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운우

벚꽃 구경

작성자이운우|작성시간26.06.08|조회수11 목록 댓글 0

벚꽃 구경

 

 

무심천 둑으로 벚꽃이 만발했다. 둑 아래로는 노란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일부 가지에는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봄날은 벌써 달아날 준비를 하나 보다.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벚꽃 아래를 천천히 걸었다. 인도에는 벚꽃 구경나온 상춘객으로 북적댔다. 꽃만큼이나 화려하고 상큼한 젊은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파란 잔디밭에 잡초처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도 보였지만, 대부분 옷차림부터 분위기에 어울렸다. 치마 길이가 그렇고, 한 옥타브 높은 웃음소리가 그렇고, 한들거리는 걸음걸이가 그렇다. 해마다 봄날이면 어김없이 피는 꽃이지만, 처음으로 벚꽃놀이를 나온 것 같다. 벚꽃 구경하려면 버스를 타고 걸어와야 가능한데, 번거롭다는 이유에서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자동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벚꽃 놀이를 대신 하곤 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멋없는 양반이라 했다.

 

올봄 벚꽃 구경은 의도하지 않은 기회로, 생각지도 못한 놀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작년 두 번째 수필집인 두 번째 이야기로 북 콘서트에 참석했던 인연 있는 커피숍에서 북 콘서트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몇 년 전에 수필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여 궁금했지만, 전화해보기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메시지에 그 사람 이름이 있어 참석하기로 했다. 저녁때 육거리에서 모임이 있으니 버스 타고 갔다가, 여유 있는 시간에 걸어가면 되겠다 하고 참석했는데, 마침 벚꽃이 만발한 거였다.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었다. 그만큼 지나는 시류에 무심했다.

 

그렇게 만난 벚꽃을 한가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장미꽃처럼 화려하지 못하지만, 무심천 전체가 환하다. 마침 빈 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빈 의자 끝에 앉아 벚꽃을 바라본다.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이 열대여섯 개의 작고 앙증맞은 수술을 감싸고 있다. 몰려있는 꽃송이를 한발 비켜서 바라보니 수술이 까만 눈동자처럼 보였다. 수만 개의 눈동자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수많은 눈동자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는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윤동주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살겠노라 했는데. 하늘도 아닌 기껏 벚꽃 아래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참 멍하니 벚꽃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젊은 여인이 깔깔거리며 다가왔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서성거렸다. 자리에 앉고 싶지만, 선뜻 내 옆자리에 앉지 못하는 눈치였다. 언뜻 젊은이들의 생동감 있는 눈에 비치는 나를 바라본다. ‘저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 이길래 혼자 앉아 청승을 떨고 있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 속상한 마음에 혼자 나왔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뒤통수가 따갑다. 괜한 자리만 축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삶 자체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모든 역할을 끝내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내 위치는 아닐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위로해보지만, 위축된 생활을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젊음이 부럽다는 부질없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나는 저들만큼 젊은 시절에 무엇을 하고 지냈던가. 그런 시절이 있기는 했었을까. 마치 그 시절을 건너뛰고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앉아 있던 자리에 껌이라도 붙어있는 양 끈적거리는 미련을 남기고 일어섰다. 무한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있을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모든 삼라만상이 제자리에 있을 때라야 어울린다. 약속한 남은 시간에 기다림이란 것이 얼마나 지루한 것인가를 체험해봐야겠다.

 

길게 늘어져 무더기로 피어난 벚꽃을 바라보니, 옛날 중학교 시절이 하얀 벚꽃 위로 펼쳐진다. 처음 도시로 진학하여 무심천 둑이 있는 남주동에 작은 방을 얻어 할머니가 보살펴 주셨다. 할머니는 손자로 인해 낯선 곳에서 노년을 외롭게 보내셨다. 군에 입대하기 전 까지 할머니가 보살펴 주셨지만, 한 번도 고맙다는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이별하고 말았다. 무심천 둑을 바라보면 할머니와 보낸 시절이 그리워진다. 영동에 있는 큰집에 다녀올 때면 언제나 할머니와 같이 무심천 둑방 길을 걸어 다녔다. 항상 하얀 치마저고리에 곱게 빗은 머리에는 비녀를 단정히 꽂고 계셨다. 언제나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한 번도 화를 내시거나 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때는 무심천 둑 전체에 가지가 늘어진 수양 버드나무가 있었다. 봄날이면 늘어진 가지마다 연초록 이파리가 돋아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해방되기 전까지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있었는데, 해방과 함께 일본 꽃이라 하여 다 없애고 버드나무를 심었단다. 그 뒤 버드나무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켜 건강에 좋지 않다고 베어내고 작은 벚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어느덧 아름드리 둥치로 변한 것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나 보다. 아름드리 벚나무를 바라본다. 나는 얼마나 둥치가 커졌을까. 벚나무가 저렇게 클 때까지 지난 50여 년의 세월 동안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든 것이 왜소해지는 것이 나이 탓만일까. (2026.4)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