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로 써 본 수필 작법
方 旻
문학지로 등단하여 수필 쓰기 시작한지 5년째 접어든다. 그 전에 직업상 글쓰기를 가르쳐본 게 먼저다. 창작보다 이론을 먼저 앞세운 셈이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으나 장단점이 공존한다. 게다가 한 발 더 나아가 얼마 전 수필을 어떻게 써야한다고 책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그 책엔 잘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독자를 위해 실었다. 창작 실제보다 당위를 내세운 거라, 이 글에선 그에 미치지 못하나 수필 창작 실상을 체험에 바탕 하여 밝히려 한다. 말하자면 ‘나는 수필을 이렇게 쓴다.’가 되겠다.
어떠한 글이든 주제가 있어야 하고, 그 주제를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듯 이걸 어떻게 마련하는지가 늘 앞선다. 대부분 경우는 제재에서 주제를 잡아챈다. 주로 체험적인 것이므로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함께 또는 사후에 글의 주제를 낚는다. 사건과 관련하여 생각이 떠오르면 이게 수필로 쓸 수 있는 주제가 될지 따져보고 메모한다. 사물 수필도 비슷한데, 작정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모으고, 그게 가지고 있는 문학적 또는 인간적 의미를 천착한다. 사물 본질과 현상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람직한 해석을 연결하고 통합하여 최종 주제를 설정하고 집필에 착수한다. 거기엔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과 해석이 자연스레 담기고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스며든다. 이런 수필을 자주 쓰고 싶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고 독특한 해석과 가치 있는 의미 찾기가 수월하지 않아서 의욕만큼 많이 쓰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정말 우연하게도 좌석 아래 발치에 지폐가 보인다. 거기 앉은 분에게 돈이 떨어졌다고 하니 그걸 줍는다. 그가 내리고 난 뒤 앉아서 보니 아까 자리에 또 돈이 보인다. 그 사이 돈을 떨어뜨릴 사람은 안 보이고, 일단 줍는다. 이어 생각이 따라온다. 뒤처리를 여러 각도로 고민하다가 남에게 무엇을 사주어서 써버린다. 이런 사건에서 돈이란 돌고 도는 물레방아처럼 오고가고 하는 것이 아닌가란 주제를 잡는다. <물레방아>란 글로 완성했다. 비슷한 보기로 여행지 마트에서 삼백 원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이때도 그 일에서 관용이란 주제를 찾아내 <삼백원>이란 글을 썼다. 이와 달리 주제를 먼저 잡고 합당한 제재를 찾아 쓴 경우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발표한 수필은 모두 제재를 먼저 선정하고 그 뒤에 주제를 설정한 경우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수필에 관한 글, 이른 바 ‘메타 수필’을 청탁받은 경우에는 주제가 먼저 잡힌 경우이다. 좀처럼 잘 쓰지 않는 글인데, 쓰고 있다.
주제를 잡아서 쓰게 되면 합당한 제목을 생각한다. 일단 제목은 제재나 주제와 직결되는 걸로 잡아놓고 초고를 쓴다. 제목은 글을 써 가면서, 다 쓴 뒤에도 여러 번 생각하고 고치며 바꾼다. 주로 즐겨 사용하는 제목은 독자를 고려하여 호기심이 가는 걸 정한다. 다음은 친근감을 줄 수 있는 걸 고른다. 평시에 들어봤음직한 단어나 쟁점 혹은 관심사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예컨대 ‘으악새 슬피우니’ 등의 유행가 가사나 영화 제목 등에서 따다 쓴다. 친숙한 것으로부터 독자를 쉽게 글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책이다. 또는 영화 예고편처럼 대강 주제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걸로 달기도 한다. <샛길이 좋다>나 <커피국을 끓이다>식인데 안 읽어도 알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독자가 혹시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만 하다고 보아 붙인다. 주로 개인적 취향에 관한 글이거나 무언가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강할 때 선택하는 수법이다. 예로선 고유한 길의 지명을 없애고 도로명 주소 사용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보수주의자>가 해당한다. 친근감을 살리는 제목과 대비되는 것으로 반어적이거나 낯선 것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반어적인 것을 노려서 쓴 것에는 <청춘을 돌려다오>가 있는데 실상 주제는 청춘 시기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선택한 제재나 주제로 쓰면서 독자가 처음 맞닥뜨리는 제목을 어떻게 달지의 고심은 주제 설정 못지않게 신경 쓴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어찌하면 독자를 글로 끌어들일지에 대한 것이다. 독자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켜 글을 읽도록 어떻게 유인할지에 집중한다. 꽃 색과 향기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이듯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글이 좋든 나쁘던 독자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일단 읽게 만드는 것, 일종의 시식용 미끼를 제목으로 사용한다. 본문 내용에 상관없이 상당수는 제목에서 이미 독자의 마음을 잡아채지 못하면 좋은 글이 되기 어렵다. 첫 키스의 짜릿함에는 못 미친다 해도 그걸 향한 목표는 잊지 않으려 고민한다. 최소한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은 품도록 말이다.
