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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 가득한 그리움/이지윤

작성자담비|작성시간25.12.07|조회수72 목록 댓글 0

 

입안 가득한 그리움

 

                                                                                            이지윤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딸과 함께 강화도에 있는 ‘바람 숲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스테이’도 운영하는 곳이라 하루 묵기로 했다. 늦가을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며 다가오는 겨울과 맞닿아 있던 날, 알싸한 공기 속에서 섬은 한층 더 청량했다. 깊은 숲으로 이어지는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은 책보다 마음에 더 집중하게 했다. 낯선 공기 속에서 감정이 열리고, 고요한 숲은 나를 감성의 결로 이끌었다.

 

유튜브 <김지윤, 전은환 롱테이크>에서는 ‘가을 여행’을 주제로, 함께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러 음악 이야기 중, 전은환이 애창곡으로 나훈아의 ‘홍시’와 ‘사내’를 소개했다. 무심코 듣던 내게 ‘홍시’라는 단어가 가슴속에 퍽, 하고 박혔다.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의 조각 하나가 툭, 건드려진 것이다. 유튜브를 멈추고, ‘홍시’를 찾아들었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냥 감동이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멜로디, 아이처럼 솔직하고 직설적인 가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울컥하는 감정에 머릿속이 먹먹해졌다. 가슴이 저릿하고 코끝과 눈가가 시큰거렸다.

 

감은 아버지의 최애 간식이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엄마는 여러 종류의 감을 사 왔다. 추석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삭하고 달콤한 단감을 식탁에 올려놓으셨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큼지막한 대봉감을 사다 홍시를 만들었다.

홍시는 각기 다른 속도로 익어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살펴보며 가장 잘 익은 홍시를 골라내는 일이 작은 즐거움이었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움켜쥔 감의 꼭지를 입으로 물어뜯고, 얼굴을 그 감에 묻듯 파고든다.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달콤하고 촉촉한 속살. 한 모금, 또 한 모금. 젖을 빠는 아이처럼 욕심껏 쭉쭉 빨아들인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즙이 술술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 먹고 나면 숟가락을 들어 남은 과육까지 싹싹 긁어먹는다. 텅 빈 껍질을 혀끝으로 살짝 훑던 기억─. 지금 떠올려도 단물이 고이는 기분이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던 겨울방학이면, 꼬들꼬들 말린 호박꽂이와 곶감을 넣어 호박 설기떡을 만들어 주셨다. 계피 향으로 온 집안을 들썩이게 했던 수정과 속 곶감도 빼놓을 수 없다. 몸이 약했던 아버지를 위해 보양식과 별식을 준비하느라, 평생을 부엌에서 보내셨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감은 잊지 않았다. 막상 드시지는 않았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침대 밑에 숨겨둔 곶감을 내미셨다. 흰 깃털이 날리고 까만 곰팡이로 뒤덮인 뭉그러진 곶감을 내 손에 쥐여 주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 먹어라,’ 이가 없는 입술로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 단맛 하나가, 엄마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었던 세상의 맛이었을 것이다.

 

가시지 않는 먹먹한 마음으로 유튜브를 다시 켰다. 그들의 수다는 계속되고 있었다. ‘홍시’는 2006년, 나훈아가 음악 인생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곡이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가요계의 중심은 슈퍼주니어였다. 반짝이는 아이돌 그룹들이 무대를 장악하던 시절. 하지만 20년이 지난 2025년, 그 시절 아이돌들의 이름은 희미해졌고, 나훈아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리메이크되고 있다고 했다. BTS 정국이 부른 ‘홍시’를 요즘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다 북한의 청소년들이 몰래 ‘사내’를 부르다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순간 웃음이 났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아이들이 가사를 온전히 이해했든 아니든, 분명히 느낀 것이 있었을 것이다. 나훈아의 노래는 그렇게 국경도, 세대도 뛰어넘고 있었다. 나는 ‘홍시’와 ‘사내’를 두 번 더 들었다. 단순한 듯한 가락은 가슴을 뭉클하게 울렸고, 그 울림은 깊고도 진했다. 나에게 ‘홍시’는 명곡이었고, 클래식이었다.

 

멈춰 놓았던 유튜브를 다시 켜자, 그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나훈아 콘서트는 '광클릭' 없이는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의 노래마다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대마다 혼신을 다하는 열정, 관객을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자기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진정성이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는 이야기였다. 진짜 노래꾼의 저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에겐 신선하고, 색다른 위안이었다.

 

그날 밤, ‘홍시’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트로트든 클래식이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 순간부터, 그것은 예술이라는 것을.

단맛은 사라졌지만, 입안에 여전히 엄마가 남아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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