은 먹고 싸고, 싸고 먹고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8)그 시절,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몸이 어슬어슬 춥고 고열이 올랐다. 해열제를 먹고, 파카를 입고 아무리 몸을 토닥여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마을에는 전염병인 장티푸스가 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기를 백일을 채워야 낫든지 아니면 숨을 거둔다는 소문이 퍼졌다. 내가 바로 그 병으로 사경을 헤맸던 것이었다.
9)나는 늘 아버지의 반 눈에도 못 미치는 딸이었다. 아들 넷에 고명딸, 그 틈바구니에서 내 몫의 사랑을 증명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전염병으로 사경을 헤맬 때 농사일 밖에 모르던 아버지는 나를 업고 수십 리 밖 종합병원으로 달려갔다.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헐떡이던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는 똥지게를 지고 고개를 넘을 때의 바로 그 숨소리였다.
10)사람에게 있어 똥둣간이란, 삶의 지저분한 아픔을 쏟아내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 치유의 자리가 아닐까. 우리가 먹는 밥알 하나하나에 아픔과 슬픔, 기쁨이 순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내면의 허전함을 채우고 싶은 이가 어디 아버지와 나뿐이었으랴. 아픔을 아프다 말하고 슬픔을 슬프다고 표현할 수 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삶은 환하게 밝아진다. 똥둣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입으로 먹은 모든 더러움을 비우는 곳이다. 모든 해묵은 티끌이 그곳을 통해 한방에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11)눈뜨면 또다시 먹고 사는 일로 하루를 연다. 삶 속에 죽음이 있듯이 먹고 비워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인생 최고의 삶이란 대단한 성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제힘으로 시원하게 비워 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인생의 바람이 아닐까.
12)전시관 똥둣간 위로 똥지게를 지고 웃던 아버지 얼굴이 환하게 떠오른다.
홍미애 신인상 2편
1. 낡은 누더기
늦은 시각,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인적이 드물었고 습한 날씨에 사방은 캄캄했다. 성당 앞에서 길을 꺾는 순간 다급하게 “선생님!” 하고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 희미한 불빛 사이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휘청거렸다. 형체가 가까워질수록 심한 냄새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가 입은 낡은 옷과 짊어진 봇짐 사이로 양철 컵과 돗자리가 얼핏 보였다.
“돈 좀 주세요. 차비가 없어요.”
그는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왔다. 어쩌나. 내 손엔 달랑 생수통 하나뿐인데 그에게 빵 하나 사줄 돈이 없었다. 그날따라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돈을 집에 두고 왔어요. 저쪽 성당 안에 아무도 없던가요? 맞은편 교회도 문이 닫히고 저기 건너편 불빛 보이시죠? 사람들 몰려있는 마트가 있으니 도움 좀 받으세요. 죄송합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고자 자리를 떠났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더 또렷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걸어오는 보폭이 빨랐다. 순간 집으로 뛰어가 버릴까 생각이 들었지만, 석고처럼 발이 땅에 붙어버렸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오랜 방랑 생활을 말해주듯 절망과 상실, 고생과 체념의 짠 냄새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집이 멀리 있냐는 그의 말에 왜 그러냐 했더니 가까우면 따라가서 돈을 받으려 한다 했다. 집으로 함께 갈 수도, 집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을 걸고 다가오는 노숙자는 처음이었기에 떨리고 당황했다. 주저 없이 집이 매우 멀다고 단호하게 내뱉는 나의 말에 여인은 체념한 듯 따라오지 않았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가까운 집을 두고 나 자신을 속인 것이 부끄러웠지만 두려운 마음에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가진 돈이 있다 한들 냄새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주었을까. 진정한 마음으로 돈을 건넸을까 자문하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며칠 지나 지폐 몇 장과 빵을 들고 근처를 서성거렸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걱정되었지만, 그녀는 아예 자신의 흔적인 그림자까지 쓸고 가 버렸다. 그녀도 내 동포요 형제자매인데, 안타까웠다.
몇 해 전에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정착해 살고 있는 걸인을 보았다. 그가 걸친 낡은 옷은 땀과 때와 눈물의 무게만큼 무거워 보였다. 가끔 여유 있게 책을 읽고 있는 그의 자태에서 마치 게으른 예술가의 모습이 얼비쳤다. 신문을 펼치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날 저녁밥을 먹다가 그가 생각나 일회용 그릇에 국과 밥을 담았다. 식기 전에 갖다 주어야 하는데 혼자 가기는 어둡고 무서웠다. 아들을 앞세웠다. 엄마 꼭 이렇게 해야 하냐며 걱정되는 눈빛이었지만 순순히 길을 따라나섰다. 그가 있을 법한 벤치 주변을 살피니 담요를 머리까지 덮고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긴긴밤 이슬을 덮고 있는 그에게 그릇을 조심스레 내밀며 “배고플 때 드세요.” 기어가는 소리로 말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주변을 둘러보니 눈에 띄게 그들이 보였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계단을 내려가는데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옆으로 걸어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밝은 대명천지에 사람이 죽은 듯 목이 처져있었다. 어쩌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 상인들을 불렀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냉정할 수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지하철 역사 안 사무실로 갔다. 문을 열고 직원에게 몇 번 출구 계단을 가리키며 CCTV로 확인해 도움을 요청했다. 저렇게 두면 위험하다 했더니 직원 두 사람이 내 뒤를 따라나섰다.