글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첫머리다. 이 서두는 무엇에 대해 쓸지를 결정하고 독자에게 알리는 구실이면서 독자가 호기심을 갖고 계속 읽어나가게 하는 시발점인데 참말 제일 어려운 곳이다. 글을 쓰게 된 동기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다루는 주제에 관한 일반론으로 붓을 대기도 하고, 그에 관한 친근한 어떤 대상으로부터 비롯하기도 하지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짧게 쓰려고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내용은 본문에서 충분하고 풍부하게 다루고 가능하면 서두에서는 어떤 임팩트만을 주려고 애쓴다. 이와 호응하여 결미도 역시 짧고 강하게 끝내려고 힘쓴다. 그러면서 여운을 주거나 암시도 하지만 필자 입장, 본문에서 지금껏 다루던 주제에 관한 최종 태도를 나름의 것으로 묶어내는 소위 자기화 방식으로 제시한다. 한발 더 나아가면 서두와 결미의 호응 관계, 이른 바 수미쌍관법에 충실하도록 구성하여 의미상 앞과 뒤를 긴밀하게 연결하려 한다.
주제와 종속 관계 하부를 구성하는 각 문단은 대강 비슷한 분량으로 균형을 잡는다. 지면상 글도 사물의 공간 구조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아 균형을 고려한다. 일정한 면적에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각 기능에 맞는 공간의 적당한 넓이 배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실보다 욕실이 더 크거나, 현관보다 주방을 더 좁게 짓는다면 이상한 집일 것이다. 물론 집의 콘셉트에 따라 예외적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정상적 일반 주거에 그러한 경우는 없다. 마찬가지로 각 문단의 고유한 기능(시작-중심-마무리-연결-보충-부연 등)에 맞도록 분량을 조정하지만 다른 문단에 비해서 과도하거나 과소한 크기의 문단은 들이지 않으려 주의한다. 문단은 글의 골조이며 골격이므로 이게 허술해선 결코 좋은 글이 될 수 없고 구실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단을 조직하면서 소주제는 주로 앞에 두는 두괄식을 많이 쓴다. 그래야 좀 더 명확하게 문단에 배치한 문장들이 하나의 소주제로 응집하고 엉뚱한 샛길로 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맥 흐름에 따라 미괄식이나 양괄식, 중괄식과 추정식도 쓰나 문단 소주제를 보완하여 의미를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해선 최소한 둘 이상 보충문장을 거느리게 한다. 한 명 팀장(소주제)에는 둘 이상 팀원(보충 문장)으로 팀(문단)을 꾸려가려고 한다. 총 팀원은 세 명 이상 아무리 많아도 열두 명을 넘지 않게 한다. 팀원이 적어도 문제이나 너무 많아도 팀장이 통솔하고 관리하는 데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 수가 몇 개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소주제를 충분히 뒷받침할 만큼 필요하고 충분한 독립된 의미(문장)를 거느리게 하는 게 핵심이지만.
