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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심화반 1기

아빠의 청춘 연주하까예

작성자이연희 ^^|작성시간25.08.03|조회수72 목록 댓글 0

                       아빠의 청춘 연주하까예?

 

  능소화로 유명한 인흥마을이다주황빛 꽃송이가 마치 작은 종처럼 고요하게 흔들린다이 꽃은 불볕더위와 장마에도 굴하지 않고 여름 내내 피어 한결같은 선비의 마음과 같아서 양반들이 좋아했다예전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 꽃이라 했고궁녀 소화의 한이 맺혔다고 구중궁궐의 꽃이라고도 불렀다그뿐만 아니라 시들거나 떨어져도 도도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바람에 실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내려앉은 꽃잎을 보니 요양원 봉사할 때 만났던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몇 년 전에 여덟 명이 오카리나 연주팀을 만들었다그때는 힘이 넘쳐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연주 봉사를 다녔다어르신들을 모신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에서는 흘러간 가요를복지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주할 때는 또래 노래를 골라 연주했다가는 곳의 특성에 맞게 그때그때 곡을 선정해야 했으므로 밤늦게까지 모여 연습할 때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어찌 지나는지 모르게 빡빡한 시간의 연속이었다오전에 모여서 연습하고오후에 오카리나 연주하고저녁에 다음 날 곡을 연습하며 바쁘게 보낸 날은 코에 단내가 난다는 말을 실감했다피곤은 했지만마음은 뿌듯하니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전율처럼 몸을 휘감기도 했다.

  S 요양병원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훤칠한 키에 외모가 말끔한 신사였다요양원 관계자들에게 멋쟁이 신사로 통하는 할아버지는 우리가 보기에도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로맨스그레이조선시대의 양반이라고 할 만 했다게다가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는 환자답지 않게 힘이 있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렬하게 기립박수로 화답해 주었다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할아버지가 선창하면 할머니들도 따라 불렀다할머니들을 팬덤으로 만든 멋쟁이셨다트로트 메들리를 연주할 때는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까지 추셨다한명숙의 ‘노란 셔츠의 사나이와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 매번 청하셨다그 두 곡은 박자가 느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오카리나 연주를 듣는울 듯 말 듯한 할아버지 표정에 파란만장했던 일생이 스쳐 가는 듯했다

  연주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고맙다고또 오라고 깍듯이 인사까지 하셨다어느 날에는 자녀들이 사 온 음료수를 상자째 챙겨 와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할아버지 덕분에 다른 어느 곳보다 그 요양원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았다세상 모든 일은 상대적인지라 우리도 그곳에서 연주하면 신이 났다할머니 할아버지와 어울리는 시간이 더욱 보람이 있게 느껴졌다그분들의 열렬한 환영과 반응은 한 달에 한 번만 가는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

  나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삼 개월 동안 쉬었다가 연주팀에 다시 합류했다요양병원 휴게실 관객석에 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혹시나 하는 좋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연주 중에 살며시 빠져나와 이방 저방을 기웃거렸다할아버지는 6인실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희미하게 들리는 오카리나 소리에 맞추어 손뼉을 치고 계셨다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덥석 손을 잡았다할아버지께서 잡힌 손 하나를 빼내어 머리맡에 있는 서랍을 가리켰다그 안에는 뜯지도 않은 사탕 봉지가 들어 있었다꼭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는 할아버지께 다음 달에도 오겠다고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언제가 될지 모를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서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그때마다 할아버지가 힘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할아버지가 주신 사탕 봉지가 유난히 무거웠다.

  다음 달요양원에 들어서자마자 요양보호사에게 할아버지 안부부터 물었다한 달 사이에 상태가 더 좋지 않아져서 누워만 계신다고 했다휴게실에서 연주하니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할아버지가 계시는 입원실에 가서 귀에 대고 물었다.

아빠의 청춘 연주해 드릴까예?”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셨다익숙한 멜로디가 흐르자 어찌나 눈물을 흘리시는지 같은 입원실에 계시던 다른 분들까지 눈물을 훔쳤다다시는 올 수 없는 지나간 그 시절이 얼마나 아쉽고 아련할까처음 만났을 때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던 할아버지였는데스러지는 촛불처럼 깜박이는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 여정을 보여주는 듯했다훌쩍 야윈 얼굴에 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능소화의 꽃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그중의 하나는 ‘그리움이라고 한다하루하루 사위어 가던 할아버지가 흘렸던 눈물도 그리움과 동의어일까지금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좋아하는 트로트를 실컷 들으시겠지

할아버지, ‘아빠의 청춘’ 연주하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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