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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의 반란/ 김윤선

작성자이복희|작성시간21.06.11|조회수132 목록 댓글 0
김환기화백의 <우주>

 

점의 반란

 

                                                                                                                                                              김 윤 선

 

남편이 스마트폰에 앱 하나를 깔았다. 아까부터 옆집의 빌과 한참을 수군거리더니 이것 때문이었던가 보다. 남편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 밤하늘이 떠 있다.

 

호들갑을 떨며 핸드폰을 북쪽 하늘로 향하니 곧바로 작은곰자리가 보이고 그 곁으로 점 일곱 개를 이은 큰곰자리가 보인다. 전갈자리는 내가 앉아 있는 거실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뜻이다. 별자리란 손에 닿을 수 없는 먼 하늘에만 있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렇듯 내 손안에 들어와 버렸으니 우주 세계마저 디지털 세상에 굴복해버린 듯해서 얄궂은 느낌이 든다.

 

화면엔 점이 무수하고 점과 점을 이어서 별자리도 그려놓았다. 별자리 그림 때문인지 점이 무게감을 더한다. 인공위성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의외로 하늘길이 복잡하다. 앞으로 더 늘어날 인공위성들을 생각하니 정체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김환기 화가의 작품 ‘우주’가 생각난다.

 

처음 ‘우주’를 인터넷 화면에서 보았을 때 130억 원이 넘는 그림 값에도 놀랐지만, 화법에 또 한 번 놀랐다. 촘촘히 박아놓은 듯한 무수한 점의 배열, 중학교 미술 시간에 배운 점묘법이었다. 선을 쓰지 않고 점으로써 형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푸른색 바탕에 푸른색의 점들이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으로 다가오다가, 맑고 속 깊은 우물처럼 느껴지면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왜 윤동주의 ‘자화상’이 떠올랐을까. 그림은 두 개의 패널로 이어져 있는데 작품성에 앞서 그의 인내심에 감탄했다. 얼마만큼의 정신집중이 필요했을지는 안 봐도 알 듯했다. 수학적인 점이 예술의 경지로 승화하는 현장이었다.

 

화가는 점 하나하나에 어떤 감정을 실었을까. 원래의 제목 “너와 나”처럼 아내와 자신의 삶을 오롯이 형상화한 것일까, 아니면 훗날 사람들이 말하는 자연의 숨결이요 그리움의 정서일까. 그림 제목 탓인지 한없는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한한 자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건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세상의 잡스러운 생각을 떠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경지인 삼매에 빠져들었을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어쩜 그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온으로 인해 마음 챙김이 청정한 경지인 삼매의 최고경지에 이르렀던 건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운하 달력으로 치면 4초쯤 살다 가는 거라고 한다. 찰나의 삶이다. 화가의 그림에서처럼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런 찰나의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나면 삶의 자세가 절로 낮아지지 않을까.

 

언젠가 의사가 통증 부위에 볼펜으로 X 표시를 하고 그 교차점에 주사를 놓는 것을 보았다. 점의 수학적 정의를 잘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점이란 태어남을 상징하는 수학적 표현이 아닐까. 세상의 시작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시작은 작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예감을 보여주는 수학적 부호다.

 

점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다. 얼굴에 생긴 점은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말하는 표시란다. 친구는 입 언저리에 점 하나가 있는데 구태여 빼지 않는다. 식복점(食福點)이라는 이유다. 그래서 그런지 사는 게 넉넉하다. 살다 보면 때아니게 얼굴에 점이 생기기도 한다. 자외선 탓이기도 하고 나이 탓이기도 하다지만 어쩜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동화 속 빨강 머리 앤은 주근깨 소녀다. 앤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건 깨처럼 박힌 미운 점이 되레 자신의 존재를 키웠기 때문이다. 작품 ‘우주’처럼 점에 무게감이 느껴진다.

 

오늘은 입춘, 붓끝으로 점을 찍은 듯 벚나무의 빈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꽃샘바람도 미처 눈치채지 못한 흔적이지만 머잖아 쌀 박상을 틔우듯 만개할 것이다. 점이 예술로 승화하는 건 화가의 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이다. 바야흐로 지금 우리 집 마당에서도 점이 반란을 시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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