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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우

백령도 가는 길

작성자이운우|작성시간26.06.08|조회수10 목록 댓글 1

백령도 가는 길

 

 

앞길이 오리무중이다. 해무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사방을 가렸다. 인천항에 우리를 4시간이나 붙잡고 있던 안개는 끈질기게 우리 앞길을 막았다. 기다림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우리를 잡고 있던 안개다. 30분마다 출항 대기 안내방송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지루함에 지쳐 포기하려던 순간 배에 오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반가운 마음으로 허겁지겁 배에 올랐다. 안개가 걷히어 배가 출항하나 보다 했는데, 바다로 나오니 점점 딴 세상이다. 인천항에서 멀어질수록 짙은 안개 상태로 4시간 동안 해무를 헤쳐가야 한다. 지루한 기다림으로 출항 허가를 해주지 않는 당국을 원망했는데, 짙은 해무를 보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 오전엔 얼마나 더 심했을까. 안전을 우선하여 출항을 제지했을 게다. 이 상태로 대청도에 도착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온통 안개에 묻힌 작은 섬이 눈앞에 보인 듯하다. 더구나 늦은 시간일 테니 숙소로 향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작은 섬에 내렸다. 바다보다는 덜 했지만,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빽빽한 소나무방풍림을 지나 모래 언덕을 넘었다. 사막이 나타났다. 사하라 사막인가, 고비사막일까, 낙타가 사막 한가운데 새끼 낙타를 옆에 끼고 모래바람을 맞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봐도 등에 쌍봉 혹이 있는 것을 보니 낙타가 분명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도 낙타가 살고 있었을까. 오랜 세월 바람은 부드러운 모래를 날라 해안가에 쌓았다. 얼마나 많은 바람이 지나간 걸까.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날라와 쌓인 모래가 작은 산을 이루었다. 발밑 모래는 쌀가루인 양 곱고 부드러웠다. 한 움큼 집어 바람에 날려본다. 어렸을 때 엄마가 방앗간에서 방금 빻아 머리에 이고 온 쌀가루같이 부드럽다. 떡을 찌는 동안 엄마랑 말동무가 되어,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던 엄마의 붉게 물든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듯 생생하다. 엄마는 내 말이면 모든 것에 잘했노라고 하시며 등을 두들기셨다. 작년 추운 겨울날 멀리 가신 어머니는 어디쯤 가시고 계실까. 하얀 백설기 떡을 먹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발이 푹푹 빠지며 바람과 안개를 헤치고 낙타에게 다가갔다. 우리 일행을 고향 사람들로 착각했는지 낙타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만지고 쓰다듬어도 반응이 없다. 사하라 사막에 온 기분으로 낙타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다. 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다.

수 억 년 전 바다 깊은 곳에 있던 바위가 화산폭발과 함께 솟아올랐다. 폭발의 힘으로 분출되며 잘게 주먹 돌로 쪼개어진 모난 돌이 이리저리 물결 따라 흘러 부딪치고 바람에 씻기며 수억 년을 갈고 닦였다. 콩처럼 잘게 쪼개지고 구슬처럼 다듬어지기까지 지나온 세월은 얼마만큼일까. 작은 돌을 밟으며 걷는다. 예쁘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콩돌은 모양도 다양하다. 얼마나 많은 시련이 쌓여 예쁜 무늬로 만들어졌을까. 어느 유명한 장인이 만든 작품보다 멋있다. 작은 돌마다 정교하게 무늬를 만들어 뽐내고 있었다. 세월은 다양한 그림으로 알록달록 물들이고 예쁜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신기한 마음으로 돌을 들여다본다.

 

멋진 무늬를 가진 작은 돌 한 개를 살며시 주웠다.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 잡은 돌을 멀리 던지는 시늉까지 하며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가져다 장식장 위에 올려놓고 돌이 지나온 세월을 물어볼 참이다. 얼마나 많은 고난과 파도가 지나며 살이 깎여지는 아픔을 겪었을지. 얼마만큼의 세월을 참고 견뎌야 아름다운 돌이 될 수 있었는지. 아름다운 콩돌로 태어나기 전에 주먹 돌이었던 시절을 기억할 수는 있는지. 콩돌이 지나온 과거를 물어볼 참이다.

 

나도 콩돌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변해보려 무엇인가 갈고 닦아보지만, 매일 지나고 나면 똑같은 하루뿐. 콩돌처럼 수억 년을 갈고 닦을 수만 있다면 남들이 예뻐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갈고 닦아도 백 년을 넘기기는 어려울 테다. 이미 백 년이란 세월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져있으니까. 백 년씩 몇백 번 태어나기를 반복하여 세월이 흘러가면 그렇게 될 수 있으려나.

 

주머니 속에 돌을 조몰락거리다 조금 전 행동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돌을 꺼내 깨끗한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많은 사람이 감상해야 할 보물 같은 콩돌을 지켜야 한다. 콩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언제든 생각날 때 볼 수 있도록 헨드폰에 사진으로 저장했다. 백령도 콩돌해안에서 콩돌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찾아본다.

 

수억 년을 바다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뜨거운 용암과 함께 바다 위로 솟아올라 비와 바람을 맞으며, 또 몇억 년을 갈고 깎아 뒤틀어진 바위 사이를 오르내리며 감탄사를 지르고 환호했다. 그때까지 바위가 겪었을 아픔은 우리는 알 길 없다. 평소 보지 못했던 뒤 틀어지고 일그러진 무늬로 다시 태어난 신기한 바위산이 보여질 뿐. 아쉬움이 남아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장군바위, 코끼리 바위에 환호했다.

두문진에서 그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은 우리는 돌아오는 배 위에서 백령도를 생각한다.

짙은 안개만 없었다면 용기포 전망대에서 북한의 황해도 원래도를 바라보며, 가까이 보여도 갈 수 없는 이국땅보다 멀리 있는 우리 다른 한쪽 편을 향하여, 가슴 뭉클한 한줄기 손짓이라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언젠가 또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북쪽 끝 땅 백령도. 그렇게 미련을 남겨두고 지루한 뱃전을 향했다. (20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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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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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로하 김인환 | 작성시간 26.06.09 선생님 덕분에 백령도 잘 다녀왔습니다. 파노라마처럼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의 감성이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백령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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