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의 시간
이지윤
저는 술안주 하면 으레 마른 명태가 생각납니다. 다른 이들은 삼겹살이나 오징어도 떠올리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늘 명태포가 먼저 자리합니다. 술안주 삼아 소주 몇 잔으로 얼큰하게 취해본 적 없는 나에게도 명태는 특별한 울림을 전하는 안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음악 시간, 성악가 오현명 선생의 묵직하고 풍성한 저음이 교실을 울렸습니다. 양명문 시에 변훈의 곡을 붙인「명태」였습니다. 기묘한 가사와 생소한 노래 형식에 저는 이 곡이 가곡이 맞는지 헷갈렸습니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캬아~)/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명태~ 명태~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우리 반 애들은 그 가곡을 듣고 킥킥거렸고, 어떤 친구는 ‘명태가 웬 시냐?’라며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고 낯설던 노래였지만, 들을수록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특히 베이스바리톤 오현명 선생님의 묵직한 저음 속에 자조적인 신세타령의 민요같은 가락과 풍자적인 가사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삶의 고단함을 견디는 시인의 애환과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명태의 체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내 마음에 짠하게 스며들면서 숙연한 떨림으로 변했습니다.
그날 이후, 술안주라는 말만 들어도 나는 자동으로 명태를 떠올리게 되었죠. 명태는 단순히 안주가 아니었습니다. 질긴 명태의 껍질 속에 배어 있는 삶의 맛으로서, 서민의 곁을 지키는 친구 같았고, 술안주로 적격이라 여겨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는 분에 넘치는 성과를 선물했지만, 늦은 출발이 오히려 저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그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우왕좌왕 글쓰기 공부에 뛰어들었지만,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유명 문화센터 ‘백일 글쓰기 반’에 등록해 하루하루 A4 종이 앞에서 씨름했습니다. 그 인내는 생각보다 버거웠습니다.
그때 문득, 명태를 안주 삼아 밤새 시를 쓴다고 했던 ‘명태’ 속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즉시 그 시인을 흉내 내듯 책상 위에 사이다 한 병과 명태포를 올려두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사이다 잔은 비워가고 명태포는 줄어갔지만, 종이 위에는 볼펜 똥만 멸치 똥처럼 여기저기 흩어질 뿐이었습니다. 글은 안 되고 책상만 어지럽혀졌죠. 그런데도 저에게는 안성맞춤이라 여겨졌습니다. 저는 계속 글자와 씨름을 이어갔습니다. 밤이 깊도록 책상에 똬리를 틀고 앉아, 질긴 명태 살을 뜯어내듯 한 줄, 두 줄 문장을 겨우 짜냈어요. 오기로 써 내려간 글줄 속에서 때때로 명태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사이다 한 모금을 마시고는 '캬아~!' 소리를 내며 기분을 내보았지만, 글솜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제 주변에는 황태 부스러기만 수북이 쌓여갔습니다. 이 허망한 부스러기를 만들어낸 것은, 그 질긴 시간을 처절하게 견뎌낸 동해의 명태였습니다.
명태가 황태로 노랗게 익어가는 과정은, 바닷바람과 햇살 아래 수많은 밤낮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는 인고의 시간입니다. 그 질긴 껍질과 결마다 켜켜이 스민 지루함이 마침내 황금빛 명품으로 탈바꿈했겠지요. 저의 늦은 출발과 서툰 문장, 이 또한 황태의 끈기와 인내를 닮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저를 채찍질합니다.‘
그 묵직한 깨달음에 잠시 숨을 고르며, 나는 눈앞의 명태포를 들어 올립니다. 명태 뜯는 실력 하나만큼은 전문 필자에 버금갈 것 같아 헛웃음이 납니다. 황태포를 안주 삼아 불룩해진 저의 뱃살이 어쩌면 좋은 수필 한 편쯤은 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품어봅니다.
다시 책상 위의 종이를 펼칩니다. 질긴 살결을 한 올씩 뜯어내듯, 한 줄 한 줄 글자를 적습니다. 언젠가 이 거칠고 투박한 문장들이 황태의 고소한 맛처럼 은근히 삶을 위로해 줄 날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