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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우

독립기념관 방문기

작성자이운우|작성시간26.06.10|조회수15 목록 댓글 0

독립기념관 방문기

 

 

흑성산 자락에 우뚝 솟아, 우아한 자태가 아름답다. 입구에 들어서니 우람한 겨레의 탑이 전시관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1 전시관 겨레의 뿌리관에는 우리나라가 시작되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역사를 볼 수 있고, 2 전시관은 겨레의 시련 관으로 일제 수탈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위안부, 강제노역, 강제징병, 쌀 수탈 등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탄압과정을 전시하고 있었다. 7 전시관 체험존 까지 있어 다 보려면 네 시간은 걸릴 것 같다.

 

군산항 선착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벼 가마니의 빛바랜 흑백사진을 바라본다. 얼마 전 누구였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방송에 나온 인사가 일본으로 가져간 쌀은 강제가 아닌 정상적으로 돈을 받고 수출한 거라며, 수탈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 국민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기까지 하고 심지어 소나무 껍질까지 먹었다는데, 정상적인 수출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조상은 누구일까. 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놋그릇 숟가락까지 공출했다는데, 과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갔는지. 심지어 소나무 송진까지 빼앗아 가지 않았던가. 산행하다 보면 높은 산 정상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직도 깊은 상처로 증거를 간직하고 있는데, 위안부가 강제가 아닌 본인들이 원하여 자발적으로 돈 벌러 갔노라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할 말을 잊었다. 비록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동네별로 인구수에 비례하여 인원이 할당되었을 것이다. 그 할당된 숫자를 채우기 위하여 이장을 앞세운 일선 기관들의 독촉과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 아닌가. 과연 가서 몸을 파는 일이라고 사실대로 말한 이장이나 일선 기관이 있었을까. 아니 심지어 그들조차도 실상을 전혀 모르고 무조건 할당된 책임량 채우기에 독촉만 하였을 것이다. 이역만리 끌려가 보니 사람대접은커녕 군표라는 쪽지로, 그것이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이 아닌 우리나라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강제노역이나 일본군 총알받이가 된 우리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 당시에 우리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강변하는 집단은 과연 역사의식이 있는 정상적인 집단인가. 그렇다면 상해 임시정부하에 목숨 다하여 싸웠던 독립투사들은 반국가세력이었던 말인가. 그래서 어떤 이는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해야 한다고 내란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그 내란 세력이 다시 복권되도록 시위하는 무슨 어게인 세력도 있으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다양한 것이 민주주의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는가. 아마도 그들도 자기들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적(政敵)을 넘어서기 위하여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관이 꼬이기 시작했을까. 일제 청산을 못 했기 때문이다. 일제 앞잡이로 호가호위하다 독립 후에 산속으로 피신했다 다시 복권되어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았던가. 12년을 집권하는 동안 친일세역이 확고히 자리 잡아 독립투사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12년을 유지되던 정권은 더 많은 욕심을 부리다 민중의 항의에 정권은 바뀌었지만, 또 다른 친일 군부 세력이 부하의 총에 맞기 전까지 18년 동안 친일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던가. 그 후에도 또 다른 군인들의 집권으로 반세기를 친일세력이 집권하였으니, 오늘까지도 그 후손들이 사회 곳곳에 한자리 잡아 큰소리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반세기 동안 한 방향으로 친일을 정당화하고 올바른 행동이라 강요한 것은 세뇌 교육 결과이다. 세뇌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지금의 북한 주민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반세기 동안 친일세력의 자화자찬만 듣고, 바른길이라 강요받고 살아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에야 국민의 자각과 미디어의 발달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도 친일세역에 동조하면 애국자고, 반대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빨갱일지도 모르겠다.

어떡해야 해결될 수 있을까. 독일은 나치 세력을 엄벌하여 지금도 나치를 찬양하거나 나치식 경례를 해도 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친일이 무슨 자랑처럼 되뇌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만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인가. 독일은 후진국이라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단 말인가.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일제 청산을 해야 한다. 법을 만들어 일제강점기를 찬양하는 인사를 처벌해야 한다. 위안부를 자발적인 참여로 호도하는 인사를 벌해야 한다. 당시 우리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을 퇴출해야 한다. 그래야 국론이 통일될 수 있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 왼쪽 야외공터에 조선총독부 해체 건물이 이삿짐 떼어놓은 듯 썰렁하니 놓여있다. 총독부 지붕, 건물과 기초 부분 등을 따로 떼어놓아 전시하고 있었다. 마치 말 네 마리가 양팔과 다리를 묶어 달리게 하여 머리, 몸통, 양팔과 다리를 나뉜 육시(六尸)라는 조선 시대 최고 극형의 형벌을 받은 시신처럼 보였다. 어떤 이들은 있는 그대로가 교육의 현장이 된다고 보존하자 한다지만, 치욕의 건물을 그대로 두고 보는 그것은 또 다른 치욕이다. 이렇게 해체하여 교육자료로 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울적했던 기분이 총독부 해체된 모습을 보고 한결 가벼워졌다. (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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