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청춘 연주하까예?
능소화로 유명한 인흥마을이다. 주황빛 꽃송이가 마치 작은 종처럼 고요하게 흔들린다. 이 꽃은 불볕더위와 장마에도 굴하지 않고 여름 내내 피어 한결같은 선비의 마음과 같아서 양반들이 좋아했다. 예전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 꽃이라 했고, 궁녀 소화의 한이 맺혔다고 구중궁궐의 꽃이라고도 불렀다. 그뿐만 아니라 시들거나 떨어져도 도도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 바람에 실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내려앉은 꽃잎을 보니 요양원 봉사할 때 만났던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몇 년 전에 여덟 명이 오카리나 연주팀을 만들었다. 그때는 힘이 넘쳐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연주 봉사를 다녔다. 어르신들을 모신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에서는 흘러간 가요를, 복지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주할 때는 또래 노래를 골라 연주했다. 가는 곳의 특성에 맞게 그때그때 곡을 선정해야 했으므로 밤늦게까지 모여 연습할 때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어찌 지나는지 모르게 빡빡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오전에 모여서 연습하고, 오후에 오카리나 연주하고, 저녁에 다음 날 곡을 연습하며 바쁘게 보낸 날은 코에 단내가 난다는 말을 실감했다. 피곤은 했지만, 마음은 뿌듯하니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전율처럼 몸을 휘감기도 했다.
S 요양병원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훤칠한 키에 외모가 말끔한 신사였다. 요양원 관계자들에게 멋쟁이 신사로 통하는 할아버지는 우리가 보기에도 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로맨스그레이, 조선시대의 양반이라고 할 만 했다. 게다가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는 환자답지 않게 힘이 있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렬하게 기립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선창하면 할머니들도 따라 불렀다. 할머니들을 팬덤으로 만든 멋쟁이셨다. 트로트 메들리를 연주할 때는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까지 추셨다. 한명숙의 ‘노란 셔츠의 사나이’와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을 매번 청하셨다. 그 두 곡은 박자가 느리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 오카리나 연주를 듣는, 울 듯 말 듯한 할아버지 표정에 파란만장했던 일생이 스쳐 가는 듯했다.
연주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고맙다고, 또 오라고 깍듯이 인사까지 하셨다. 어느 날에는 자녀들이 사 온 음료수를 상자째 챙겨 와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할아버지 덕분에 다른 어느 곳보다 그 요양원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았다. 세상 모든 일은 상대적인지라 우리도 그곳에서 연주하면 신이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어울리는 시간이 더욱 보람이 있게 느껴졌다. 그분들의 열렬한 환영과 반응은 한 달에 한 번만 가는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
나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삼 개월 동안 쉬었다가 연주팀에 다시 합류했다. 요양병원 휴게실 관객석에 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좋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연주 중에 살며시 빠져나와 이방 저방을 기웃거렸다. 할아버지는 6인실 침대 등받이에 기대어 희미하게 들리는 오카리나 소리에 맞추어 손뼉을 치고 계셨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덥석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께서 잡힌 손 하나를 빼내어 머리맡에 있는 서랍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뜯지도 않은 사탕 봉지가 들어 있었다.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는 할아버지께 다음 달에도 오겠다고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언제가 될지 모를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서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힘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주신 사탕 봉지가 유난히 무거웠다.
다음 달, 요양원에 들어서자마자 요양보호사에게 할아버지 안부부터 물었다. 한 달 사이에 상태가 더 좋지 않아져서 누워만 계신다고 했다. 휴게실에서 연주하니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입원실에 가서 귀에 대고 물었다.
“아빠의 청춘 연주해 드릴까예?”
할아버지는 나를 알아보고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자 어찌나 눈물을 흘리시는지 같은 입원실에 계시던 다른 분들까지 눈물을 훔쳤다. 다시는 올 수 없는 지나간 그 시절이 얼마나 아쉽고 아련할까. 처음 만났을 때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던 할아버지였는데, 스러지는 촛불처럼 깜박이는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 여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훌쩍 야윈 얼굴에 눈물을 흘리던 그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능소화의 꽃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의 하나는 ‘그리움’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사위어 가던 할아버지가 흘렸던 눈물도 그리움과 동의어일까. 지금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좋아하는 트로트를 실컷 들으시겠지.
“할아버지, ‘아빠의 청춘’ 연주하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