얼마쯤 가다가 뒤따르던 여직원이 걸음을 멈추며 사람 목숨을 두고 그런 건 아니지만 거기까지는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니 한 구역 더 가서 신고하란다. 전화로 다시 부탁했더니 관리공단으로 넘어갔다. 참 복잡했다.
완장을 찬 공단 직원이 손전등으로 웅크린 그의 눈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다시 장갑을 끼고 미동조차 없는 눈두덩을 툭툭 두드렸다. 그제야 꿈틀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었다. 공단 직원은 “밤새 안자고 낮에 자는 거니 안 깨워도 됩니다. 죽은 듯이 자는 거니 그냥 가던 길 가시면 되지 오지랖은 참…. 쯧쯧.” 하는 것이었다.
양손에 짐을 들고 역사 안 사무실을 두 번씩 오가느라 불난 내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나의 행동과 걱정은 오지랖으로 끝나 버렸지만, 왠지 씁쓸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에 부여받은 능력이 있을 텐데 저렇게 주저앉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들도 탄생의 기쁨이 있었을 것이고 환하게 웃고 박수 받은 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병과 상처받은 마음이 감당 못 해 포기하고 무너졌다 할지라도 무거운 누더기를 벗고, 작은 일부터 한 걸음씩 떼다보면 분명 손잡고 이끌어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들어서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세상을 디뎌보길 진정으로 바라본다.
2. 을의 항변
금정구에 터전을 잡고 산 지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 강산이 몇 번 바뀌었고, 익숙한 이곳이 고향인 듯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 결혼 전부터 학원을 하겠다며 정착한 이곳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원을 운영하며 세입자로서 겪은 일 중에 통보 없이 건물주의 집이 헐리는 일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이사해야 할 때가 있었다. 건물주 부부가 갈라서면서 전세금을 서로 미루고 나타나지 않아 떼이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하루가 모여 삼십 일, 한 달 마감일은 왜 그렇게 빨리 오는지. 그날도 해거름이 질 무렵이었다. 건물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지만 본능적으로 스르르 손이 갔다. 전화를 들자 뜬금없이 왜 임대료를 오전에 입금하지 않느냐며 나를 향해 개념이 없다는 심한 말을 했다. 스스럼없는 그의 폭언에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꾹 눌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입장이 아니었다.
계약서를 꺼내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니 어김없이 제날짜에 입금되었는데 무엇이 잘못되어 저토록 분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은행 업무가 끝나기 전 입금되어야 지출과 수입이 정리된다는 말을 했다. 개념 운운했던 자신이 심했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은 바람 속에 헝클어져 길을 잃은 뒤였다.
처음 건물주와 계약 후 여러 준비를 하면서 간판을 어디에 달까 상의하였다. 학원이 2층이라 창문 위 공간이 맞춤이었다. 주인께 알렸더니 그는 간판을 달게 되면 건물에 구멍이 생겨 팔 때 제값을 못 받는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렇다면 임대를 주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그와 나는 생각의 차이가 좁혀 지지 않았다. 간판은 얼굴인데 어찌해야 하나. 가진 자의 오만인지 이것이야말로 그가 말한 개념 아닌가 싶었다. 계약은 이미 끝난 후인지라 체념하며 내 속을 달랬다.
그와 대립하고 싶지 않아 생각 끝에 나만의 간판을 만들기로 했다. 유리창 크기만큼 길이를 재고 목재소에 갔다. 나무를 자른 후 창틀 안에 글을 써서 바탕에 배접했다. 며칠을 만지고 다듬으며 조명에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건물에 구멍 하나 없이 핀을 고정했다. 고민을 거듭해 힘들게 만든 간판은 나를 견고히 지탱해 주었다.
추운 겨울이 몇 번이나 지나갔다. 얼마 전 간판 문제가 불거졌다. 자리를 잠시 비우고 점심을 먹은 뒤에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옆 상가에 큰 간판이 건물 벽에 세워져 있었다. 이게 뭐지. 순간 머릿속이 바람이 휘몰아쳤다.
간판의 주인은 옆 사무실에 이사 온 건물주의 조카였다. 그녀는 미용업을 하는 속눈썹 관리사였다. 간판 업자는 내가 임대한 상가에 걸쳐 창틀 위에 구멍을 뚫고 간판을 달기 위한 사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물 전체가 먼지와 소음으로 얼룩졌지만, 여자는 한 번도 나와 보지 않았다.
구멍이 난다고 못질하지 말라던 건물주에게 조금은 당당하게 전화를 걸었다. 내 공간 창문 위에 간판이 달려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건물주는 전혀 몰랐다며 나보다 더 놀란 음성이었다.
늦은 밤 휴대전화가 얄밉게 울렸다. 건물주 남자의 패기 있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나더러 “원장님이 하고 싶은 곳 어디든지 마음대로 간판을 준비하세요. 조카애가 결국은 일을 저질러 자신도 힘들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미 달아버린 간판을 떼라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피로 맺어진 관계이고 나는 이방인인데 그냥 묻혀가야 했다.
다만 건물주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껏 간판을 달지 못하게 한 그 세월은 나에게 뭐냐고 항변하고 싶었다. 이참에 학원을 옮겨버릴까 아니면 아예 건물을 사버리는 일을 저질러 버릴까. 나는 지금 불타는 속을 잠시 다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