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갔으면 어쩔 뻔 했을까
청랑
새벽이 밝았는데도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오늘 문학기행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은 칠팔십 대, 아흔을 넘긴 분도 계셨다. 빗속 여정이 걱정스러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나이와 체면은 잊고 동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에세이문학작가회에서 문학기행 장소를 여주로 정했다. 내가 모든 일정을 이끌기로 했다. 행선지로 영릉, 목아박물관, 여강驪江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출렁다리를 걷는다. 그리고 여정의 마무리는 강천섬이었다.
왕릉 뜨락 초록 숲이 는개비를 맞고 있다. 푸른 소나무들이 곡선으로 휘어져 꿈틀거린다. 호위무사로 오랜 시간 능을 보살피느라 허리가 그토록 굽은 걸까.
영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한 곳이다. 원래 영릉은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옆에 합장되어 계셨다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명당인 지금의 자리로 천장遷葬하였다. 해설사가 세종대왕의 많은 행적을 들려주었다. 요즘 K 문화 중에 한글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뿌듯하다.
영릉에는 ‘왕의 숲길’이 있다. 노송과 참나무가 울울창창한 숲길을 거닐며 힘들었던 마음을 보상받고 싶었다. 강석경의 『능으로 가는 길』을 읽고 난 후로 비 내리는 왕의 숲길이 더 간절했다. 그런데 계획했던 시간을 훌쩍 넘어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목아박물관의 목아木芽는 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새싹을 틔운다는 뜻이다. 부처의 미소와 장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동양 최초의 불교 박물관이다. 해설사의 감칠맛 나는 설명에 지루한 줄 모르고 관람했다.
드디어 비가 그쳤다. 한정식 맛집에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을 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허기졌던 배를 채우니 더는 부러울 것이 없었다.
황포돛배를 타러 여강으로 향했다. 누런 돛을 단 배를 두 대로 나눠탔다. 구릿빛 선장의 입담 섞인 해설을 들으며 옛 선조들처럼 벽절 신륵사의 강월헌과 영월루 등을 둘러보았다.
출렁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내 발밑 세상도 늘 아슬아슬했을 텐데 ‘용케 여기까지 살아왔구나’ 생각되니 뭉클했다.
드디어 오늘의 백미 강천섬에 도착했다. 잿빛 구름이 머리 위를 맴돌더니 물 폭탄 소나기를 퍼부어댔다. 비를 보자 여러 사람이 카페에 가자고 나를 채근했다. 잠시 흔들렸지만, 왕의 숲길도 포기했는데 강천섬까지 양보할 수 없었다. 야생의 천국 강천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우산 쓰고 걷는 것도 낭만입니다.”
우연인 듯 강천교를 건너오자 비가 ‘뚝’ 그쳤다. 마치 환영 인사하는 듯이. 깨끗하게 대청소를 마친 강천섬, 마냥 싱그러웠다. 희귀한 자줏빛 아카시 꽃과 산딸나무의 뽀얀 이파리, 미끈하게 솟아오른 포플러, 미루나무와 은행나무 등. 축구장 80개 크기의 푸른 잔디밭을 보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냥 갔으면 어쩔 뻔 했냐.”
노란 금계국이 강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었다. 풀 향기와 구수한 흙냄새, 강물의 비릿한 내음이 바람에 실려 왔다. 칠십, 팔십의 나이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들판을 누비며 웃음꽃을 피워댔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너른 잔디밭은 어느새 고고장이 되었다. 섬 가장자리를 둘러싼 나무들마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이파리를 흔들었다. 아침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던 비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 비 때문에 포기했다면 이 멋진 풍경을 만나지 못했겠지. 왕의 숲길을 뒤로하고 아쉬움을 삼켰듯 살아가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인생길도 있다.
강천섬은 우리에게 푸른 잔디와 꽃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비를 지나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가만히 알려주었다. 나는 언젠가 이곳에 와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변을 걸어야지. 그때는 오늘처럼 서두르지 않고, 강천섬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머물러야겠다.
여주에서 우리는 유적지를 돌아본 것이 아니라 잊고 지냈던 순수한 마음 한 조각을 다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신문 [문학人]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