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각 문단을 둘씩 짝짓게 하는 일이다. 문단 짝의 기능적 핵심은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게 하여 글 전체 완성도를 높이게 하려는 의도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어떠한 대상도 짝을 이루어야 안정되고, 인공물도 근본적으로 이와 이치는 같기에 인간의 창조적 인공물인 글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짝을 지어 앞뒤 연결 문단이 의미 연속과 발전, 대비와 반전, 순접과 역접, 축소와 확장, 논리와 예증 등 기능적 의미에 따라 어울리게 하고, 이 결과로 전체 글 총 문단 개수 역시 짝수로 맞춘다. 글이 목표로 하는 분량인 원고지 200자 기준으로 5매, 10매, 12매, 15매에 따라 다르게 문단 수를 조정한다. 일반 수필로 5매일 경우는 4개 문단, 10매의 경우는 8개, 12매는 10개 문단, 15매는 12개를 기준으로 잡아서 글을 쓴다. 이것은 집을 짓는다고 가정할 때 대지 평수에 맞추어 방 개수를 미리 정해 설계하고 시공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문단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은 4단 원리 기승전결이다. 이 방식이 문단 짝수 구성에도 적당하고 글이 밋밋하지 않게 변화를 주면서도 의미 전달을 확실하게 할 수 있고, 동양권 선인의 지혜와 관습이 작용한 것으로 수필에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습작기에는 3단 원리인 기-서-결 방식을 애용했다. 초창기엔 학술 논문에서 주로 사용하는 서양식 방식인 이것에 익숙하다 보니 수필도 그걸 적용한 셈이다. 그래서 서두 한 문단, 본문 세 문단-본문도 그 안에서 한 문단씩 기-서-결을 갖추어서- 결미 한 문단의 총 5문단을 기본으로 삼았는데, 주제의 직접 전달에는 적합하지만 문학적 윤기나 감동을 주기 위한 감정에 호응하기 위해선 기술적 변화가 필요한 것을 차츰 깨달았다. 한시는 정형으로 기승전결을 사용한 장르이고, 시조는 외형상 석 줄이나 내면 시상 전개 논리는 4단 기승전결임에 착안할 때, 문학 산문인 수필에는 기승전결 구성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고, 이는 외형적 짝수 문단 구성을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 보통 수필은 서두와 결미가 한 문단이지만, 10매 이상 글에서는 서두와 결미를 두 문단씩 짝을 맞추어 구성하기도 한다. 수필 구성을 공부해 가면서 산문에서 가장 안정된 글, 특히 문학 문장 전개 방식은 3단보다 4단 구성이 더욱 적합한 것으로 보아 수필 창작에선 모두 이 구성을 택한다.
수필 문장 첫째 조건은 간결하게 쓰는 것이다. 주술 간격을 가까이 하고 수식어는 최소한으로 줄인다. 둘째는 의미가 명확하게 하려고 단어 선택과 배치에 신경 쓴다.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를 골라 쓰고자 힘쓴다. 또한 체험을 위주로 쓰는 글이 수필인 만큼, 사건과 행위와 사고 주체인 ‘나’란 주어를 최대한 안 쓰고 뺀다. 일기 쓸 때 ‘나’를 안 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 문장에선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한결 간결하고 명확한 경우가 더 많기도 해서 더욱 그리한다. 독자가 행위 주체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경우는 수정하면서 모두 덜어낸다. 다른 인물이 등장하거나 사건 주체가 이중적이거나 혼란을 줄 때만 주어나 ‘나’를 넣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한다. 이래야 글이 아주 깔끔해지고 군더더기 없는 말쑥한 글이 되며 읽기에도 입맛에 탁 붙는다고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필 쓰는 목적은 글쓴이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표현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제일 원칙이라 보기에 그렇다. 아름다운 문장과 읽는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라 본다. 알다시피 수필은 특히 주제를 강조하는 문학이어 교술 문학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문장의 아름다움에만 지나치게 경도한 나머지 몽롱하거나 모호한 표현은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른바 서정 수필은 나와 잘 맞지도 않지만 그렇게 쓰려고 심히 애쓰지도 않는다.
