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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마일리지 / 양희용(수필과비평. 2026-06. 제296호)

작성자양희용|작성시간26.06.07|조회수213 목록 댓글 0

마음의 마일리지 / 양희용

 

살다 보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거나 수상 소식을 들으면 하늘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하는 일마다 길운이 따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위적으로 미래를 결정할 수 없지만 자신의 노력 여하와 마음 씀씀이에 따라 색다른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요즘 외출할 때, 용모에 부쩍 신경을 쓰면서 스킨과 로션을 듬뿍 바르고 나간다. 환갑 전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화장용품을 사용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맨얼굴로 사람을 만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가 마트에 갈 때도 빗질을 하고 로션을 대충 찍어 바른 후에 나간다. 검버섯과 마른버짐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신체의 건조함을 방지하기 위해 보디로션까지 잔뜩 발라야 하고 이발과 염색도 자주 하다 보니 몸뚱이와 얼굴을 꾸미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스킨과 로션이 거의 다 소진되어 어느 회사 제품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은근히 걱정하고 있을 때, 카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래전부터 현금 대신 자주 사용하고 있는 주거래은행의 카드 담당 직원이었다.

 

"고객님의 포인트가 3만 점이 넘어, 포인트 점수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예! 그런 제도가 있나요? 어떤 상품을 살 수 있나요?"

 

카드회사 직원이 해당 포인트로 살 수 있는 먹거리와 생활용품을 나열하던 중, 내가 원하는 화장품이 포함되어 있었다. 점수가 현금처럼 차감되는 대신 원하는 제품이 사나흘 후에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때부터 해마다 원하는 스킨과 로션을 포인트 점수로 구매하고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처음에는 비싼 화장품을 공짜로 받았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기분이 좋았다.

 

운전 경력이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간 주유비와 수리비, 자동차세와 보험료 등의 유지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마다 보험료가 할인되고 '자동차보험 마일리지 특약'’에 의해 10여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 큰 위안으로 삼는다. 마일리지 특약은 연간 환산 운행 거리가 15,000km 이하일 때, 운행 거리에 따라 보험료를 환급받는 제도다. 일흔이 가까워지면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해야겠다는 생각도 가끔 들지만, 앞으로 4∼5년 정도는 운전을 더 할 계획이다. 필요할 때만 조심해서 운전하면서 마일리지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일리지(mileage)'라는 프로그램은 1980년대 '텍사스 항공'에서 불황을 타개하고 고정 고객 확보를 위해 처음 개발되었다. 항공사는 고객의 이용 실적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고객은 그 점수를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서 다른 항공사는 물론이고 금융과 판매, 서비스 업종에까지 전파되었다. 현재 마일리지라는 단어는 적립금이나 포인트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탄소 마일리지부터 편의점 포인트까지 여러 분야에서 소비자의 심리를 확 끌어당기고 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누군가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누군가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서 소비한다. 소비자는 저비용과 고효율을 추구하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지향한다. 좋은 상품, 원하는 물건을 싸게 매입해서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만족감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게다가 포인트 점수까지 쌓인다면 자신의 구매 행위가 최선이었다는 확신과 자부심까지 느낀다.

 

마일리지는 '포인트(point)'라는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젊은 부모들은 아이가 착한 행동을 하면 ‘참 잘했어요’라는 의미로 스티커를 지급해 준다. 스티커가 몇 장 모이면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이나 선물을 사 준다. 군에서 훈련병이 모범적인 행동을 하면 칭찬 점수를 부여하고 일정 점수가 모이면 부모나 애인에게 전화할 기회를 준다. 평소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은 자신도 모르게 포인트가 쌓여 연말 성과급을 많이 받는다. 마일리지는 평범하게 열심히 일하는 서민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아내는 김치냉장고를 새로 마련하기 위해 제조사와 가격, 용량 등을 고민하고 있었다. 타지에서 직장생활 하던 아들이 엄마의 근심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색상이나 크기가 아내의 마음에 쏙 드는 김치냉장고를 구매해서 집으로 보내왔다. 주말에 집에 온 아들에게 아내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자, "부모님이 저를 잘 키워주면서 제 마음속에 쌓아 놓은 '마일리지'를 사용하신 겁니다. 걱정 말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찾아 쓰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행복한 표정에 덩달아 기분이 좋으면서 머릿속에는 '마음의 마일리지'라는 용어가 계속 맴돌았다.

 

마일리지가 상거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하거나 부모상을 당했을 때, 지인이나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기 원한다. 그 전에 자신은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응원하고 다독거려 주는 마일리지를 얼마나 쌓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마일리지가 기업과 소비자의 공동 이득을 추구하듯 친구 사이에도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공유해야만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몇몇 대기업에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유명 연예인 중 일부는 소리 소문 없이 장애인 복지기관에 기부를 꾸준하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모두가 소비자와 팬에게 받은 혜택을 마일리지로 되돌려주려는 노력의 일부다. 이런 분위기가 물결처럼 퍼져나간다면 우리가 바라는 밝고 건전한 사회가 어렵지 않게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동안 지인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갚아야 할 마음의 마일리지를 많이 안고 살아간다. 유효 기간이 지나기 전에 모두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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