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운우

잡어 매운탕

작성자이운우|작성시간26.06.23|조회수18 목록 댓글 3

잡어 매운탕

 

일찍 찾아온 초여름의 날씨 덕분에 선산으로 가는 길목 주변의 산과 들녘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작년 초 어머님이 먼 길을 떠나시는 날 아침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가시는 길목마다 모두 하얀색이었다. 그날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어머님 계신 곳을 향했다. 넓은 잔디밭 사이로 환영받지 못하는 잡초는 벌써 삐죽이 올라와 반갑잖은 인사를 한다. 해마다 어머님 생신이면 형제들과 한자리에 모여 외식을 하곤 했었다. 올 생신에는 어머님이 없는 아움을 달래려 어머님 계신 곳을 들려, 초평저수지에서 매운탕을 먹기로 했다.

메뉴판에는 여러 민물고기 요리들이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메기매운탕도 있고 새뱅이 찌개와 초평저수지 특산품이라는 붕어찜도 있었다. 여러 종류 생선들이 들어간 매운탕이 푸짐할 것 같아 잡어 매운탕으로 주문했다. 피라미, 모래무지, 참마주, 미꾸라지, 새뱅이 등이 들어 있는 매운탕이다.

미호 강에 같이 살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왁자지껄 잔치판이 벌어졌다. 날렵한 피라미는 무 틈새에서 고개를 내밀다, 놀란 표정으로 동그란 눈을 부릅뜨고 아는 체 하고, 모래무지는 기다란 수염만 남기고 몸을 모래 속에 파묻듯 미나리 이파리 속에 얼굴을 숨겼다. 미꾸라지는 틈새를 비집고 특유의 빠른 몸짓으로 솟아오르는 거품 속을 파고든다. 세월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한 탓일까. 허리를 '기역' 자로 구부린 새우는 붉게 물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다란 수염을 흔들어 존재감을 자랑하려는 듯 채소 줄기 사이를 숨바꼭질하며 오르락내리락 그네를 탄다.

맑은 미호 강 물길 속에서 옹기종기 헤엄치며 놀던 민물고기 가족들은 부러움 없는 하루하루를 한가롭게 보내고 있었다. 평화로운 나날을 맞이하며 그들만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최소한 어느 따스한 봄날에 일어난 사고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날이었던가. 솜털 같은 봄볕이 생명을 불러모아 사방이 초록색으로 채색되고 있을 때였다. 투명한 유리 항아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의 유혹으로 나도 모르게 항아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어항 속을 나오려니 출구가 오리무중이다. 미호 강에서 약삭빠르기로 소문난 똘똘이라 자부하며 뺑뺑 돌아보았지만,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못하듯 항상 그 자리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 손에 잡혔다. 우리에게 자유를 보장하라 지느러미를 흔들어 발버둥 치며 항의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깨끗이 손질하여 온갖 양념과 채소와 함께 냄비 속에 처박았다. 거기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무, 미나리, 고추, 마늘, 고춧가루 등 온갖 자극적인 양념들이 뒤섞여 온몸을 옥죄었다. 몸부림치기에도 이미 늦었다. 숨이 막혔다. 기진맥진 탈진하여 누워있는데 냄비가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따뜻한 온기에 나른한 몸이 녹아 눈이 스르르 감길 정도로 편안했는데, 점점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졌다. 나는 운명을 직감하고 옛 미호 강에서의 평화로운 생활을 회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펄펄 끓는 냄비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코 시원하다하며 숟가락으로 국물부터 떠먹기 시작했다. 뾰족한 젓가락이 내 몸 깊숙이 꽂혔다. 나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저항했다. 가시로 입안을 찔러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으려 저항하고, 긴 수염으로 혀에 붙어 대항해 보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다. 지난 미호 강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나는 어떤 존재였던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하루하루 지느러미를 흔들며 평범한 생활을 했다고 올바른 삶이었을까. 어떻게 살았어야 훌륭한 삶이었을까. 항상 마지막이 돼서야 지난 일들을 반성하는 것이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나 보다.

그날 어항으로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그대로 물속에서 놀다 어느 날인가. 앞서간 선배들이 그랬듯이 목숨이 한계에 이르러 기진맥진 물 위를 떠다니다, 어느 곳인가 나뭇가지에 걸려 썩어 없어지는 것이 올바른 삶이었을까. 오늘처럼 사람들 손을 거처 누군가의 삶에 보탬을 주고, 누구에겐 미각을 위하여, 또 다른 누구에겐 살아가는 기본이 되는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삶으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었는지. 같은 듯 다른 두 죽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지나고 있는 삶을 높은 곳에 계신다는 절대자께서 내려다보신다면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저놈은 왜 저렇게 살고 있는가라고 흉을 보실지도 모른다. ‘그렇게밖에 못사는가. 에이 못난 놈.’ 하며 혀를 차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야 멋진 삶인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안개만이 자욱하다.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정상을 넘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멀지 않은 남은 길이라도 똑바로 걷고 싶은데, 어느 길이 바른길인지 알지 못해 허둥대며 걸어가고 있다.

소화를 시키려 저수지 둘레 길을 걸었다. 푸른 호수가 봄볕을 받으며 살랑살랑 물결이 흔들린다. 비록 지금까지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남은 세월은 남들이 흉보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고 물결 위로 다짐한다. 호수 위에 윤슬이 반짝인다. 남은 삶에서 저 윤슬처럼 한 번만이라도 반짝이며 빛을 내주기를 기대해본다. (2026.4)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강현자 | 작성시간 26.06.23 나의 지나온 날들을 잡어들의 생에 대비시킨 유비구조의 글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절대자의 눈엔 어떻게 비칠지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우리는 남은 세월을 향해 새로운 희망을 걸어봅니다.
    서술자인 '나'가 둘인 것은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건가요?
  • 작성자느림보이방주 | 작성시간 26.06.23 오 재미있어요. 아주 좋습니다. 시점을 바꾸어 본 것도 아주 좋습니다. 냄비 안에서 물고기들이 대화를 나누며 고통을 호소하는 상상이 조금 더 구체적이면 정말 재미있겠어요.
    매운탕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 작성자김현주(가을학기) | 작성시간 26.06.23 유비적구조~ 글잘읽었습니다
    댓글 이모티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