문장에서 또 유의하는 것은 동일한 단어 반복을 피하려고 하는 점이다. 세상에 똑같은 의미 단어는 애초에 없다. 유사어나 유의어, 약간 의미상 편차를 보이지만 이 말들이 어울려 복합적 의미와 정감을 표현하도록 많은 단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어휘가 생각만큼 충분치 못하여 의도만큼 결과는 훌륭하지 못하다. 실상은 그렇다 해도 그런 의도와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낭독할 때 변화와 문장의 다양성을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은 사실 단어로 출발해서 단어로 마무리하는 단어의 집합체이니 어떤 단어를 고르고 그걸 어떻게 배치하여 의미를 표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지는 글의 핵심이고 관건이다. 해서 단어 선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글의 초고는 대략 쉽고 빠르게 쓰는 편이다. 어느 제재는 앉은 자리에서 한 두 시간에 10 여매의 글을 금방 써내려가기도 한다. 시작은 쉽게 하지만 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여러 번에 걸쳐 초고를 읽고 수정하고 다듬는다. 평균적으로 최소 5번에서 10여 번 정도는 다시 손을 댄다. 특히 청탁 원고는 마감일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수정 대상은 제목과 주제는 물론이고 제재까지도 바꾼다. 문장과 문단, 문장 부호와 단어 등, 글의 모든 것이 수정 대상이다. 말하자면 고칠 수 없을 때까지 보고 또 보고 고쳐나간다. 그리하고도 발표한 글을 보면 잘못된 것, 수정할 것이 눈에 띄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떠한 글이라도 천의무봉처럼 완벽한 것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쓰기 위한 사전 준비를 대략 소개해보자. 눈 뜨고 감을 때까지 늘 레이더를 켜둔다. 글감에 해당하는 제재나 주제를 잡아채기 위한 상시 가동이다. 날아가는 곤충을 잡는 포충망처럼 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 어느 짧은 순간에라도 그것이 다가오면 잡고 싶고 또한 그런 경우가 언제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고 길을 걷거나 차를 타거나 몰다가도, 밥을 먹거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그것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그 내용의 얼개를 메모한다. 종이에 쓰기도 하지만 요사이는 스마트폰 메모 기능을 이용한다. 이것은 차를 타고 이동 중이거나 걸어가다가도 잠시 멈추어 옮길 수 있어 잘 애용한다.
이것을 다시 컴퓨터에 저장한다. 이 파일 명은 ‘수필초고목록’이다. 여기에는 탈바꿈을 기다리는 글 애벌레들 수십 마리가 늘 갇혀서 웅성거린다. 글을 써야 할 때나, 쓰고자 할 때 이것을 열고 그중 적당한 것을 잡아내서 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자주 글 유충실을 방문하여 조금씩 먹이를 준다. 메모한 것에 약간 살을 붙이며 내용을 덧붙인다. 평소에 사육하는 방의 애벌레를 놔두고 급작하게 쓰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 환생 강도와 성장 속도가 애벌레를 능가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에 정해둔 순서를 넘어 먼저 글 세상에 출현하는 행운을 누린다. 마침 무언가 좋은 것을 떠올려 궁글리고 있을 때 오비이락처럼 원고 청탁이 오면 그게 바로 간택의 영광을 누려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대략 요약하면 이런 식으로 수필을 쓴다. 이중에는 이렇게 써야한다고 학생을 가르칠 때와 다른 경우도 여럿이다. 옳고 바르다고 믿지만 능력과 스타일에 맞지 않는 것이 있기에 그러한데, 일반적인 것을 교재로 쓰고 학생에게 지도하지만 누구에게나 독자성은 있고 글도 마찬가지여서 나만의 작법, 일반화하기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는 경우는 나만 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필미학>, 2017년 겨울호, 157-1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