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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감상과 평론

빈칸을 채우는 시간 ― 김정옥 수필집을 읽고

작성자綠雲 김정옥|작성시간26.06.16|조회수32 목록 댓글 3

빈칸을 채우는 시간

 

김정옥 수필집을 읽고

 

최원돈

 

 

  청주에 사는 녹운(綠雲) 김정옥 선생이 두 번째 수필집을 보내왔다. 첫 수필집을 펴낸 지 오 년 만이다. 그 사이 충북문화재단 창작지원금까지 받았으니, 그가 문학의 밭을 얼마나 성실하게 일구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첫 수필집을 읽고 나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수필은 초록으로 피어나는 녹운동백이라 하고 싶다. 초록빛 동백이 드문 것처럼 좋은 수필 또한 흔하지 않다.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붉은 동백이 아니라, 하얗게 피어나 은은한 녹색을 머금은 녹운동백처럼 맑고 깊은 향기를 품어야 한다. 푸새를 끝낸 옥양목 같은 담백함 속에서 초록 구름이 스미듯 번져 나오는 꽃, 그것이 수필이 닮고 싶은 녹운동백이다.”

 

이번 수필집의 제목은 빈칸을 채우는 시간이다. 책장을 펼치자 작가는 삶을 빈칸 채우기라고 정의한다.

 

삶은 빈칸 채우기다. 한 칸 한 칸 채워가며 마음밭을 들여다보고 정성껏 가꾸는 일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다. 누구의 삶인들 빈칸이 없겠는가. 채워지지 않은 꿈, 이루지 못한 사랑, 미처 건네지 못한 말들. 우리는 저마다의 공백을 품고 살아간다. 작가는 그 빈칸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본다. 때로는 비워 두고, 때로는 정성껏 채워 넣으며 자신의 삶을 한 편의 문장으로 완성해 간다.

 

수필 , , 에서는 삶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에 빠진다도덕경의 구절을 끌어와 마음에도 금을 긋는다. 탐심에는 이중의 실금을 두르고, 이기심에는 굵은 경계선을 친다. 그러나 메마른 이웃에게는 따뜻한 눈길이 넘나들 수 있도록 넉넉한 점금을 남겨 둔다.

 

그 금은 단절을 위한 선이 아니다. 사람을 품기 위한 절제의 선이다. 넘지 말아야 할 곳을 알기에 더욱 따뜻해질 수 있다는 삶의 지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병뚜껑과 나선은 부부의 삶을 병뚜껑에 빗댄 수작이다. 비스듬히 닫힌 병뚜껑처럼 서로 어긋난 시간들, 그러나 오십 년 세월을 함께 지나오며 작가는 깨닫는다. 때로는 풀었다가 다시 감을 줄 알아야 하고, 비뚤어졌다면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젊은 날 그는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성장이라 믿었다. 그러나 삶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었다. 한 걸음 물러서는 일이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도움닫기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병뚜껑 하나에서도 인생의 원리를 길어 올리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

 

이 수필집에서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환승짓는 중이다. 두 작품은 한 권의 수필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담고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등록하고, 수많은 책을 읽으며 문학의 길을 찾아 헤맨다. 밥을 하면서도 글을 생각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문장을 궁리한다. 밤낮없이 원고와 씨름하고, 문우들의 날카로운 합평을 견디며 한 단어를 찾기 위해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캐듯 애쓴다.

 

문학의 길은 안갯속 산길 같았다.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오를수록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머리에 쥐가 나도록 붓방아를 찧으며 마침내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는다.

 

짓는다는 말은 참 아름답다.

 

우리는 이름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고, 글을 짓는다. 그 안에는 단순히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 마음과 정성이 스며 있다. 작가는 책 한 권을 짓기 위해 원고를 모으고, 사진을 고르고, 오탈자를 수정하며 수없이 다듬는다. 마침내 책이 인쇄되는 순간 발견한 오자 하나 때문에 안타까워하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인다.

 

특히 내 삶의 오점은 작은 붙임딱지로는 가릴 수 없을 텐데라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책의 오자는 수정할 수 있어도 삶의 오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깨달음 속에서 작가는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수필은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경험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여 타인과 나누는 작업이다. 체험이 문학이 되는 순간은 사실의 기록이 성찰의 언어로 승화될 때이다.

 

김정옥의 수필은 화려한 수사보다 생활의 작은 결을 따라간다. 병뚜껑 하나, 붙임딱지 하나, 금 하나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자신을 갈고닦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문학적 시선이다.

 

빈칸을 채우는 시간을 덮으며 다시 생각한다.

 

삶은 어쩌면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니라 빈칸을 채워가는 과정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어떤 칸은 비워 두어도 좋고, 어떤 칸은 서툴게 채워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한 칸 한 칸 자신의 문양으로 채워가는 일이다.

 

녹운 선생의 수필은 이제 막 피어난 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견디며 향기를 깊게 머금은 녹운동백에 가깝다. 이번 수필집에서 보여준 성찰과 문학적 성숙이 앞으로 더욱 깊어져, 마침내 자신만의 빛깔을 지닌 완숙한 녹운동백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한다.(20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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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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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綠雲 김정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최원돈 수필가께서 보내주셔서 부끄럽지만 여기에 올렸습니다.
  • 작성자고미화 | 작성시간 26.06.17 두 번째 수필집 출간을 거듭 축하드립니다.
    《빈칸을 채우는 시간》의 감상평에 깊이 공감합니다.
    금, 병뚜껑, 붙임딱지 하나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사물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글로 풀어 내신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쉼없 문학적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늘 건강히 좋은 글 보여주시길 기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綠雲 김정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고미화 회장님의 글이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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